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의 기록
이달의 음악 숨듣명 U R MAN
추석때 숨듣명을 듣고 귀에 걍 박혀버린 노래... 너무 부끄럽지만 런닝할때 이 노래 들으면 최고다. 비트가 아주 빠르지고 느리지도 않은게 내 달리기 속도에 딱이고, 노래 중간중간 킬포가 한 두개가 아니라 들을때마다 내적 웃음이 난다. 나의 원픽 킬링 포인트는 노래 시작쯤에 울리는 메-!
이달의 책 대도시의 사랑법
제주도에 올때 가지고 온 책이 몇 권 있는데, 이상하게 다 재미가 없다. 도무지 읽히지가 않아서 이북리더기에 저장된 책을 뒤지다가 올 초에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대도시의 사랑법을 다시 꺼내들었다. 제주도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소설에 등장하는 규호가 제주도 사람이었지 참(괜히 끼워맞추기). 아무튼 비행기 안에서, 카페에서, 이동하는 길에 틈틈히 읽으며 또 한번 마음이 울렁거렸다. 특히 첫번째 단편 '재희'의 마지막 부분, 냉동 블루베리 하나가 툭 떨어지는 장면에서.
이달의 소비 애플워치, 아이폰, 제주도, 명품가방
10월 월급은 저축을 하지 않았다. 퇴사했으니까 이정도 선물은 해줘야지 라는 명분으로 그냥 생각없이 이것저것 다 질렀다. 평소같았으면 엄청 고심해서 샀을 물건들을 언제 또 이렇게 써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일단 긁고 보았다. 카드값이 두렵지만, 다음달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뭐.
이달의 장소 가평 카라반 캠핑장
퇴사 다음날 가족들과 카라반 캠핑을 떠났다. 단풍이 절정으로 물들었던 때라 가을의 정기를 가득 받고 왔다. 퇴사 후 첫날이라 괜시리 울적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가을은 외롭고 적적한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라는데 나는 되려 비워내는 일이 더 많았던 10월,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이 많이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달의 음식 오마카세 나오키
물고기를 사랑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쩌기 멀리 마곡의 '나오키' 라는 오마카세에 다녀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풍족스러워서 아쉬움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배가 너무 부른데도 그 배부름이 전혀 부대끼지 않고 되려 뭐가 제일 맛있엇더라를 계속 곱씹게 되는 곳이었다. 방금도 다시 사진첩을 뒤져봤는데 여전히 금태가 원픽이고 지금도 먹고싶다. 츄베릅.
10월 22일에 퇴사를 했다. 이직할 회사의 입사일자가 정해졌을때, 이제 퇴사일만 조율하면 되겠다며 들뜬 마음 가득이었는데, 막상 퇴사의사를 전달하는 것부터 3년간 있었던 나의 업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원한 마음은 커녕 섭섭함만 가득했다. 퇴사 과정이 이토록 지난하다니, 다들 어떻게 이직을 하는거지? 1년전에 이직해온 옆자리 동료가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퇴사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동료들이 물을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좀 오바스러울수도 있는데,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에요. 이별 통보를 다짐하고 카페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말해야할지 문앞에서까지 계속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는 기분이랍니다. 그냥 슬퍼요.
분명히 이전 조직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막상 퇴사하려고 보니 그래도 미화되는 기억들. 특히나 이곳에서 정들었던 친구들, 동료들, 선배들을 생각하면 떠나고싶지 않아진다. 어딜가나 회사나 일은 다 똑같다는데, 그런거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이 조직의 사람들에게 내가 이토록 애정이 많은데, 계속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들었다.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내가 퇴사라는 판단을 잘못내린건 아닌지 잠깐 고민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대학생활을 보낸 시간과 맞먹는다. 실제 부대낀 시간만 하면, 내 생에 가장 오래 함께 생활한 사람들인 셈이다. 아쉬움이 가득한 건 당연지사, 더욱이나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조직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인지 퇴사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괜히 사람들을 배신하는 기분이다. 언제 이야기할지 타이밍을 엿보고 면담 스크립트까지 짜는 나를 보며,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음을 또 한번 느꼈다.
처음 퇴사면담을 했던 파트장님께, 왜 이직을 하게되었는지 그간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이야기하는데 너무나 공감을 해주시며 나의 첫 이직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시는 모습에 울컥했다. 내가 울컥하는 것을 느끼셨는지, 원래 처음 이직이 어렵다며 자기도 첫 회사를 퇴사하는 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는 이야기에 나는 또 한번 울컥했다.
팀장님과 두번째 면담을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었다. 너무 아쉽지만 개인 커리어를 위해서는 좋은 결정인것 같다며, 상사가 아닌 업계 선배로써 조언을 해주시는 모습에 또 울컥했고. 너와 함께 일하면서 신선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 덕분에 나도 자극을 많이 받았다며 어디서든 좋은 기획자가 될 거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었다. 뭐 이미 눈물버튼이 눌릴 때로 눌린터라, 이후 부서장님과의 면담에서도 울컥울컥할 수밖에 없었고 퇴사날 배웅해주는 팀원들과 친한 후배의 눈물에 결국 엉엉 울면서 회사를 나왔다. 이렇게 울꺼면 그냥 나가지 말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조직에 사람이 들고 나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나혼자 괜히 배신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괜한 기우였다. 나는 늘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늘 혼자 걱정하고 맘졸이다보니 의도치 않게 수동적이거나 섭섭하게 굴 때가 있는 것 같다. 퇴사를 한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드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몇마디 해본게 다인데, 가서 인사치레 하는게 괜한 오바는 아닐까 걱정하다가 못드린 사람이 많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직과 퇴사를 하며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역으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인간관계에 다소 회의적인 내 생각이 바뀐 날들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인연을 계속 생각하며 소중히 간직해나가기 위해, 이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애정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대해야지. 앞으로 새롭게 만날 조직과 사람들에게도.
나의 일이라는게 뭘까 전투적으로 생각하다가도, 그냥 함께 하는 사람이 다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10월이었다. 여전히 미련 뚝뚝이지만, 이 미련의 크기를 생각하며 고마움과 미안함, 소중함, 감사함을 지속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앞으로 50년도 더 일할 테지만, 그 기간에 비하면 3년 6개월은 아주 적은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첫 회사에서의 기억은 잊지 못할것 같다. 아직도 습관적으로 아침마다 우리 서비스 어플을 키고 있지만, 이제는 그냥 한 명의 고객으로써 이 서비스가 커가는 과정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봐야지.
퇴사하고 제주도에 내려왔다. 약 보름정도 머무는데, 삼일은 대학교 친구들이 다른 삼일은 회사 친구들이 놀러오기로 했다. 코로나때문에 약간 걱정은 됬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방학을 서울 자취방에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계획도 없이 숙소만 하나 잡아둔 채로 제주도에 내려왔다. 여행의 느낌 보다는 휴식의 느낌을 내고싶어서, 관광지보다는 그날 그날 해변가를 돌아다니며 살랑살랑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월말정산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여기는 월령의 울트라마린이라는 카페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은 방을 쓴 분이 일몰이 정말 예쁜 카페라며 추천해줘서 오게되었는데, 네시 반인 지금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일몰 맛집이 맞는 듯하다. 아무튼 이렇게 광활한 바다를 보며 월말정산을 작성하고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계획으로 내려온 제주도이지만, 여기서 비워내고 채워서 가야할 것들에 대해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제주도에서 비워내야할 것들
하나. 업무와 파일 정리
노트북과 노션에 지난 회사에서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 메모들과 파일들을 지운다는게 상상이 안됬는데, 아주 작은 기록들만 아카이빙 하고 리셋하고자 한다. 무엇을 아카이빙 해야할지가 조금 고민인데, 이 업무기록들이 나중에 쓸 일은 없겠지만 그냥 어렸을 적 일기장을 간직하는 것처럼 그냥 내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처음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고민했던, 처음으로 애정을 갖고 운영했던 서비스들에 대한 메모위주로 서랍에 넣어두려고 한다.
둘. 소비 청산
10월달의 소비는 정말 허벌라이프였다. 카드값 청구서 보기가 두려울 정도. 퇴사 후 휴식이라는 아주 거대한 명분이 허벌라이프로 이끌었다. 처음으로 저축도 하지 않고, 곱씹지 않고 사고 싶은 것, 지르고 싶은 것을 다 질렀다. 대충 카드값을 보니 월급 이상으로 쓴 듯한데, 퇴직금 받은것으로 좀 충당하지 뭐! 언제 또 이렇게 써보겠어...
제주도에서 채워가야할 것들
하나. 새로운 공부 그리고 일을 대하는 체력과 근력.
새로 이직하는 회사의 업무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와 달라서, 지금 약간 걱정되는 상태이다. 대충 미리 공부라도 하면 불안감이 덜 할 것 같아서, 제주도에서 공부도 좀 하고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 열심히 구글링하면서 노션으로 미리 프리뷰 좀 하고 가야지. 추가로 영어와 일본어 공부계획도 세울 예정이다. 10여년째 외국어 공부를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이직할 회사의 메인 시장이 해외라 불가피하게 해야할 것 같다. 좋은 명분이 생겼으니, 어떻게 공부할지 학원도 좀 알아보고 플랜도 세워봐야지.
계획 세우는 일은 늘 즐겁다. 고여있지 않고 흐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까. 연초가 아닌 연말에 미리 세우는 계획이라 조금 색다르지만, 올해가 가기전에 리프레시 포인트를 준 것 같아 그저 뿌듯하고 신난다.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하면서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각오하고 있는 만큼 제주도에서 업무적인 체력도 많이 비축해가야겠다.
앞으로의 회사생활과 적응의 시간이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아이고 회사 재미없다 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때보다는 분명 좋은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화이팅.
둘. 머니 플랜
이직 하고 나면, 월급이 이전보다 조금 오를 것 같다. 저축금액도 그만큼 늘려야하고, 그러면 대출금은 얼마씩 갚아나갈지 그리고 만기된 적금은 어떻게 할지, 이번달의 엄청난 카드값은 어떻게 충당할 건지 등등.. 을 고민해봐야지. 아이고 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