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여객선터미널 쪽 어시장에 내려서 제일먼저 해안동에 있는 '꽃게살 비빔밥'을 먹고, 그 다음은 목포여중을 지나 옛 뱃사람들이 살던 언덕 올라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려와 해안가를 걷고 시원한 카페 앉았는데... 근데 왜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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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장터식당 - 꽃게살 비빔밥
한 5년 만인가... 이번엔 아주 오랜만에 목포를 찾았다. 오래된 풍경, 강과 바다,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목포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장터식당을 찾아 꽃게장 비빔밥 2인분을 시켜서 먹고나서야 '목포 여행'이 정식으로 시작됐다.
이제 스물 다섯 사회초년생 젊은 청년이 회사 일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목포역에 내렸다. 그게 봄, 그 후로 10개월 지나 가을이 되어 비로소 해방되어 목포를 떠났지만 간혹 이곳이 못내 그리워 기어코 돌아온다. 아무 연고도 없던 목포 여객선 터미널 인근 짠내 나는 어시장 옆 모텔에 임시로 살았던 게 그다지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때 먹던 '꽃게장 비빔밥'을 생각하면 식욕이 샘처럼 솟는다. 날거에 짜고 맵고한 음식 중 그나마 맛나게 먹었던 음식이 바로 '꽃게장 비빔밥' 이었다.
매번 목포에 올 때마다 여기서 식사를 하게 되니까 어쩔땐 목포를 오게되서 여기를 오게 되는건지, 장터식당 꽃게살 비빔밥을 먹기 위해 목포를 오게 되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언젠가 한번은 포장이 되느냐 여쭤봤더니 꽃게살은 포장하면 다 녹아서 안된다고 하신다. 목포에 와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이번에도 맛있게 먹었다.
풍경 : 목포의 아주 오래된 동네
100년 전쯤 일본에 의해 개항되었고, 일제 강점기 30년 동안 호남의 좋은 물건, 좋은 음식은 죄다 이 곳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아픈 역사가 베어있는 곳.
예전에 여기 잠깐 살 때는 이 곳의 역사를 잘 모르기도 했고,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단지 '오래된 어촌마을'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사실 이 동네에 도착했을 땐 "아.. 여기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에 밤에 잠을 못잤다. 심지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곳의 낙후된 풍경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과 인천에 두고 온 소중한 사람들을 당분간 못본다는 절망적인 생각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인천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서울에 있는 그 사람 때문.... 오래된 동네를 거닐며 그 때 가까웠던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주변의 사람은 교체되거나 대체되거나 잊혀지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어느새.
1897년 개항되고, 1945년 해방되기 이전까지 이 도시는 대한민국의 '4대항 6대 도시'였다고 한다. 목포역에서 목포여객선터미널 쪽으로 걷다보면 이렇게 오래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100년 전 그 시절 모습이 대부분 남아있기도 하고, 예전 내가 이 곳에 살 적 풍경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며 내 삶은 많이 변했지만, 이 곳은 내가 살던 그 기억 그대로 남아있다. 혼자 이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이 곳의 과거를 상상해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변하지 않은 거라곤 여기, 목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여행 : 오래된 곳들, 더 걷기
나에게는 예전 회사 추억이, 누군가에겐 과거 어릴 적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삶이 연속되는 정겨운 장소가.
오랜만에 목포에 갔다며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과 함께 추억여행이 행복하노라 올렸더니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었다. "중고등학교를 목포에서 나왔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죠?" 라며. 덧붙여 회 좋아하시면 민어를 드시고 오라는 말도 함께. 내가 지금 감동하고 감명깊게 거닐고 있는 이 곳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내밀며 공감해주시는 그 분이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꽤 많이 걸었지만 그래서 더 좀 걸어보기로 했다.
목포여중으로 해서 '다순구미마을'을 걸어서 갈 참이었는데, 앞으로 펼쳐진 곳은 죄다 언덕이 많이 있는 빼곡한 집들 사이의 골목길 이었으므로 먼저 화장실을 한번 가야할 것 같았다. 아무 아는데도 없고 길도 잘 모르니까 뙤약볕 밑에서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다 목포여중 옆에 붙어있는 유달초등학교를 잠깐 들렀다. 때마침 지나가는 여자아이 둘. 아까 내게 댓글을 남겨준 그 분의 어린시절 모습이 저랬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내 어릴적 학교 안 산책로를 걷던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조용히, 그리고 즐거운 추억여행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오래된 곳들을 걸어보기로 했다.
바다가 보이는 골목길
옛 모습을 깨나 좋아한다.
사람사는 모습이 좋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얼마나 오래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행복이나 구슬픈 추억이 서려있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걷는 게 참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게 고독이라면 나는 그걸 즐기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이번에 목포를 올 때는 특별히 목포에 관련한 여러 다큐를 봤다. 1992년 목포가 재개발 될 즈음 목포MBC에서 제작한 4:3 화면비율의 오래된 프로그램부터, EBS에서 제작한 한국기행 목포 5편 짜리, 또 다른 계절에 찍은 4편 짜리, 유명한 양식 요리사들이 목포의 음식을 먹으러 온 다큐에,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허영만 이라는 분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 까지.. 정말 많은 프로그램들을 틈틈히 봤었다. 그래서 '다순구미마을'이라는 이 곳에 오게 됐다. 차를 두고 왔으니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한 여름 걸어서만 여행할 작정을 하고나니까 가다 조그마한 동네슈퍼 하나 없을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역시나 힘들었다.
계단이 너무 많아서 놀라면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볼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걸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좋아서 계속 걸었다. 옛날에 목포는 '물'이 없기로 유명해서 90년대에도 한참 떨어진 곳에 우물물을 길러다 그걸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는데 도대체 물동을 이고, 이 골목길을 어떻게 올라오셨을지... 옛 목포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힘든건 힘든것도 아니다, 라면서 힘을 내었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한 옛날집,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안사는 집. 그리고.... 드디어 골목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바닷바람이 솔솔 - 시원한 카페에서
차로 가져왔으면 편하게 언덕을 차로 올라왔을수도 있고, 진작부터 네이버 지도를 찍고 왔으면 골목길 여기저기 오르락 내리락 헤메이다 도착하진 않았겠지. 그러나 이 과정 모두, 여행이라서...
확실히 느낀 건데, 갈증이 심할 땐 물이 최고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까 집들이 빼곡한 저 골목길을 거의 다 누비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많이 마르길래 카페를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사이다 이렇게 2개를 주문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절실했는데 갈증이 심하니까 탄산도 먹고싶어서 그냥 2개 다 시켜버렸던 거다. 하지만 카페가 실내가 아니다 보니 어느새 얼음은 금방 다 녹고 탄산은 김이 빠져버려서 계속되는 갈증을 달래지 못했다. 그때 마침 옆테이블에 앉아있는 동네 아줌마들로 보이는 분들이 얼음물을 내밀어 주셨다. 세상에. 더울 땐 얼음물이 최고구나. 벌컥벌컥 마시다 결국 뱃속이 꾸륵꾸륵 거리긴 했지만 그때 마신 얼음물은 올 여름 더울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어느새 여행이 끝나간다.
카페에서 오후를 다 보냈다. 한량이 따로 없는 이 시간, 여행이라서 괜찮은 거겠지?
오후 2-3시쯤 카페에 도착한 것 같은데 해가 질 무렵이 다되어 나왔다. 옆에서 신나게 수다나누던 아줌마 일행이 지나갈 동안 묵묵히 앉아있었다. 참 신기하다. 강한 여름 햇빛이 쏟아지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바닷 바람에만 몇 시간 앉아서 편히 쉴 수 있다니. 늘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만 있다가 이렇게 밖에서 자연바람에 시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그 거짓말 같은 시원함을 몇시간이고 느끼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이마를 스쳐 지날 때 정말정말 시원했다. 아, 이런 게 여행이구나. 평소엔 느끼지 못한 바람 한 자락에 시원함을 느끼는 것.
저녁엔 스물 다섯, 목포에 처음 오기 전부터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과 만나기로 했다. 처음 뵐 때 그분은 대리님이었고 난 사원이었는데 어느새 나도 대리직급이 되었고 그분은 이제 과장, 차장 정도 되셨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을 '대리님'이라고 부른다. 대리님을 한 5년 만에 뵙는 것 같다. 6시에 퇴근할테니 그때 머물러있는 곳 주소 찍어서 보내주면 데리러 온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또 있었구나"하면서 웃음 묻은 얼굴로 카페에서 나가려 짐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