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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14. 2024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77

행복하기 위해 욕심부렸지만 그 욕심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청소하는 것이 나에겐 숙제와도 같은 일이었다. 남은 하루를 어떻게 쓰든 상관없었다. 숙제를 무사히 마쳤음을 안도하며,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이 아침마다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 아침 반복해야 할 일들로 인해 점차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인 배변조차 기록을 해가며 체크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버거웠다.

작년에는 유독 '반복되는 하루'가 버거웠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남들에겐 일상이었을 일이,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일상이 싫어서 아침에는 눈 뜨고 싶지 않았다. 그 일상은 악몽으로 이어졌으니 잠드는 것조차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난 마지막 여행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새로운 계획이 생겼고, 그렇게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또다시 그 악몽이 반복되고 있다.




세상엔 노력하지 않아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던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쉽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니 그 어떤 원망도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 순응하며 잘 적응하며 살았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베네핏이 주어졌을 때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서 또 무엇을 빼앗아가려고 이러는 걸까 싶어 몹시도 불안해졌다.

2009년 필리핀 출장 갔을 때, 회사 임원진을 따라 마닐라 호텔 카지노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잭팟이 터졌다.


예전에 필리핀 마닐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일정 이후에 딱히 관광을 할 여건이 아니라 근처 유명한 호텔 카지노에 구경을 가게 되었다. 회사 임원 두 명이 게임을 하겠다며, 나에게 10달러 정도를 주고는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운과 관련된 것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나는 그 돈조차 아까웠다. 슬롯머신 앞에 가만히 앉아만 있자니 왠지 눈치가 보였다.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근처에 있던 한 손님에게 다가갔고, 동시에 일행도 함께 따라왔는데, 갑자기 그 기계에서 잭팟이 터졌다.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경우도 있구나 싶었지만 다시 반복될 일은 없겠다 싶어서 그냥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가 다가가는 그 순간에 딱 맞추어서 터질까 싶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갔던 일행이 돌아왔는데 순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들이 내 부근으로 다가올 때, 딱 맞추어서 코인을 넣고 레버를 당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잭팟이 터졌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건 속임수라는 것을 확인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슬롯머신마다 다르겠지만 몇천 번 스핀 할 때마다 한 번꼴로 나온다는 잭팟이 어떻게 하루에 두 번씩이나 터질 수가 있을까? 비록 다른 머신이긴 하지만 한 공간에서 연이어 터지는 슬롯머신을 보니 '도박은 역시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만 깨닫게 되었다.

난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았다. 내 앞에 쌓여있는 코인을 모두 돈으로 바꾸었다. 지켜보는 누군가는, 잭팟이 터진 내가 더 큰돈을 쓰기를 바랐겠지만 이미 난 그들의 '수'가 보였다.

하지만 나의 행운을 지켜본 일행이 내가 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잃었다. 그것이 카지노가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우연히라도, 행운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상황 때문에 나의 운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지만, 설령 그것이 나의 운이었다 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이제 또 무엇을 각오해야 하나 싶어 불안하기만 했던 것 같다.

나는 눈먼 돈이 생겨도 내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는 그 돈을 쓰지 못했다.

필리핀에서 생긴 돈이니 필리핀에서 모두 쓰기로 했고 그래서 미국 달러 대신 필리핀 페소로 받았다. 나중에 필리핀으로 돌아와 쓰기 위해 그 당시엔 정말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 후 몇 번이나 필리핀에 다시 가려고 했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회사라는 우리에 갇힌 직장인이 되어,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퇴사를 하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내 마음에도 작은 여유가 생겼고, 드디어 그렇게 고대하던 필리핀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사이 필리핀에는 화폐 개혁이 있었다. 몇 년에 걸쳐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해 주었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만약 교환 기간 내에 필리핀 현지에 갈 수 없다면, 국내 시중 은행에 가서라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내가 가진 돈이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있었다.

처음엔 그 사실에 절망했다. 정말 아까웠다. 뭐라도 사 올걸 하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고 이내 안도하고 있었다.

"이걸로 끝나서 다행이다."




죽은 사람을 보면 모두 다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일찍 죽었다며 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왜 착하고 좋은 사람은 빨리 죽는 걸까? 평생 동안 받을 사랑을 모두 받았으니 이제 그 삶 또한 그만하라는 걸까?

아무리 봐도 나쁜 사람이 일찍 죽을 확률보다, 좋은 사람이 일찍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되면 일찍 죽을 수 있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좋은 사람이 되면 나를 빨리 데리고 가시지 않을까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베푸는 사람이 되었고 남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았다. 지인에게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도 그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떠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불순한 마음 때문인지, 나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조건 없이 베풀었던 그 많은 친구들조차 지금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행복하다고 말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진짜로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한 거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것에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로 행복하다고 느낄 것만 같았고, 누군가 상이라도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한 순간마저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받아가려는 것만 같았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 힘이 없다는데, 정말 그런 걸까?




나의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계획대로 잘 흘러갈 리 없을 테니 혹시라도 어긋나면 플랜 B로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계획형 인간, 극 J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계획을 분단위로 계획하지는 않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그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 계획마저 어긋날 것을 염두에 두고 C, D, E, F, G... Z까지 수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계획했으니, 그저 담담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사이 그 수많은 계획들 중 대부분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다시는 꿈꾸지 못하게 되어버린 일도 있었다. 다른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며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에게 남은 계획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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