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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an 11. 2023

2021년 가을의 베이킹

살기 위해 굽는다

에스프레소와 고르곤졸라 마스카포네 휘낭시에
피를 파는 일


이번 여름은 귀촌하고 처음으로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2016년에 시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제법 안정화되고 유명해졌고 작년 코로나에도 더 높은 매출과 성장을 거듭했다.  내가 사는 섬뿐만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관광지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국내 여행지와 캠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다. 사면이 바다인 섬답게  이곳은 여름이 가장 호황이다. 이곳에 계셨던 분들은 일 년 장사를 여름 장사로 먹고산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작년은  일 년 내내 바빴다. 바빴다 쉬었다를 반복하면서 내 몸과 마음도  긴장과 이완을 할 수 있는데 2020년은 계속  긴장상태였다. 2021년 1월에 들어서면서 이대로 계속된다면 내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남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나는 근처 편의점 도시락이라 샌드위치 컵라면으로 때웠다. 정말 바쁘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될 때까지 물 한 모금, 화장실 한번 못 가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다반사였다. 돈과 맞바꾸는 내 수명, 피를 파는 일 같았다.

 

이곳에 내려올 때 자연 속에 아이와 함께 여유 있고 자족하며 살기 위함이라고 얘기했었다. 그런 내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나는 끝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바쁘면 바쁜 대로 힘들어서 울었고 한가하면 이대로 이 자영업은 하락세는 아닐까 불안해하며 울었던 4년이었다.  남들 쉬는 기간에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내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꽃같이 이쁜 시기를 그렇게 흘러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현타가 왔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놈에게  더 집중하기 위해 많은 결단이 필요했다.  두 돌이 지나고 우리가 이곳으로 왔고 이곳에 정착하는 1년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4년은 친정엄마손에 아이를 맡기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 매주 주말과 공휴일 4년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손주하나 보고 와주셨던 친정엄마에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죄송하다.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그만두자고 수십 번 다짐하던 끝에 정말 딱 미치기 직전 상태에 가게를 내놓았고 한 달도 안 되어 임자가 나타났다. 거래까지는 딱 1주일 만에 모든 게 정리되었다. 대서사극을 마친 배우의 심정도 이러할까?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내 감정이 어떠한 지는 당장은 몰랐다. 얼떨떨한 기분과 다시는 자영업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뿐이었던 듯하다.  정리와 동시에 나는 일단 쉬어야 했지만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을 했다.






식당은 죽어도 돌아보지 않는다,


남편 혼자 하라 그래, 나는 내 일을 집중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리라 결심했다.  이곳은 온통 안 되는 부정적인 것들만 가득한 것 같다. 이곳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 공간이 너무 싫고 이곳의 사람들이 싫었다. 대학시절에 유일하게 해 본 알바는 과외였고 졸업 이후에는 대학원 준비와 취업준비로 도서관에서 내 20대는 흘러갔다. 운명 같은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런데 결혼 10년 차 난 이 낯선 곳에 와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난 모른다. 그리고 늘 있었던 습관처럼 몸에 밴 나의 생활방식은 주어진 삶에서 늘 쫓기듯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 중간중간 남편은 물었던 듯하다. 지금 이게 맞냐고.. 그런데 들리지 않았다.


2020년 대상포진을 걸리고 인간관계의 단절을 맛보고 난 후 현실을 자각했다. 냉정한 현실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늘 외면했던 그 냉정함을 또 한 번 직시했다.


서울로 뛰쳐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2021년 7월, 정말 귀하게 얻은 돈과 맞바꾼 시간들이 왔다. 나와 아들은 서울로 뛰쳐 올라왔다. 시아버님의 수술도 있었고 부정교합 소견으로 정밀진단을 받으라는 학교 알림으로 세브란스 예약을 해 두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잠깐 나온 나의 베프친구 만남도 있었고 그러했기에 무조건 가려고 했다.  시골에 있으면서 정말 아쉬운 점이 병원 진료이다. 이곳에는 치과는 있지만 소아치과는 없고 교정전문치과도 없다. 여기보다 좀 더 큰 시로 나와 정기검진을 가던 동네치과에서도 못 알아본 부정교합을 시골학교에서 단체로 간 보건소에서 육안으로 알아보았다.(나중 듣게 얘기인데 보건소 공중보건의로 오신 치과 선생님은 도시에서 소아교정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고, 운이 좋은 아들)

 

살기위해 굽는다

오늘은 고르곤졸라 마스카포네 피낭시에를 구웠다. 서울 올라간 김에 작년에 의뢰했던 유자 젤리 정산도 해야 했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과 몇 가지를 배웠다. 남편의 교회 후배이자 파티셰에게 직접 배워온 것을 연습해 보았다. 여러 개 연습했는데 오늘은 찍고 사진을 찰칵 찍어보았다. 그래야 의미가 있을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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