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딱 2주 전, 우리 부부는 싸웠다. 평소에 주고받는 말다툼이 아니라 진짜 감정을 더하고 더해 격한 대화가 오고 갔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하게 오빠가 나에게 '몽골 여행 일정을 되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싸움의 발단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의도가 다를 때 나타난다. 오빠는 단순히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묻고 물었던 일정을 '다시, 또' 묻는 것 자체가 이미 기분이 나빴다. 오빠는 '일정 한 번 더 말해주는 게 어떠냐'였고,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묻고 물었던 일을 나에게 또 물을 거냐'였다. 특히 이번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오빠의 일'과 관련된 질문이었기에 나에겐 오빠의 질문이 더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내 입장에서는 오빠의 막무가내가 너무 화가 났고,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고 사람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화가 나서 오빠에게 오늘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더니 나보고 나가란다. 그러고 출근을 했다. 결심했다. 진짜 이 집에서 나가기로. 바로 기차표를 알아봤지만 '아차' 금요일이라 표가 거의 다 매진이었다. 나는 운전도 못한다. 로건이와 뽀밍이를 두고 어딜 떠날 순 없었다. 오빠가 귀가하기 전, 로건이를 재우고 혼자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했던 우리는 결국 이렇게 서서히 사라지는 걸까?' 슬펐다. 그런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의 '진짜 문제'를 찾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코인 노래방을 갔다. 그렇게 오빠에게 함께 오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이곳을 결국 혼자 이렇게 오게 됐구나. 기분이 묘했다. 생각나는 노래를 마구잡이로 불렀다. 그러다 어느 노래 가사에 있던 내용을 보고 덜컥 눈물이 났다.
'조금씩 넌 변했다.
매일 오던 연락 난 기다린다.
서운해하는 날 보는 게 슬프다'
콕 집어 언제부터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빠에게 서운함이 쌓이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던 순간이 생각이 났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숱한 하루들. 작은 부탁들도 들어주지 않던 매일들.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상대방을 관찰하고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해주고,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기억해 주며 사소하게 챙겨주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서툴긴 했으나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면서 나에 대해 기억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던 오빠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그때부터 더 이상 내 마음에 오빠에 대한 사랑이 채워지지 않았고, 기존에 채워져 있던 사랑이 바닥이 나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무작정 귀여워 보이고 바보 같았던 모습이 이제는 꼴 보기 싫어진 것이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구나 오빠를 향한 내 사랑이 이렇게 식었었구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코인 노래방에 같이 오자고 약속해 놓고 오빠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또 다음으로 넘긴 게 생각이 났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씩 어긋나 버리니 더 이상의 기대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마음은 너무 아팠지만 한편으론 후련했다. 우리의 진짜 문제를 찾은 것 같아서. 사랑과 관계도 삶도 문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제의 해결점이 달라진다. 이 사실을 바로 오빠에게 감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하루가 지난 뒤 글로 정리해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오빠와 집에서 다시 만났다.
오빠와 대화를 나누기 전 많은 생각을 했다. '이 문제점을 알게 됐을 때 오빠는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너무 자신이 없는 일이라 더 이상 노력은 힘들다고 할까? 그럼 우린 이대로 끝나는 걸까? 만약 오빠가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진짜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혼자서 아무런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오빠와 대화를 나눴다.
오빠의 첫마디는 '우리의 문제를 잘 발견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알려줘서 고맙다'였다. 예상 못한 결과는 아니지만 역시나 오빠는 오빠였던 것. 솔직히 내 이야기를 듣고 인정하지 않고 회피할 수도 있을법한데 오히려 빠른 인정을 했고, 나에게 더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나에게 좀 모질게 대했었던 것 같다고. 오히려 나의 행동이 바뀐 이유를 제대로 알고 나니 나를 더 이해하게 됐고 자신이 진짜 잘 못 했던 것 같다고. 그러곤 자신이 더 노력하고 싶다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이미 마음이 많이 식어버려서 더 사랑할 힘이 남아있질 않다고 했다. 그러나 기회는 줄 수 있다고. 오빠의 사랑이 점점 다시 채워지면 나도 충분히 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자신이 끝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하고 우리의 대화는 잘 마무리 됐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예전과 조금 다른 모양으로 더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사소한 싸움으로 이혼 혹은 헤어짐을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이렇게 다시 더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 결과에는 오빠의 노력이 정말 컸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다 기록했고 당일, 혹은 바로 다음 날, 늦어도 일주일 이내는 다 들어줬다. 오빠의 노력이 피부로 와닿을 만큼 느껴져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내 마음도 바로 다 풀어졌다.
오빠의 사랑의 언어는 '사랑한다. 보고 싶다. 잘한다. 예쁘다' 칭찬해 주는 것인데, 뼛속까지 경상도 여자라 표현이 서툴렀지만 오빠의 노력 덕분에 나도 열심히 표현하며 노력하고 있다. 물론 서로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겠지만 난 이 모든 결과를 오빠 덕으로 돌리고 싶다. 오빠의 목표가 바로 내 사랑이 채워져서 다시 '오빠의 매력'에 대해 연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오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할 때 매일 하루에 하나씩 오빠의 매력을 썼었고, 88번에서 멈춘 뒤 지금껏 깜깜무소식이었는데 2주간의 오빠 노력으로 다시 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솟았다. 온천수가 와락 터지듯 우리의 사랑도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오늘도 오빠의 '관계를 위한 노력' 매력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