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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부엉 Mar 31. 2020

1월 그리고 2월

월말정산, 2020년 1월과 2월의 기록

새로운 맛을 알게 된 1월 그리고 2월이었다.

내 손으로 밥을 해 먹는 풍족한 맛을. 힘들 땐 운동을 하면 되려 에너지를 얻는다는 수영의 참맛을. 회사일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새롭고 짜릿한 맛을. 한 해의 시작을 새로운 맛으로 채우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달에는, 그리고 올 한 해에는 어떤 새로운 맛을 알게 될지 설렘이 가득하다.



이번 달 나를 사로잡은 것들

이달의 음악 선우정아-그러려니

갑자기 선우정아 음악에 빠져버렸다. 나는 보통 항시 이어폰을 꽂고 있기 때문에, 가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 편인데 선우정아의 노래는 다르다. 멜로디 위에 얹히는 단어 하나하나를 나도 함께 곱씹게 되어서, 회사 노동요로 듣다가 접어버렸다. 자꾸 센티해져 버리는 바람에. 선우정아 노래는 집에서 혼자 감상하는 것으로.


이달의 책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를 처음 읽은 것은 2018년 4월이다. 나는 보통 한번 본 책이나 영화는 다시 펼쳐보지 않는 편인데, 쇼코의 미소는 예외다.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울적해지면 초콜릿을 꺼내먹듯 쇼코의 미소를 펼친다. 읽을 때마다 눈에 밟히는 구절들이 다른데, 이번에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거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뭐 어쩌나 세상은 원래 그렇다.


이달의 넷플릭스 눈이 부시게

매회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너무 따듯한 드라마. 노인의 시각에서 시작되는 이 드라마의 모든 이야기가, 나로 하여금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번도 내가 노인이 된다는 생각을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오늘날은 하루하루가 다양한 사람들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짜증이 나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울적하다가도 예능 한 편 보면 웃음이 난다. 화가 나도 술 한잔 들이부으면 풀리고, 상대가 밉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된다. 변곡이 너무도 많아서 무료할 틈이 없는 이 삶. 어쩌면 이 굴곡이 시간이 지날수록 편편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인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중에 한번 글을 써볼 생각이다.


이달의 소비 장 스탠드

이사 온 집에 얼추 들어올 것은 다 들어왔는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단스탠드가 있었기에 정말 필요가 1도 없는 것을 알지만, 나의 촉은 장스탠드만 있으면 돼 딱 장스탠드만...이라고 속삭이고 있었고, 덕분에 (꽤 비싼 금액이라) 한 달 동안 장바구니에 묵혀두었던 장스탠드를 질러버리게 되었다. 가성비는 구리지만 행복하므로 가심비는 가히 최상이라 하겠다! (정신승리)


이달의 음식 피코크 크로와상 생지

에어프라이어를 사고 잘 활용을 못하고 있었는데 요물을 찾아버렸다. 바로 피코크 크로와상 생지. 180도에 15분 정도 돌리면 갓 빵집에서 나온듯한 고소한 크로와상을 맛볼 수 있다. 처음 크로와상을 맛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런 미친놈-이라는 감탄사가 나와버렸다. 집에서 빵도 구워 먹는 세상이 오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맛있게. 세상 만세다 만세.



1월 그리고 2월의 기록

01. 삼시세끼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좋아했다. 요리라는 아주 단순한 행위로 '나 여기 제대로 살고 있어요'라는 존재감을 나타내기 때문일까. 별거 없는 스토리 같으면서도, 작물을 기르고 장을 봐오고 냉장고를 구석구석 뒤져내, 뚝-딱 한 상을 차리는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충만함을 주었다. 삼시세끼를 보면서 느꼈던 이 충만함, 요즈음 내 기분이 딱 이렇다.

독립을 하고 나서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약속 없는 평일이면 오늘 뭐 먹지? 냉장고에 뭐 있지?라는 물음이 5시부터 시작된다. 다행히도 고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쉽게(?) 메뉴를 정하고 뚝딱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리고 휘뚜루마뚜루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제법 맛이 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완료하고 나면, 삼시세끼를 보며 느꼈던 그 충만함이 오감으로 느껴진다.

부모님과 집에서 살 때는 먹는 일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집 식탁은 언제나 풍족했고 엄마의 요리 실력은 언제나 최고였으니까. 내가 고민하는 것은 회사, 친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 가장 원초적인 생식에 대해서는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전에 없던 고민과 노동을 하게 된 상황인데도, 마음만은 충만해지는 듯하다. 아마도 그게 2차원, 3차원의 고민이 아니라, 1차원스러운 고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영역이고, 그것을 '내 손'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기쁨은 일렁임이 크다. 자취를 오래 한 친구들은 갸우뚱하겠지만, 머리가 클 만큼 커서 경험하는 일면의 상황들은 내게 꽤 큰 의미로 다가온다.




02. 운동의 참 맛

주변에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고개를 갸우뚱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운동해서  힘을 ? 그러고 나면 힘이 난다고? 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거 아녀?

나도 작년부터 수영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힘든 날이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수업을 빼먹었다. 힘드니까 힘 빼면 안 되지 맛있는 거나 먹자- 가 나 딴에는 합리적인 이유였다. 한 달에 약 9번의 수업이 있으면 못해도 두세 번은 빠졌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올 출석을 기록하고 있다. 운동을 하면 되려 힘이 난다는 그 참맛을 드디어 알아버린 것이다! 1월 중순쯤 유독 하루가 빡세고 야근까지 한 날이 있었다. 퇴근길에 집에 그냥 갈까 하다가, 수영복 가져온 게 아까워서 일단 수영장으로 향했다.

발차기할 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일단 물에 던져놓으니 또 되더라. 평소보다 속도는 조금 더뎠지만 그래도 한 시간 수업을 다 채우고 샤워까지 하고 나오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에너지가 회복되었다. 바람이 솔솔 불던 날이었는데, 젖은 머리를 바람에 말리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망설이다 수영장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냥 집에 갔으면 또 캔맥주나 까다가 잠들었겠지.

그렇게 운동의 참맛을 한번 알게 되니, 운동을 빼먹는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더불어 건강한 라이프사이클이 주는 힘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술을 찾기보다, 운동 한 시간 그리고 건강한 밥 한 끼가 훨씬 더 위로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요즘은 너무 울적하다. 코로나 영향으로 수영장이 한동안 휴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신 집에서  트레이닝으로 요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수영만큼의 유산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빨리 다시 수영을 하고 싶다. 그런데 코로나는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03. 신난다 

길에서 받은 포춘쿠키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아 간직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내가 담당하는 영역을 잘 보존하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담당하는 영역을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큰일이 툭툭 떨어질 때면, 아우 이걸 또 어떻게 해라는 마음보다는, 이번 기회에 새롭게 바꿔버리자 라는 열망이 더 강해졌다.

이번 상반기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서비스 개편을 맡게 되었다. 기획하다 보니 범위가 커져서 이것저것 손댈 부분이 많아졌지만, 이왕 하는 거 그동안 불편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대대적으로 고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보통 기획 리뷰를 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태클들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번 프로젝트 리뷰 때는 조금 달랐다. 코멘트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다 보니 기획이 좀 더 정교 해지는 게 느껴졌고, 범위가 커지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기만 한다면 그저 좋다는 무한 긍정과 열정이 스스로 느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감정은 사실 처음이었다. 여행을 기다리는 마음과 비슷하달까. 너무 하고 싶고, 빨리 진행되었으면 좋겠고, 결과물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흥이 나는 마음. 절대 회사에서는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이 재미나게 느껴지다니. 일개 회사원이 아니라 정말 기획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이 날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를 썼을 정도로 말이다.

누가 들으면 뻥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회사 가는 게 즐겁다. (물론 집에 가고 싶어를 간간히 남발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밥벌이하려고 일한 다지만, 나는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일에서 얻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꼭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물론 이 마음가짐은 당장 내일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ㅎ).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나의 특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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