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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超糖 옥수수. 두부로 유명한 강릉의 초당동 지명이 아니라 아주 달다는 뜻의 이름이 붙은 옥수수다.
음, 나는 옥수수를 아주 좋아한다. 예전에 책에도 썼지만 옥수수만 먹으면 니아신이 부족해서 걸리게 되는 펠레그라라는 병의 존재를 알았을 때 아, 역시 좋은 것만 누리고 살 수는 없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게 좋아하는 옥수수 중에서 굳이 등수를 매기자면 노랗고 부드럽고 달콤한 스위트콘 종류가 최고다. 미국에 사는 고모네에 찾아갔을 때 먹은, 심하게 부드러워서 절대 깨끗하게 하모니카를 불 듯이 알알이 발라 먹을 수 없는 노란 옥수수가 가장 이상향에 가까웠다. 지금은 돌아가신 큰고모는 그때 옥수수를 제일 맛있게 먹으려면 부엌 창문 옆에 길렀다가 물을 팔팔 끓인 다음에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꺾은 다음 바로 삶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내가 그리는 음식의 천국이 실존한다면 언제나 부엌 창밖으로 노란 옥수수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좋아하기는 하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 쫀득한 찰옥수수가 그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가 몇 년 전부터 초당옥수수가 부상하면서 여름이면 홀로 옥수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초당옥수수는 이름답게 과일에 비견할 정도로 당도를 측정하는 수치인 브릭스가 18~22를 거뜬히 넘어갈 정도로 달고 낟알이 아삭한 것이 특징이다. 익혀도 아삭한 질감이 남아 있어서 처음에는 이게 다 익은 것인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날로 먹어도 괜찮다고 하니까… 하면서 그냥 먹었지. 솔직히 옥수수를 찌는 시간만큼 기다리기 어려운 것도 없다. 집안 전체에 옥수수 향기가 퍼지는데 이미 꺼낸 옥수수를 다시 집어넣고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쪄야 한다고? 난 못해.
다만 초당옥수수는 즙이 많고 달아서 날로 먹어도 맛있다고는 하는데, 물론 먹어봤고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일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은은한 풋내가 살짝 걸림돌이다. 익히면 훨씬 달큰하고 맛있는데 굳이 생으로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마음에 들 정도로 달콤한 옥수수를 구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 버터를 잔뜩 두르고 포일에 싸서 굽고 싶고, 숯불에 거뭇거뭇하게 구워서 플레이버 버터나 치즈, 짭짤한 양념을 잔뜩 뿌려서 먹고 싶고, 알만 훑어서 마요네즈에 치즈를 넣고 콘치즈를 만들고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 달콤하고 짭짤한 옥수수 크림수프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만들었다. 한 냄비를.
이 초당옥수수 수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맛이 강한 수프가 아니라 단짠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감칠맛이 나는 수프다. 찰옥수수로 만들어도 맛이야 있지만 당도는 당연히 그보다 낮다. 단맛을 원하면 차라리 스위트콘 통조림을 써도 좋다.
수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육수로는 옥수수 속대를 닭뼈처럼 향신 채소, 향신료와 함께 우려낸 옥수수 속대 국물을 사용한다. 옥수수 속대는 단맛과 옥수수 풍미가 강해서 그냥 낟알만 사용할 때보다 훨씬 깊은 맛이 난다. 닭 육수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맛이 깔끔하고, 무엇보다 여기서는 버터와 크림을 사용하지만 크림을 빼고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을 넣으면 비건 수프가 된다.
원래 닭 육수 등 기타 육수를 만들 때는 양파, 당근, 셀러리, 마늘, 부케가르니 같은 허브 등을 사용한다. 여기서도 거의 비슷한 재료를 넣기는 하지만 옥수수 낟알과 속대에 워낙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당근은 제외했다. 양파도 단맛이 강하지만 감칠맛을 더해주는데 당근은 역할에 비해서 당도가 높고, 무엇보다 이 수프에 넣으면 색에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 식으로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 점도를 더하는 루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수프 질감이 가볍고 깔끔하다. 감자는 부피감과 점도를 더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 정도는 넣는 편인데, 넣지 않아도 괜찮지만 옥수수만으로는 아무래도 좀 수프가 묽어지는 감이 있다. 마무리로 두르는 크림도 넣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넣으면 부드러운 맛이 나고, 무엇보다 ‘옥수수 크림수프’라고 부를 수 있다. 크림을 넣어야 크림수프죠.
마지막으로 이 수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모든 재료를 볶고 육수에 뭉근하게 익혀서 스틱 블렌더로 곱게 간 다음에, 체에 내리는 것이다. 옥수수에는 이 사이에 반드시 끼는 섬유질이 엄청나게 들어있고, 셀러리도 마찬가지다. 체에 내려서 섬유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곱게 갈아도 거칠거칠한 퓌레가 된다. 정말 너무, 너무 귀찮은 과정인데 이걸 하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수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뭔가 씹히는 수프를 좋아하면 온전한 옥수수 낟알을 좀 골라 두었다가 갈아서 체에 내린 수프에 그냥 섞거나 버터에 좀 볶아서 섞는다. 크림을 두르고 후추, 레드 페퍼 플레이크, 타임이나 딜 등의 허브를 뿌리면 노란 수프를 바탕으로 다양한 색이 섞이면서 보기에도 곱고 입에 넣을 때마다 다양한 풍미가 느껴진다. 참고로 식혀서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수프다. 체에 걸렀다는 전제 하에.
초당옥수수 수프
재료
초당옥수수 4대, 양파 1/2개(대), 셀러리 2대, 감자 1개, 크림 50ml, 버터, 소금, 후추, 크림.
옥수수국물 재료
초당옥수수 속대 4개, 양파 1/2개(대), 셀러리 2대, 파슬리 1줄기, 마늘 3쪽, 월계수 잎 1장, 후추 약간.
토핑 재료
옥수수 낟알, 크림, 타임이나 딜 등의 허브, 레드 페퍼 플레이크, 후추
만드는 법
1. 초당옥수수는 껍질을 제거한다. 아래 볼을 받치고 옥수수를 바닥에 밑동을 단단히 고정해서 세워 잡은 후 칼로 낟알을 잘라낸다. 도마에서 눕혀 놓고 잘라도 좋지만 낟알이 흩어지기 쉽다.
2. 먼저 옥수수 속대로 국물을 낸다. 양파와 셀러리는 적당한 크기로 썰고 마늘은 으깬다. 냄비에 옥수수 속대를 그대로 혹은 반으로 잘라 담고 양파, 셀러리, 파슬리, 마늘, 월계수 잎을 담은 후 후추를 갈아 뿌린다. 물을 잠기도록 부은 다음 한소끔 끓인다. 불 세기를 낮춰서 30~40분간 단맛이 우러날 때까지 뭉근하게 익힌다.
3. 그동안 수프용 양파와 셀러리를 잘게 썬다. 감자는 껍질을 벗긴 다음 잘게 썬다.
4. 냄비에 버터를 넣고 녹인 다음 양파, 셀러리, 감자를 더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볶는다. 양파가 반투명해지면 옥수수 낟알을 더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5분 정도 노릇하게 볶는다. (장식용 옥수수 낟알은 미리 따로 덜어 둔다)
5. 옥수수 속대 국물을 체에 걸러서 채소 냄비에 내용물이 잠길 만큼 붓는다. 한소끔 끓인 다음 불 세기를 낮춰서 채소가 다 익을 때까지 약 20분간 뭉근하게 익힌다.
6. 옥수수가 다 익으면 불에서 내린 다음 스틱 블렌더로 냄비 내용물을 아주 곱게 간다. 다른 빈 냄비에 체를 얹고 갈은 옥수수 혼합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국자로 꾹꾹 눌러 섬유질만 남기고 최대한 국물을 짜낸다.
7. 체에 거른 수프 냄비를 다시 불에 올려서 크림을 두른 후 잘 섞어서 따뜻하게 데운다. 크림을 넣고 나면 끓지 않도록 주의한다. 간을 맞춘다.
8. 그릇에 옥수수 수프를 담고 여분의 크림을 두른 다음 옥수수 낟알(생으로 넣거나 버터에 볶아서 넣는다), 타임이나 딜 등의 허브, 레드 페퍼 플레이크, 여분의 후추 등으로 장식해 낸다.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수프다.
[페퍼리의 쿠커리] 초당옥수수 수프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