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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elle Riyoung Han Nov 02. 2019

반복되는 10월 31일의 감성.


10월이 끝이 났다. 시간이 1년만큼 돌고 나면 다시 10월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2019년을 다시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지금 이 시간과는 영영 이별.

내일을 살아가고 새로이 다가오는 11월은 10월 보다 내적으로 풍성한 시간이기를 기대해 본다.



해야 할 일들을 하느라 하고 싶은 일은 한동안 미루어 놓는 시기에는 손글씨로 써놓은 노트를 뒤적거리곤 한다.

긴 문장을 써 내려갈 여유가 없어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해 놓고

책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읽다가 기억해 두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기록을 해둔다. 

이렇게 파편적인 기록마저 내 취향과 일상을 만들어 가는 소재가 되어주었는데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수집해온 소재들을 차근히 정리하면 개인적인 '취향 노트' 한 권이 나올 것 같다.



그렇게 파편적인 문장들로 채워진 손글씨를 노트를 넘겨보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물이나 문장들에 꽂힐 때도 잦고, 한 해 동안 꾸준하게 관심을 지속해온 것들을 새삼 깨닫게도 된다.

핀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Pentti Sammalahti'의 'Ici au loin'은 올 한 해 동안 가장 관심 있게 펼쳐 본 사진집.

북유럽 사진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의 사진집으로 인해 확고한 취향 하나 더 갖게 된듯하다.



유럽에선 두 달이 넘는 여름 바캉스 외에 일 년의 학기 동안 네 번의 바캉스 (Vacances scolaires)가 있다.

2주 동안 네 차례 주어지는 이 바캉스는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데, 추수 감사 절기가 끼어있는 10월 말경부터 11월 첫째 주까지 바캉스 뚜쌍 (Vacances Toussaint)을 보내고 다음 주 월요일부턴 다시 학기가 이어진다.

바캉스 기간 동안 계획 동안 했던 일은 어느 정도 진행을 했고, 남은 시간을 부지런히 달리면 잘 완결될 것 같은데,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음악을 하고 연주를 피할 수 없었던 시기에는 긴장과 불면증을 앓고 살았어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했었는데, 완전히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지금도 늘 채워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안한 건 천성적인 건가?



10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었다. 

개신교 사회인 미국에 켈트족의 이주민들이 자리를 잡으며 핼러윈 데이라는 축제가 생겨난 날이다.

미국의 켈트족 문화라 유럽에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파리의 상업 중심지 몇 곳에서는 핼러윈 데코들이 정신없이 걸려 있다.

크리스천인 내게는 의미가 없는 축제인 건 마찬가지인데, 핼러윈 분위기 속에서 옛 여행에서 담았던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2년 전 즈음, 암스테르담 여행 중에 누군가의 창문에 무심결에 시선을 툭 던졌었는데, 창문 위에 주르륵 걸려 있던 마녀들.

특이하기는 했지만 오래 보고 있으니 섬찟 하던데, 마녀를 수집하는 취향의 사람은 어떤 분위기가 느껴질까?



온라인 쇼핑몰을 지난해 10월 1일에 오픈했었고 이제 1년이 채워졌다.

그러기 10월은 앞으로도 내게 의미 있는 달이 되어줄 것이다.

ㅍ리의 사업자로 쇼핑몰을 준비하며 허가 신청을 받고 등록이 될 때까지 수차례 우편물을 보내고, 문의 전화를 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거쳐, 몇 차례나 기관들을 들락거려 정식 사업자 등록증을 발부받기까지 1년 훌쩍 넘는 시간을 기다렸었다.

쉽지 않게 첫 발을 떼며 주변에서 무엇이든 첫 시작이 가장 어려운 거라는 말에, 시작을 하고 나면 조금 수월해 질까 기대했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처음 쇼핑몰을 시작하던 무렵에 소개했던 제품들 중에서 10월 31일의 소재와 적절하기에 쇼핑몰의 사이트 사진 몇 장을 데려와서 활용해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은 생각의 빛깔로 물이 든다"라는 문장을 오늘 다시 한번 새겼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늦은 오전이 되어서 마시는 첫 커피를 내리고,

카페티에르가 뜨겁게 달구어지고 커피가 완성되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며, 주방 문턱에 기대 선채로 몇 줄의 문장들을 읽는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히르슈하우젠' 박사의 두껍고 재미없는 행복론 서적을 몇 년 전에 선물 받았고,

통상적인 이야기들만 하는 듯해 별 흥미를 느끼질 못했었다.

오랜 시간 책장만 차지하고 있던 그 책을 버릴 수는 없어서 짧은 시간 동안 짬짬이 읽어가는데, 곧 가랑비에 옷이 젖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읽었던 문장은 요즘 내가 자주 떠올리는 생각과 일치하기에 한 번 더 밑줄을 그어 놓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은 생각의 빛깔로 물든다"라고.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말했다는 이 문장을 제시해 놓고 '히르슈하우젠' 박사는 말을 한다. 

생각의 빛깔은 뇌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해 주는 신경전달 물질들에 의해 정해지며,

이 생화학 물질들은 생각의 맛을 결정짓는 소스와 같아서 달콤하거나 쌉쌀할 수 있다고.

가령, 뇌의 소스가 세로토닌인지 도파민인지에 따라 생각의 맛은 달라지는데,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생각의 색깔은 어두워지고,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생각의 색깔이 알록달록 해져서 환각 상태가 되고 만다는.

이런 생각의 빛깔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중요해,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순간순간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생각의 색깔은 우리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암울하다면 뇌는 미래도 똑같이 암울하게 그려가면서,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많은 기억들을 과거로부터 찾아낸다고 했다.




지금 행복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도 행복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 공공연히 들어온 말이기는 하지만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아가다 보면, 점점 더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논리에 수긍이 간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그리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놓고 깊게 생각하는 게 싫었던 건, 

형체 모호한 그것을 어느 특정한 모습으로 그려 내어야만 한다는, 강박과 의무에 묶여버리는 삶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뭐 아무튼. '히르슈하우젠' 박사의 뇌의 빛깔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뇌는 내가 요구하고 세뇌하는 대로 따라가는 단순한 구조라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이러한 추론 역시 낯선 것은 아니다.

요즘 흔히 접할 수 있는 유튜브의 명강사들의 강의에서도 몇 차례 비슷한 내용들을 들은 기억이 있다. 

히르슈하우젠 박사의 놀 리가 옳든 아니든 믿어 보는 게, 안 믿는 것보다 일상을 살아가고 삶을 만들어 가는데 득이 되니 그렇게 따라 해 보기로 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들어 좋은 것들을 보고, 귀를 열어 좋은 말들을 들으며 빛깔 고운 생각들로 채워가기로.



한 해 동안 심고 가꾼 것들을 추수하고 감사의 절기를 보내는 '추수감사절'이 11월에 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은 세상의 분위기와 함께 정신없이 흘러가지만,

11월은 살아온 시간을 반추해 보며 인간이 가장 깊게 고독을 느끼는 시기이라는, 오래전에 읽은 글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계절적으로 아름다운 달이 '11월'이라는 것도.

깊은 고독을 느끼기보다 11월에 취해 가장 아픔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보고,

나의 삶 속에 주어진 것들로도 풍요로이 누리는 계절이기를.



11월에도 내 삶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다만, 같은 페턴의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갈지라도, 그 걸음이 막혀 있는 원 속에서의 반복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원을 그리며 넓혀가는 달팽이의 모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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