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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25. 2020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대단할 것 없는 사랑이지만.






홍상수 영화는 20년 넘게 비슷비슷해서 나도 한 10년 전부터는 ‘이제 안 봐도 될 거 같아’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웃긴 건 그러면서도 또 때 되면 한 번씩 찾아본다는 거다. 그러니까 딱 끊어내지 못하게 하는 그만의 매력이 있긴 있는 거다.  어제가 그런 때였는지 갑자기 김민희도 보고 싶고 해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 를 봤다.  


사랑이 뭘까.  유부남 감독이랑 사랑에 빠진 일로 곤란해진 유명 배우 영희는 선배 언니랑 함부르크로 가서 머문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은 본인에게는 특별할지 모르나 보이기로는 일 없이 거리와 공원을 배회하는 특별할 것 없는 시시한 일상일 뿐.  





지인들과의 술판 (현실)





유부남 감독 일행과의 술판 (꿈)






세월이 흘러 다시 한국을 찾은 영희는 영화판의 옛 지인들을 만나러 강릉을 찾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떠들고 그러다 주사도 부리고 하는데 거기엔 아무 대단할 것이 하나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그 비슷비슷한 술상.  벌써 20년 넘게 똑같은 그 술상. (껄껄껄)     취중진담,  그러나 돌아서면 잊어버릴 헛소리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말들. 결국 나한테만 진실한 이야기. 하여 영희는 외롭다. 사랑은 나에게만 진실한 것.  코트에 모래를 다 묻힌 채로 한 겨울의 모래사장에 누워 자는 영희는 외롭다.   그녀는 자면서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도 현실과 똑같은 술판이 벌어진다. 거기서 그녀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유부남 감독과 그 일행을 만나 술을 마시는데 멋이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재회이다.  그렇게라도 만나 술주정같은 고백을 주고 받았으니 영희는 행복했을까. 이런 데서 주무시면 큰일 난다는 행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백사장 저 끝으로 멀어져 가는 영희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그지없다.   





화려한 스타의 모습은 간데없고...






제아무리 날고 기는 스타일지라도, 무슨 대단한 일을 했을지라도 사람 사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고, 각자 자신들의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착각하고 살지만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 사는 거랑 별 차이 없다고, 사는 건 누구에게나 쓸쓸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침 조깅을 하며 이 영화를 떠올리는데 낄낄 웃음이 나왔다. 홍 감독에게는 세상 모든 걸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  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 같다.  ‘야, 힘 빼! 그냥 다 이 정도야!’라며 민낯을 들이민다.  어쩌면 난 이것저것 욕망하며 사느라 몸과 마음에 낀 기름을 빼고 싶을 때마다 그의 영화를 보는지도 모르겠다.  자의식 과잉으로 뇌가 터질 거 같을 때 허파에 든 바람 빼기에 좋은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영화는 참 반영화적이다.  





덧)
인스타나 유투브 같은 거 보다가 홍상수 감독 영화보면 현실감각 찾는데 도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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