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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진 Mar 04. 2023

가정적인 남자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로건이가 잠들기만 기다렸다가 같이 쭉 잠만 잤다. 그렇게 두 번 반복하고 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평소에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책 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줬다가, 터미타임도 하고, 누워있는 로건이 얼굴 좀 보다가 최대한 소리 안 나게 빨래하고 빨래 널고, 청소도 하는데 오늘은 정. 말. 아무것도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마음도 정신도 한없이 처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지금껏 다른 건 못하더라도 오빠가 집에 돌아왔을 때 기분 좋으라고 깨끗이 치워진 거실을 고수해 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거실도 방도 한껏 어질러진 채로 오빠를 맞이했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심 미안했다. '힘들어도 잠깐 일어나서 거실이라도 치울 걸 그랬나?'


오빠는 평소와 똑같이 나와 로건이와 뽀밍이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며 귀가 후 나를 꼭 안아준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묻고 얼른 저녁상을 차린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오늘 샵에서 있었던 이야기, 손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곤 다시 설거지를 하고 거실과 방을 치우며 미뤄뒀던 빨래를 돌리고 로건이 빨래를 갠다.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하느라 힘들 만도 한데 나에게 잔소리는커녕 왜 안 했는지 묻지도 않고 묵묵히 집을 치운다.


그냥 고마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아 줘서. 내가 못하면 자기가 하면 된다며 웃으며 나를 돕는 오빠를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할 일을 오빠가 해줘서 고마운 게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또 기꺼이 돕고 배려해 주는 오빠라 고마웠다. 하루종일 떨어져 있어서 속상하다며 집에 와서는 로건이가 잠들 때까지 안아주고 놀아주고 수유하고 재워주는 것도 참 감사했다. 각자의 역할을 선을 긋듯 나누어 네 것, 내 것으로 나누지 않고 우리의 것으로 생각해 주는 것도. 함께 하는 것이라 이야기해 주는 것도. 하루종일 힘들었을 거라며 따뜻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것도.


오빠의 위로와 배려를 받고 나니 다시 힘이 생겼다. 잘 시간, 쉬는 시간을 쪼개서 내 것을 다시 도전하고 싶은 열정과 당장 결과물이 없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용기와 로건이에게 가득 나눠줄 사랑이 가득 채워졌다.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할 미래는 지금처럼 소중한 하루들이 모여 더 행복한 미래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늘 변함없이 든든히 내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참 위로가 됐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오빠의 가정적인 모습과 따뜻한 배려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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