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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Feb 23. 2023

그림 그리는 식당 아줌마

2022년 5월의 기록

처음이 어렵다.

그림을 취미로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남쪽섬에 내려온 첫 해에 식당 공사를 하면서 사귀게 된 이웃을 통해 주민 대상 그림수업강좌 개설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겸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붓을 들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대학 졸업할 시점에 진로고민을 하면서 미술사로 대학원 진학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조금 하긴 했지만 실제로 내가 그림을 그릴 거라는 예상은 해보지 않았다. '취미미술'이라고 말을 붙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미술 수업을 듣기 위해서 시골 생활 5년 차에 처음으로 혼자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면허를 딴 것은 10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내가 운전할 일이 없었다.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가능했고 시골에 와서는 동업자와  일을 하면서 24시간 늘 같이 있으니 내가 운전대를 잡을 일은 더 없기도 하다. 일을 하면서 취미를 갖고 싶었는데 시간과 마음의 벽으로 늘 망설였는데  무슨 용기가 난 건지 모르겠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


나의 해방일지


운전면허증은 10년 전에 땄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운전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독립한 느낌이 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수업과 실습이 있었고  평일 저녁에는 수강생끼리만 모여 그림을 그렸다. 주말이 가장 바쁜 자영업자에게는 생활전선의 격무를 끝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다르게 보면 또 하나의 노동이기도 했다. 퇴근하고 나서 집에 얼른 들어가서 눕고 싶은 욕구를 없애고 미술실로 향할 때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육아도 살림도 일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상상하던 색감을 쓰고 그리고 칠한다는 매력, 아무 생각 안 하고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로 충분히 의미있었다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그림수업을 권유했던 이웃은 나랑 수업 2번째 수업을 듣고 나 혼자 수업을 듣게 되었다. 셋째 임신을 하여 더 이상 그림수업을 참여하지 않았다.  동네에 아는 이도 없이 그 이웃만 믿고 시작했고 그 친구가 빠지면서 내가 가장 어린 수강생이었다. 각 면에서 오신 분들, 최소 나보다 10살 이상의 분들의 연장자들과 그렸다. 귀촌인과 현지인의 융합이랄까? 처음엔 수업 듣고 조용히 그림만 그리다 오게 되었지만 전시회를 기점으로 인생의 선배이자 그림동무로써의 연대감은 형성되었다.


6개월은 소묘, 수채화, 크로키, 아크릴화 수업과 실습 과정을 거쳤는데 축소판 입시미술 같기도 했다. 그리고 유화로 넘어왔다.


함께 걸어 좋은 길 | oil on canvas | 2020
그림 그리는 식당 아줌마의 첫 작품

유화 수업 후 내가 그린 첫 작품.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가을 이탈리아 여행을 한 달 했을 때 시칠리아 거리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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