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부터 4월까지의 기록
어쩌다가 올해 월말정산을 한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5월까지 와버렸는지 모르겠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의 루틴을 놓아버린 사개월, 한달한달이 지날 때마다 뭔가 알맹이 없이 흐트러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정리하기까지가 너무 오래걸렸다. 벌써 일년의 삼분의 일이 이렇게 훌쩍. 매월 내가 무엇을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글로 정리해보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은 사개월이었다. 최근들어 자꾸 무력해지고 일상에 열의를 잃어버린 이유가 아마 월말정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21년의 삼분의 이는 놓치지 말고 기록해야겠다.
이달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올해 들어서 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책태기랄까. 뭐 그렇다고 뜨거웠던 적도 없었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소설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짧아서 잘 읽혔고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후루룩 읽혔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지던 엔딩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뒤이어 이어지는 작가의 말은 한 수 더 뜬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가요. 좋아요 삼년이라고 해 두죠." 라고 이야기한다.
이달의 영상 존박-밤편지
이 유튜브 영상을 몇번이나 재생했는지 모르겠다. 조회수 45만회 중 만회는 내가 채웠을 것.
요즘들어 유튜브 컨텐츠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그냥 다 말초적인 자극처럼 느껴져서, 시끄럽고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 이런 음악들만 플레이리스트처럼 틀어놓고 있는데 그마저도 시끄러운 음악은 싫어서 잔잔한 발라드 위주로 재생해놓고 있다. 그러던 와중 알고리즘 속에서 발견한 이 영상, 잔잔한 영상미도 변곡이 크지 않은 존박의 목소리도 너무 좋다.
이직한지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소름돋는다. 잠못이룰 정도로 치솟던 스트레스는 이미 잊은지 오래. 경력이라는 부담감과 잘하고싶다는 강박관념도 내려놓은지 오래. 끙끙대며 저녁늦게까지 공부하던 시간도 버린지 오래. 이제 칼퇴라는 미덕을 철저하게 지치는 직장인이 되었다.
여차저차 적응은 했지만, 확연히 첫번째 직장을 대하던 마음과는 다르다. 마음은 적응했지만, 이상하게 애착은 가지 않는다. 왜 이직하는 사람들이 두번이고 세번이고 이직하는지 알 것 같다. 언제고 또 떠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드니 크게 애정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일을 대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일에도 사람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건 어쩔 수 없다. 그저 나는 해야할 일을 하고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뿐.
재택근무가 지속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부대끼며 일하는 시간이 이리도 소중한 줄이야. 옆에 있으면 그냥 툭 하고 물어보면 될 것을, 하루죙일 서치해보고 하다하다 안되면 정리하고 정리하여 메신저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얼굴도 몇번 보지 않은 사이라서 더욱.
지난 11월과 비교해봤을때 마음은 훨씬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이버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너무 답답한데 해결할 길이 없다. 차라리 출근하고싶은 마음 뿐. 좁은 원룸에서 먹고 자고 쉬기도 모자른데, 이곳에서 일까지 하자니 우울감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하는 날도 허다하고, 끼니도 대충 챙겨먹게되었다. 부엌에서 혼자 뚝딱이며 해먹는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귀찮다. 그냥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빨리 헤치워먹고싶은 마음이 앞서서 인스턴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튼 너무너무 좋았던 내 공간이 이제는 너무너무 지겹고 싫증나버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일터에 적응하자니 설레임 따위는 전혀 느낄수가 없지.
그런데 이런 감정들이 별로 블루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익숙해져버려서 이제는 그냥 무덤덤하다. 별로 싫지도 좋지도 않은 아무 생각 없는 상태. 나는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진다.
요즘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인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친구들과 있을 때는 어떨지, 나를 대하는 마음은 어떤지 등등 명확하게 질문으로 던지기에는 애매모호한 것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지겠지했던 질문들이 여전히 안개속에 있어서 답답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야 알아가는 속도도 빨라질텐데, 밀도를 높이지를 못하겠다. 가볍게 만났다가 헤어지면 금방 흩어져버리는 시간들이 반복되며, 나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내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건지, 상대는 나를 궁금해하긴하는 건지, 내가 사람과 친해지는 법을 까먹은건지.
대화의 물꼬가 잘 터지지 않아서 답답함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제 그 답답함의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해보면 될 것을 나조차 자꾸 방어적으로 굴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면 입을 다물게 되고, 머리를 한참 굴려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대화가 길게 지속될까 고민하다 입을 벌려보지만, 결과는 항상 좋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감정교류가 전혀 되지 않는 기분이든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며 느끼는 피상적인 감탄사들 말고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걸까.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요즘에는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확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너무 어렵고,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 알게 된것이 있다면, 나는 섬세함의 정도가 비슷해야 결이 맞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함께 있는 사람의 텐션을 따라가는 편이다. 그래서 무리에 따라 말이 많기도 혹은 조용하기도 하는 편인데, 그래도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성질을 잃지는 않는다. 보여지는 모습은 달라도 나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즈음 나를 돌아보면 때때로 나답지 않게 뚝딱이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인다. 내가 왜 이러지 싶은 현타가 주기적으로 오는 이 관계를 지속시켜도 되는게 맞는건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 고민을 2월부터 4월까지 하고있다는 사실에도 또 한번 현타가 오네.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우 지겨워 증말. 아마도 내가 작년에 제일 많이 이야기했던 말일 것이다. 싫증을 자주 내는 성격이라 뭐 하나를 진득하게 못하는게 나의 단점이다. 깊게 파고들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조금만 발을 담가보아도 다 맛보았다고 지레짐작해버린다.
올해 들어 싫증을 느껴버린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첫번째는 러닝. 한바퀴 돌고 땀을 쭉 빼고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지루하다. 천변의 풍경도 선선한 공기도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버렸다. 가끔씩 러닝하러 나가면 여전히 기분이 좋긴하지만, 예전만큼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또 싫증을 느낀것인지, 아니면 요즘 내가 슬럼프라 그런것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찬양하던 러닝이 조금 지루해졌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생각해보니 지루함과 익숙함의 경계가 약간 모호한 것 같다. 지루해진건지 익숙해진건지 판단을 잘 못하겠다 요즘들어 모든 일에. 왜그럴까. 재미를 잘 못느껴서인걸까. 무엇을 하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미를 못느낀다는 이유로 나는 쉽게 이를 지루함으로 칭해버리는 것 같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된다고.
작년 한 해는 사는게 너무 재미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사는게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도. 그저 다 익숙하거나 지루하거나. 익숙함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매일 하는 회사일이, 매일 하는 운동이, 매일 연락하는 사람이,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는게 늘 사건의 연속일 수는 없다. 잔잔한 시간들이 대부분인 삶 속에서 안정감에 감사하고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어렵다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