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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ug 20. 2020

취업 안 되는 문과여도 난 니가 좋다.

문송할지언정

“왜 전과했어?”

“그러게 전과는 왜 해가지고”


친분이 없는 경우에는 의아함 가득한 질문을 받았고, 친분이 그득한 경우에는 내 선택을 질타하는 꾸지람을 들었다. 특히 엄마와 남자친구가 나를 많이 질책했는데 그들은 안타까웠나 보다. 보통 공대를 나오면 지원되는 것도 많고, 취업도 잘 되니까 말이다(전과를 하고 놀랐던 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퍼센트 자체가 달랐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나는 수학을 꽤 좋아했다. x가 어쩌고 하는 이차 방정식을 세우는 것도 재밌었고, 소금물 농도 공식도 좋아했다.


문학, 사회, 국사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수포자의 길로 들어서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그럭저럭 해내는 기분이 좋아서였다. 미적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고등학생 2학년 때도 수학은 여전히 재밌었다.


문제는 과학이었다. 이과생이 과학을 못한다는 건 아주 큰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못했나 이해가 되는 게 난 과학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근데 왜 수학은 좋아할까요?)


사람 간의 관계, 감정에 관심이 많은 내가 분자, 원자의 정의나 외우고 있자니 ‘저걸 어따 써먹지’ 하는 생각만 드는 거다. 성층운이 어쩌고 하는 지구과학도  파스칼의 원리를 계산하는 물리도. 그 어느 것도 깨우칠 수 없었다.


재수학원 때 그나마 암기로 커버할 수 있는 생물을 선택했고, 전도유망한 신소재공학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나는 공대생으로 졸업하려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양과학수업에서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공대 시험은 족보가 돌아서 원리만 이해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데 그 원리를 이해 못하겠더라. (용수철을 매단 실험차를 낙하시키는 실험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난 삼수를 해서 건축학과생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광고홍보학과로 전과하여 문과생이 되었다.


공대생 출신인 오빠는 내가 신소재공학을 벗어났을 때나 문과생으로서 취업 준비를 할 때나 한결같이 나를 안타까워하며, 나를 혼내는 엄마를 옆에서 거들었다.


“거기 있었으면 취업은 쉬웠을 텐데”


근데 나는 안다. 내가 신소재공학에 남아있어서 굴지의 기업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돌고 돌아 사람과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비록, 문송합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받을 수 있는 연봉의 급도 다르지만 난 공대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난 후회하지 않는다.


조금 힘들지만, 나는 문과여서 행복하다.

(라고 최면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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