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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메 Dec 15. 2022

세 번째 수업 : 산만하게 쓰기

어느덧 세 번째 수업.




글은 이상하다. 분명 확신에 차서 박차를 가했는데도 쓰고 나면 영 낯설다. 이건 내가 말하려고 했던 바도 아니고, 문장이 아름답지도, 솔직하지도 않은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어버린다. 이번 과제에도 역시 낯섦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과제 주제는 <말없이 나를 떠난 친구>. 시간이 갈라놓은 많은 인연 중 경제관념 없다며 나를 혼내던 대학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친구가 최고라는 이상한 생각에 심취해서 대학 친구들에겐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는데 그런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주제로 글을 썼다.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영... 미안한 마음에 심취하려는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마감은 해야 하니 휘갈겨 쓰다 이런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역겹다는 내용도 급하게 추가했다. 그 글에서 솔직한 마음은 그 문장뿐이었다.




피드백받는 수업 시간.




선생님이 내가 급하게 추가한 그 문장에 'good'이라고 써놨다. 그 부분이 왜 좋을지 사유해보라는 어려운 과제와 함께. 대답은 모범생처럼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주 듣는 이동진 평론가의 빨간 책방을 틀었다.




'산문을 쓰는 노하우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교훈을 담아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답답해져요.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분명히 여러 가지일 거예요. 어떤 부분에는 빌 브라이슨처럼 과격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두 가지 생각을 싸움 붙이고 결국에 남는 생각까지 이르는 게 중요해요. 나는 옳은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한쪽을 생각 단계에서도 지워버리고 쓰면 그 글은 반쪽짜리 글밖에 안 되는 거예요. 생각을 판단 없이 펼쳐놓으세요. "




김중혁 작가의 조언이었다. 맞아. 나도 아빠 잔소리에 그렇게 짜증 내면서 그런 글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선생님이 마지막에 휘갈겨 쓴 그 산만한 문장을 좋다고 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다듬는 과정을 저 뒤로 빼보기. 산만한 글을 그대로 둬보기. 쓰기와 탈고 작업을 완전히 분리하기. 이대로 연습한 글은 조금 더 나다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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