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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07. 2020

무대에 서고 싶었던 불운의 보컬리스트

험난한 가요제 도전기, 그 결과는?

내가 처음 무대 맛을 알게 되었던 건 바야흐로 19년 전쯤, 초등학생 4학년 첫 수련회에서였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캠프파이어를 하는 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수련회 일정의 마지막 밤에 학생들의 장기자랑을 뽐내는 시간을 갖고,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엉엉 우는 촛불 의식이 필수 코스였다. (제법 큰 고학년들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우는 행위를 저학년들이나 할 법한 일이라며 다소 쪽팔린 행위로 여겼는데, 그럼 어떻게든 이 고학년을 울려보겠다는 레크레이션 강사와 절대 울고 싶지 않은 고학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펼쳐졌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오락타임이 있었고, 이 때 레크레이션 강사가 무작위로 학급 아이들을 호명했다.

‘반에서 제일 인기 많은 친구 무대로 나오세요!’
‘키 제일 작은 친구 무대로 나오세요!’

레크레이션 강사가 외치는 족족, 누군가가 무대 중앙으로 끌려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췄고, 가장 분위기를 고조시킨 아이의 학급에 점수를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제법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모자 쓴 친구 나와주세요!’하는 외침에 친구들에게 붙잡혀 나왔고,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려 당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테크노를 추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제꼈다.

‘벙거지 모자 쓴 친구 반에 200점 드립니다!!’

친구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쌌던 그 때의 기분은 솔직히 짜릿했다. 나는 무대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런데 나는 본투비 퍼포머는 아니었다. 나는 그 이후 잔잔하게 무대를 그리워하며 또 다른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으나, 혼자서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할 위인은 못 되었다. 무대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친구와 함께 나가기' 전법이었다.

중학생 때 영어 선생님이 주최한 교내 팝송대회가 있었다. 나는 그때 반에서 재간둥이 역할을 톡톡히 했던 두명의 친구를 꼬셔 Black Eyed Peas의 Let’s Get It Started 노래를 부르고자 했다. 이 팝송을 제대로 소화하기만 한다면 그 무대를 찢는 주인공은 단연 우리였다.


“다들 점잖게 레몬트리나 업타운 걸을 부르겠지, 누가 이런 랩을 들고 나오겠어? 1등은 당연히 우리 거라니까?”


내 아이디어에 꽤 구미가 당겼는지, 친구들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제의 수락 그 이후였다. 친구들은 가벼운 마음에 수락을 했으나, 연습을 완벽하게 해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싶을 만큼의 열정은 없었던 것이다.


“랩 다 외웠어?” “여기 화음도 연습해야 되는데”


반면 1등을 목표로 두고 있는 나는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당연히 그들에게 동기부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연습이 안 된 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 때의 심정은 울며 겨자먹기였다. 왜 망신살을 당하기 전에 참가를 취소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 씨디를 틀어주던 상급생 오빠가 자꾸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그 음악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노래를 불러야하는 데다가,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시작점을 찾기 어려운 랩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시원하게 그 무대를 말아먹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고를 걸, 괜히 호기롭게 랩을 골랐다가 이도저도 아닌, 관객과 참가자가 서로 민망한 무대가 연출되었다.

씁쓸한 흑역사를 뒤로하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 학교에서는 매 해 가요제가 열렸다. 중고등학생 때와 비교도 안되게 커진 규모로 인해, 나는 혼자 무대에 설 생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고, 무대 메이트 찾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같이 나가기로 했던 친구들과의 무대는 번번이 고사됐다. 간신히 찾았던 무대 메이트는 자신의 음역대와 맞지 않는 노래를 선곡해 와서는 목을 손으로 쥐어짜며(옆에서 보기가 조금 딱했다.) 노래를 불렀는데, 가요제까지 무조건 음역대를 올려 오겠노라고 약속했으나 끝끝내 지키지 못했다. 또 흑역사를 만들 순 없었던 나는 당연히 참가를 포기했다.

그렇게 내 안에 불씨가 사그라들 때쯤 내 열정에 불을 지핀 사건이 있었다. 노래 실력은 형편없는데, 아이유의 분홍신이라는 노래에 신들린 듯 춤을 추며 인기상을 거머쥔 참가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퍼포먼스형 참가자였다.

‘노래도 못하는 데, 저 실력으로 무대를 나가는 저 개깡정신. 나는 왜 못하지?’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졸업 전 마지막 가요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한달가량 연습했다. 노래 선곡부터, 이 구절에서는 이 모션을 취해야 한다는 감정표현 연구까지. 내 생에 이렇게 몰입했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본선에 뽑히기 위한 예선 무대에 친한 친구도 데려갔다. 초조하게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순서가 오질 않는 거다. 뭔가 촉이 이상해서 참가자 명단에 내 이름을 확인했는데, 없었다. 내 이름이.

"그럴리가 없는데, 저 분명히 참가 신청했는데요?"
"아,, 올리긴 올리셨는데, 양식을 제대로 안지키셨네요. 참가자 명단에서 누락됐어요."

안타깝게 얘기하는 행사 주최자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고작 가요제에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게 꽤 중요했다.) 왜 난 양식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 아, 나 진짜 열심히 연습했는데. 대학교 가요제에서 양식 지키는 게 그렇게 중요해? 별별 억울한 마음이 다 드는 거다.

"본선에 안 올라가도 돼요. 연습한 거 아까워서 그러는데, 노래만 부르게 해주세요."

오잉? 이거 지금 내 입에서 나온 말 맞아? 무슨 생각이었을까? 예선 무대에는 나를 기다리는 친구와 행사를 주최한 대학생 세 명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게 무슨 진정한 객기란 말인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나를 거절할 단호함은 그들에게 없었다. 아니. 불쌍한 애 노래라도 부르게 해주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하필 또 구질구질한 발라드를 선곡해서 나는 그렇게 비련한 여주인공처럼 준비한 노래를 마저 불렀다.

그렇게 내 가요제는 막을 내렸다.

가요제는 해가 지나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보이스오브코리아, 히든싱어, 너목보 등 포맷도 다양한 가요제들이 줄줄이 히트를 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경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가 번번이 실패했던 가요제들이 떠오른다.

내가 또 무대에 설 날이 있을까? 그 때가 오면 제대로 한 번 날아보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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