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메 Dec 07. 2022

두 번째 수업 : 관찰의 부재

관찰의 눈이여 오라



수업에 가기 싫었다.

과제로 겨우 적어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나를 눈물짓게 하는 노래>를 주제로 쓴 그 글은 여러 새벽을 내어 썼다는게 무색하게 솔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미적지근한 글을 다시 읽고 있자니 자기 연민에 취한 나르시시스트가 보였다. 참을 수 없는 오글거림이다.



매니저님은 수업 전 날 학우들의 글을 취합해 보내줬다. 첫 시간에 글이 아름다워 기억해둔 이름이 있다. 그 이름 석자 찾아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 영화 한 신을 그려내듯 매끄럽다. 담백해서 슬픈 글.



내가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의 부재일까 생각의 부재일까.



더 수업에 가기 싫어졌다.




수업은 중림동 근처 서점에서 진행된다. 근처에 유명한 에스프레소 집이 있다. 지난 시간에 가지 못한 그 카페에 가자며 마음을 속여 겨우 나왔다.



세 모금만이면 마시는 에스프레소를 괜히 오래 붙들고 있는다. 서점에서 책도 샀다. 그제야 지하에 있는 수업 공간으로 갈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조용하다. 선생님은 다른 반 분위기는 시끌벅적하다고 했다. 나의 시끄러움은 대체로 거짓인 적이 많기에 조용한 이 반이 좋다. 다음 달에도 꼭 이 반으로 신청해야지 다짐한다.



11월을 좋아한다는 선생님 고백으로 수업이 시작한다. 한 해를 보내기에 적당해서 좋아한다고. 한 달이란 유예시간이 있어 반성이 너무 아프지도 다짐이 너무 버겁지도 않다는 이유다.



나는 11월에 생일이 있어서 좋아한다. 이유를 베낄 요량으로 종이에 적어둔다.



글쓰기 원칙 2.

구체적으로 묘사하라



알고 있던 사실이다. 'Just show, don't tell' 영문으로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게 그렇게 어렵다. 나름대로 열심히 묘사했는데 군데군데 덜컹거린다.



‘묘사할 게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지?', '어떻게 여기서 더 구체적일 수가 있지?', '묘사한 건데 왜 설명글 같지'? 질문만 또 늘었다.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관찰이 어렵다. 처음 블로그 하겠다며 식당에서 찍어온 사진이 3장이라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음식점 내부 사진 한 장, 나온 음식 한 장, 메뉴 한 장.



적을 말도, 보여줄 사진도 없었다. 그마저 한 장은 흔들렸다.



그때 어렴풋이 소심하고 게으르고 성급한 내 성격이 사진에 묻어나는구나를 느꼈다.



그러니 관찰과는 먼 인생을 살았다. 좋아하는 풍경도 왜 좋은지 살피지지 않고 그냥 좋다에서 끝냈다. 야탑 쪽엔 아직 거리에서 채소 파는 할머니가 많아 왜 그럴까 궁금했지만 소심해서 다가가지 않았다. 경주 바다에서 말리던 생선이 쥐포가 되는 건지 궁금했지만 그냥 넘겼다.



본 게 없으니 쓸 것도 없는 게 당연하다. 은유 작가님 말대로 관점의 빈곤이고 그건 곧 존재의 빈곤이다.



글 쓰는 게 어렵다는 걸 또다시 체감한다.



나의 줌 아웃된 시각으로 적는 말들은 정말 의미가 없을까. 줌을 당기긴 해볼 테지만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 평생 글을 쓰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동시에 든다.



역시 글쓰기는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수업 : 감응할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