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모츄 Sep 19. 2024

디자인에 그런 평등은 없다

지금은 삶의 길이 달라져 만남이 뜸하지만, 김예정 목사님은 저를 아주 사랑해 주시는 목사님 중 한 분이십니다. 청소년 감호시설에서 일하다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쫓겨나 지하 월셋방에서 한창 어려울 때, 그 분은 기도하다가 제 생각이 나면 아무 이유없이 돈을 보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그 때마다 돈이 너무 필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거절도 못하고 그 분께 몇 번인가 그런 식으로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서너살 무렵이니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났네요.



목사님과 저의 신앙적인 색채가 잘 맞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가 개혁주의적 성향을 선호했던 반면, 목사님은 성령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으시며 신앙을 키워오셨습니다. 사실 지금도 색채로 보자면 거의 맞는 부분이 없다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교제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서로 교제할 때 하나님이 우리 삶에 하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서로의 신학적 다름이나 강조점의 우월함에 대해 논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제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환경과 사건을 통해 어떻게 일하고 계시고, 말씀을 통해 무엇을 알려 주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것들이 우리 삶에 실제로 녹아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서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교단이나 교파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전혀.


목사님이 한동안 교도소 사역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쓸 브로슈어와 포스터 등을 부탁받았었는데, 사역 자체가 자발적인 헌금이나 헌신, 헌물 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디자인 비용은 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저도 흔쾌히 동참하겠다 했고, 그렇게 해서 기도하고 나온 첫 작업물이 아래와 같습니다. 이제보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저는 작업 전에 꼭 기도를 하는 버릇이 있습다. 대단한 기도는 아니지만 열에 아홉번은 꼭 이렇게 기도를 하고 시작합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이상, 하나님이 이 분들에게 주고 싶으신 디자인이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일을 제 손에 맡기셨으니,  저의 손을 연필처럼 들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그림을 그려주세요. 제 실력으로는, 제 능력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은 그릴 수 없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아무리 못 만들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은 될 수 없어요.

저 혼자 잘나서 디자인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 핑계대며 제 실력을 과대포장하지도 말게 해 주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해 주세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시죠?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이 일이건 뭐건 아무 소용도 없는 것 아시죠?  제 고백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때마다 단어는 다르고 말은 길었다 짧았다 하여도, 골자는 항상 이랬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디자인에 대해, 만들어 지고 나서 스스로 분석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내가 머리로부터  애초에 설계했던 대로가 아닌, 마침내 드러난 최종 디자인을 스스로 많이 감상하고 많이 살펴봅니다. 이게 뭘까..하고. 물론 제 설계대로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서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경우, 제 설계대로 진행된 디자인들도 꽤 있습니다.


만들어 드린 브로슈어가 그분들 마음에 쏙 들어서, 포스터도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포스터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무료로 인쇄를 해 주시는 스탭측에서 요구사항이 들어왔습니다. 포스터를 브로슈어 표지전면(표4,표1)처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아니면 각 사람들의 사진 크기를 김 목사님 사진정도로 다 키워서

"동등"하게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아유 네 그러시지요' 하고 해 드렸을 법도 한데, 당시엔 제가 어찌나 까칠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1. 아무리 협력사역이고, 교회라는 곳이 하는 일이 모두가 주체와 주인공인 사역이라고는 하지만, 명목상으로라도 "000의 콘서트"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이상 거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2. 그 책임을 무너뜨릴 경우, 디자인 전체의 강조점이 무너진다. 레이아웃은 말할 것도 없다. 

3. 만약 모든 사람이 주체라 여기고, 동시에 스스로를 하나의 빛도 없이 섬기는 밀알처럼 정말로 생각한다면, 사진 크기가 작던 크던 그것을 문제삼지는 않아야 된다. 

4. 스탭진 본인들이 개의치 않는데 굳이 디자인을 바꾸라고 누군가 하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그런 류의 겸손함은 예배 끝나고 서로 인사할 때는 유익할지 몰라도, 디자인의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 1의 책임을 무너뜨리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다.

6. 그렇게 변형되어진 디자인은, 스탭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만족감이나 감사함을 조금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디자인의 본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참석자들에겐 털 끝만큼의 감동도 전해주지 못하는 디자인일 것이다. 메인타이틀도 서브타이틀도 없고, 중심점도 없고 풀어지는 곳도 없는 디자인이 될 테니까.


이 의견은 말만 조금 부드럽게 바뀌어서 그대로 전달되었고, 수용되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현수막에 대한 의뢰도 들어왔습니다. 교도소 강당이라 무대가 너무 썰렁하니 현수막을 좌우로 두개 걸었으면 했습니다. 하나는 포스터와 동일하게 하고, 반대편에는 알아서 해 주었으면 한다 했습니다. 클라이언트 말 안듣는 나는 역시 '기도'하고, 포스터 이미지 없이 다음과 같이 카피를 영감받아 디자인했습다.




디자인을 다 끝내고 확인파일을 보내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드렸습니다. 

*** 

한번 만들어 놓으시면 계속 쓰실 것이라 하셔서 이번 포스터의 이미지는 뺐습니다(다음 번엔 어떤 이미지가 쓰일지 모르니까요). 포스터는 또 강렬한 시선집중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라서, 현수막처럼 사이드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기도 하구요. 무대로 쏠릴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잡아먹거든요.

가장 소망이 되는 문구를 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서 소망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예수님이라는 단 하나의 소망을 붙들어야만 합니다.

이런 생각을 주셔서 카피를 쓰고 만들었습니다. 하얀 벽에 잘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사이즈는 말씀하신대로 120cm x 360cm 입니다. 

***





그리고 사역이 끝나고 며칠 후, 그런 일이 그대로 일어났음을 전화로 들었습니다. 아주 흥분된 목소리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얘기하는 목사님이 전해주는 내용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듣고 있던 나도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포스터와 전단지를 보고 당시 부소장이신 박** 장로님이 크게 감동을 받으셨고, 콘서트 내용에도 감동을 받으셔서 교도소 사역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셨다고 했습니다. 다들 A4지에 한글파일로 순서만 프린트해 오는데, 예쁜 디자인에 고급지로 찍어낸 정성에 감동하고, 디자인이 왠지 너무 마음에 들어 또 감동하고, 콘서트의 내용과 전해지는 복음의 적시성 때문에 또 감동하고... 이 디자인을 하고 가장 보람된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목사님과 가장 최근에 연락한 것이 몇 달이 넘었네요. 예전엔 참 왕래도 통화도 자주 했었는데...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챙겨주시던 손길만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을 쓰며 십여년전 그때를 돌아보니, 그때의 제 미숙함과 풋풋함(?)이 묻어나 부끄럽기도 합니다. 성향이나 성정, 디자인적인 완성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라면, 아니 신앙인이라면, 때로는 교회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기 보단,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거기에 순종하는 디자이너이자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니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