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모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체 Jun 05. 2024

메밀 알레르기

  

부모와 남동생 셋이서 일박 이일로 여행을 다녀 올 예정인데 집을 비워 두기가 그렇다고 엄마가 하루만 집에 와서 지내라고 하였다. 집에 도착할 즈음  엄마가 얼굴 잠깐이라고 보려 했더니만 늦어서 먼저 간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집에 들어가자 아직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봉평에 도착한 동생은 유치하게도 메밀꽃 밭에서 갖은 포즈를 취한 사진을 줄기차게 보내다. 대가리 큰 녀석이 부모 따라 여행이나 다니는 꼴이 한심하다고 답장을 보냈더니 엄마한테 이르겠다고 했다. 부모나 동생이나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쯤에서 답신을 멈췄다.


메시지 음이 울렸다.


나는 카페로 향했다. 창밖으로 여욱이 가쁜 숨을 내쉬며 뛰다시피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욱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친구이다. 친구라고는 해도 내가 세 살이나 형이다. 그럼에도 그와 친구로 지내기로 한 이유는, 내가 형 대접을 받을만한 주변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도 내게 하대하는 현실이니까. 동생이 버릇이 없는 것과 부모의 편애는 둘 중의 하나다. 동생이 나보다 월등히 잘났거나 둘 중 하나를 입양했거나. 하긴 맞거나 쫓겨나기 싫으면 먼저 비굴해지는 게 상책이다.


여욱은 일 년 전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살 때문에 정말 죽고 싶어요. 세상 살기가 싫어진다니까요. 방법이 없을까요?


어지간히 급한가 싶었다. 그런가 하면 예의도 발랐다. 그의 질문에 회원들이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댓을 달아줄 때마다 감사의 덧글을 잊지 않았다. 카페 특성상 회원들은 죽음에 관한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방법도 명시하지 않았다. 힌트만 제시했을 뿐인데도 그는 넙죽 절하듯 고마움을 표시했다.

 

새벽 두 시를 향하고 있던 어떤 날 나는 조금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나도 어지간히 급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은 고요할수록 충동적으로 찾아오니까.


 -살 벙개 할까요?


  부천역이 그와 내가 만나기 딱 좋은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온다고 했고 나는 걸어서 갔다. 새벽 세 시가 다 되어갔지만 역 주변은 어수선하고 분란해 보였다. 연령대별로 술을 마시고 다음 장소에 대한 흥정을 하는 등 집으로 가자 모텔로 가자며 남녀가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도 흔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느낌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까이 들리는 벨소리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살킬러님?”

“보호모드님?”

여욱은 나를 보며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아니, 나 원, 그 몸으로 무슨 살을 뺀다고 그러슈?”

순간 발끈하였다. 그놈의 듣기 싫은 그 몸 소리.

“만나자마자 한 바퀴 뛸 생각이었는데 김이 팍 새네요. 그냥 술이나 한 잔 어때요?”


 처음엔 그가 은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었나 싶었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뛰고 죽는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딱히 묻고 싶지가 않았다. 어서 빨리 귀찮은 세상과 작별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술 한 잔 마시는 것쯤이야.


 우린 골목길에 빽빽하게 나열된 술집 중 한 곳을 택하여 들어갔다. 여욱은 내게 소주 괜찮냐고 물었지만 들을 생각은 없는 듯 곧바로 주문하였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지만 그런 말조차 귀찮아서 잠자코 있었다. 주꾸미 볶음에 소주 한 병이 나왔다. 김여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강주이에요. 저도 같은 백수요.” 그러자 여욱은 빙긋이 웃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였다. 죽기 전이라 많이 긴장한 모양이고 생각했다.


 “이번이 처음 시도인가....... 요?”

“덩치를 보세요. 한두 번이었겠어요?”


저 몸도 죽고 싶은 일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하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비정상적인 몸들은 죽음을 꿈꿀 법도 하지.

 “저도 마찬가집니다. 한 번 어긋나면 다음이 좀처럼 쉽지 않게 되죠.”

“아니 뺄 데가 어딨 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그럽니까?” 그가 발끈하였다. 벌써 취기가 오른 걸까. 같이 죽기로 한 마당에 그는 왜 나의 죽음을 만류하는 걸까. 그 점이 궁금했다. 지난번 때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지난번 벙개 모임에서 만난 이 하고는 서로의 목을 동시에 졸라서 죽기로 했었다. 그런데 나의 손아귀 힘이 턱없이 부족해 영락없이 일방적 살해로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를 회유한 건 나였다.


“칼바람님을 살인자로 만들 순 없죠.”


그날 우린 맥없이 헤어졌다. 그는 아직도 살아있다. 마누라가 유방암에 걸려 병간호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 게 마지막으로 나눈 인사다. 처음에 그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런저런 생각에 골똘한 사이 그가 말을 걸었었나 보다.

 “예?”

“ 왜 다이어트 카페에 가입하신 거냐고요.”

“예?”


여욱은 자신이 다이어트가 아닌 다이어스 카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안 뒤 공포와 허탈한 표정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나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긴 제가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실수를 똑같이 한 적이 있긴 합니다. 디지털 동호회라고 해서 디카 동호회인 줄 알았더니 디지게 털을 좋아하는 모임이었더라고요.”

“비밀 초대로 들어오는 카페라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어떻게 가입이 되었는지 참.”

 “여동생이 제 컴퓨터를 쓰고 나갔는데 창에 떠 있었어요. 그래서 옳다 커니 하면서 바로 가입 신청을 했죠. 그러면 헉! 제 여동생도 여기 회원일 수도 있다는 거네요.”

“모르죠. 그러나 정황상. 아마도”

여욱은 연거푸 술을 마시면서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여욱은 내 얼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심히 살피는가 싶더니 물었다.

“그런데 왜 죽으려고 하는 거요?”

“죽고 싶은데 이유 있나요? 그냥 죽는 거지.”

“그나저나 방법이나 들어봅시다. 오늘 나를 만나서 어떤 방법으로 죽으려고 했어요?”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얘긴 들어서 뭐 합니까.”

“저도 가끔 죽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죽음을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 이번이 처음 시도는 아닌 건가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뭐 하고. 절레절레 흔들기도 그래서 조금 멋있는 척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은 읽히지 않았다.  얼마 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죽기가 정말 살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정말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 쉽게 잘도 죽는 것 같던데. 사실 마음만 먹으면 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살 빼는 게 그보다 더 어려운 일 일지도 몰라요.”


죽음을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인간이 자살을 살 빼는 일보다 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진짜. 나는 순간 발끈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렇게 잔인하지 못해요. 아마 실수로 그렇게들 죽은 걸 거요.”

“실수로요?”

“작정은 했지만, 실수로 죽었다는 말이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예를 들어 죽으려고 목을 맸어요.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목이 졸렸다는 것을 안 순간 막 발버둥을 쳐요. 그런데 끈이 풀리지가 않는 거죠. 그게 실수로 죽은 거요.”

“그렇다고 모든 자살하는 사람들이 실수로 죽었다고 보긴 어렵죠. 절체절명의 순간에 후회는 잠시 했을지라도. 실수로 죽었다니요. 참.”

“본래 자살 자체가 어리석은 충동적 행위에서 비롯된 거예요. 죽음에 실패했거나 성공했거나 실수는 실수라고요. 하지만 역시 실수로 살아나잖아요? 그러면 절대 다시 죽기 어려워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살기를 열망한다니까요. 그게 본능이에요.”

“아니 실수를 했는데 또 실수로 자살을 시도한다고요?”

“실수란 잘못된 습관의 반복처럼 계속 되풀이되는 거죠. 그렇게 살기를 열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야겠다는 의식이 고착되면 벗어나기 어렵죠. 상습적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상습적으로 자살을 꿈꾸고 계신 거였나요?”

“ 꿈? 꿈이라고요?”

나는 정신이 말짱했지만 주정하듯 주절였고 그는 실제로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시간이 많은 공통점을 들먹이며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웠었나 보다. 그래서 대뜸 말을 놓자고 했다.

“그. 그럴까. 하긴 사회 친구는 서너 살 터울은 뭐.”

여욱은 처음에는 나의 탈 권위 의식이 좋아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지만 갈수록 말을 놓는 것이 찜찜하고 불편했던 모양이다. 반면 나는 쉽게 놓아버린 말끝 하나 때문에 보이지 않는 권위를 누리게 된 것을 유쾌하게 여겼다. 그와 관계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뒤로 우린 부쩍 자주 만났다. 둘 다 할 일이 없었고 만나면 주로 먹거나 말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욱에게 나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줄 담배를 피우고 온라인 게임에 빠진 뒤부터 후각도 미각도 상실했다. 말하는 것은 본래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듣는 것은 좋아했다.  둘이 만나서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여욱의 궁극의 고민은 다이어트였고 나는 죽음에 관한 연구였으니까. 하지만 둘은 형식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취업문제이다. 둘 다 딱히 어디가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소외감을 극복하고 싶었을 뿐이다. 주위의 우려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럴듯한 직장을 다니는 것이 표면적인 목표였다. 여욱은 뚱뚱해서 군대가 면제되는 동안 대학원까지 다녀서 남들보다 시간도 벌고 공부한 것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인상 때문에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고 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그리 믿고 있었다. 나 역시 남들보다 지나치게 데꾼하고 병약해 보이는 왜소한 체구가 문제였다. 아무것도 의욕 있게 할 수 없어 보인다는 것이 주로 내가 듣던 평이었다. 심지어 편의점 알바조차 떨어지기 일쑤였다. 군대도 다녀왔는데... 조금만 늦췄더라도 체중 미달로 면제될 수 있었을 텐데. 나란 놈은 그런 운도 없었다. 그런 내가 오로지 죽기 위한 궁리를 할 때만 눈빛이 반짝였다. 죽음을 생각할 때면 내 안에서 힘이 솟구쳤다. 심장이 두렵게 뛰는 기분이 좋았다.


 만나서 딱히 할 것도 없는 우리는 크게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이 둘만의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해 갔다. 그가 내 앞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꽤 오랜만이네. 아직 주문 안 했네? 뭐 마실래?”

여욱은 내게 답은 듣지도 않고 달달한 프라푸치노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그가 말했다.

“남기면 내가 마실게. 참 단 거 싫어했지?


 부천역 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한 카페에 나란히 앉아서 이번에도 여욱의 세상에 대한 평가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여욱은 택시의 번호판을 보며 홀로 구 땡 삼 땡 놀이를 했고 마주 오는 여자들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점수를 매기기도 하였다. 옆 테이블을 기웃거리며 관계를 추측하고 대화의 요지를 밝히기도 했다. 어쩌다 내 노트북을 통해 세상을 보기도 했다. 취직에 관한 대화는 극히 짧았다. 지나가는 소리로 안부를 묻는 정도의 짧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요긴한 정보를 찾아 주기도 했다. 나는 여욱의 다이어트에 관하여 얘기해 주었고 여욱은 에게 죽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시하고 껄렁하기 그지없는 시간들이었다.



부모의 성화도 있었고 당장 취직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나는 세무사를 준비한답시고 얼마 전부터 고시원에 들어갔다. 고시원 비는 집에서 대주었고 물론 용돈도 받아쓰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딱히 합격이 목적은 아니어서 평소처럼 빈둥거리는 데에 소일하였다. 여욱도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지방대 학과장으로 있는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가 내려가 있고 일주일이나 혹은 이 주에 한 번 정도 집에 오기 때문에 자유로운 데다가 생활비도 받아썼다. 하지만 여동생이 살림을 맡는다는 구실로 경제권을 잡았다. 때문에 여욱은 조금 빠듯하다 싶으면 집안에 값나가는 물건을 하나씩 당근에 팔곤 하였다. 골프채 하나쯤 팔아버린다고 해서 들통 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고 나서 돈이 좀 생기면 여욱은 어김없이 나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아직 술 마시기에는 시간이 좀 이르지? 시험 준비는 잘 돼가?”

 “그렇지 뭐.”

“점점 지원자가 많으니 원. 다들 개성 없이 몰려들기는.......”

“우리 집이 세무사 사무실 한다고 했었나.”

“그랬나.”

“부모가 하시는데 엄마는 자격증 없이 해왔어. 열 번도 넘게 떨어지곤 포기하고 나에게 떠넘긴 거지. 그래서 엄마는 내가 세무사 되는 게 당신의 꿈이기도 해.”

“엄마는 왜 자꾸 떨어진 거래?”

“우리가 취직을 못 한 것과 같은 이유일 수도. 공부는 죽어라고 하셨어. 늙어서 머리가 달리는 거지. 원체 머리가 나쁜 것일 수도 있어.”

“그래도 끈기 하나는 죽여주신다. 그런데 자격증 없어도 할 수 있는 거였나 봐?”

“아버지가 갖고 있잖아. 그런데 일은 엄마가 더 많이 하고 빠삭해. 도대체 자격증을 왜 따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라니까.”

“맨날 죽는다는 놈이 뭔 놈의 자격증은 딴다고.”


  밖으로 나와 걸으며 여욱은 식당 안에서 누군가 메밀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곤 식탐을 내었다.

 “살 뺀다는 놈이 허구한 날 먹을 궁리. 너 먹으려면 먹어. 난 메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어.”

“메밀 알레르기? 그런 것도 있어? 웃기네. 일단 들어가자. 두 그릇 시켜서 나만 먹고 가게.”

  가뿐하게 메밀국수를 해치우고 있는 여욱을 거들떠도 안 보고 휴대폰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아니 이 맛있는 것을 왜 못 먹는다는 걸까. 그냥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야? 별일이다.”

  이어서 여욱이 자주 가는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여욱은 다짜고짜 치맥을 시켰다. 나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고 강냉이만 몇 개 집어먹었다. 여욱은 음식을 처음 먹는 사람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치킨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순식간에 치킨은 사라졌다. 기가 찼다.


“취직은 안 하냐?”

“살부터 빼야 할 것 같아.”


 정말로 여욱에겐 죽기보다 어려운 게 살 빼는 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이 좀처럼 찌지도 않지만 결정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으나 살이 빠지는 생활 방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장난처럼 제안한 건데 여욱은 몹시 좋아했다. 같이 지내자고 조르기까지 했다.


 “살만 빠진다면 뭔 들 못해주겠냐.”


 여욱의 동생은 오빠가 난데없이 가로등처럼 삐쩍 마르고 볼품없는 나와 동거를 하기로 했다는 소리에 기겁한 것 같았다. 자신의 혈육이 동성애자는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였고 혹시 피라미드 같은 데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 만도 했다. 일말의 오해가 풀리기는 했으나 불길한 생각은 나를 볼 때마다 사라지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다이어스 카페에 닥죽이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욱을 통해서 들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어쩌면 그녀도 여욱처럼 다이어트 카페인 줄 알고 가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닥죽의 활동 내역을 검색해 보았다. 죽이고 싶은 외모이긴 한데 죽고 싶어 한다는 게 의아했다. 진짜로 나처럼 죽고 싶다는 건지, 여욱처럼 살을 빼고 싶어 죽겠다는 건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수도 없이 까이고 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하겠지.


 며칠 후 여욱은 눈에 띄게 살이 빠진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담배가 맛이 없다고 피우지 않던 여욱에게 억지로 줄담배를 피우게 하고 내가 즐겨하는 게임을 알려주었다. 낮과 밤이 바뀌고 배가 고프다고 할 때면 게임 속 보스 잡기를 시켰다. 몇 번이나 끼니를 놓치자 점차 식욕도 줄고 음식량도 줄고 있었다. 거의 감금 수준으로 여욱을 예민하게 가둬두었다.


 여욱이 건강하게 살이 빠지지 않은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눈 밑의 두드러진 다크서클도 요요현상이 생기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고 좋아한 것도 여욱이었다. 실제 나는 여욱의 다이어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 한다고 살이 빠질까 싶기도 했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는 그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욱은 구의 말이든  잘 듣는 인간이었다. 둔한 건지 착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덕분에 나는 숙식 걱정도 없고 여욱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았다. 여욱은 담배를 입에 물며 내게 물었다. 마치 그것이 다이어트 식품이라도 되는 양 식욕이 줄고 살이 미약하게 빠지긴 했지만 워낙 육중한 거구라 별로 티도 안 났다. 괜히 안 좋은 습관만 옮긴 것 같았다.


 얼마 후 여욱은 동생의 추궁 끝에 우리가 다이어트 동호회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 그 말이 나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여욱은 내심 미안했던지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니 부탁도 들어줄게. 무엇이든 말해 봐.”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에 더 화가 났다. 나는 짐을 싸면서 대답했다.

“내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 적이 있지?”

“그랬나?”

“메밀 알레르기는 알레르기 중에서도 증세가 가장 심해서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어. 고등학교 때는 식당에서 냉면을 먹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어. 겨울이라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어. 그 뒤부터는 항상 지갑에 약을 넣고 다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지.”

 “증세가?”

 “우선 손바닥과 발바닥이 가려워. 다음으로는 귀와 입안이 간지러워. 미치도록. 그다음으로는 머리가 조여 오는 느낌이 와. 손오공의 금고주를 한 것같이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실제로 머리에 쥐가 난 느낌이 어떤 줄 알아? 마지막으로는 숨을 쉴 수가 없어. 기도가 막혀서 헉헉대는 거지. 거의 늑대인간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 돼버려. 기도가 막히는 순간에 약을 먹지 않으면 바로 죽는 거야. 온몸이 가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지. 난 그 기분이 정말 싫었어. 그럴 때는 그냥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그게 메밀 알레르기 때문이란 것을 몰랐어. 냉면을 먹으면 그랬고, 묵을 먹으면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항상 그랬던 것도 아니었어. 어떤 때는 괜찮기도 했으니까. 대학 때 프랑스로 배낭여행 갔다가 크레페를 먹고 죽을 뻔한 적도 있어. 거기 메밀 성분이 들어있던 거야. 종업원은 당황하지도 않고 알레르기냐고 묻더라고. 메밀이 불어로 뭐였더라. 영어로는 벅윗이란 걸 알고 있었어. 아마 그렇게 외쳤던 것 같아. 종업원은 맞다고 하면서 약 먹으라고 하더라고. 그때 난 확실하게 내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저 도토리묵 색상만 보면 무조건 알레르기라 판단했던 단서를 좁힌 셈이지. 약을 먹으면서 생각했어. 누군가 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메밀을 먹이면 되겠군. 그래서 이번에는 메밀을 먹고 죽을 생각이야. 그러니 니가 도와줘야겠어. 혼자서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약을 찾아 먹게 되더라고.”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되묻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기분이 다소 후련해졌다.

“어렵지 않아. 너는 그냥 내가 먹는 음식에 메밀가루만 타면 돼. 너가 살인자로 몰릴 일은 절대 없고 난 손쉽게 죽을 수 있는 거야.”

 “그런 엄청난 일을 나더러 하라는 거야? 난 못 해. 그리고 니말 대로 약을 찾아서 먹게 되면 소용없는 거잖아.”

“이제부터 약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거야. 안 도와주면 내가 자살하면서 너가 범인이라는 유서를 쓰고 죽을 거야. 내가 못 할 줄 알아?”

“아니 도대체 왜 죽으려고 하는 건데.”

“우리가 어떻게 만난 지 잊은 거야?”

 “아, 그래도 그건, 그냥 가벼운 객기 같은 거로 여겼는데. 정말로 실행에 옮기려 할 줄은. 난 못하겠어.”

“누가 너더러 날 죽이래?”

“그게 그 소리 아니야?”

“넌 어디 가서 메밀가루만 구해와. 시중에 파는 메밀은 가짜가 많아. 난 봉평 막국수를 먹으면 백 프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분식점에서 파는 막국수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러니 백 프로 순수한 메밀가루를 구해달라고. 그리고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음식에 섞기만 하면 돼. 내가 알고 먹는다면 아무래도 몸을 사리지 않겠어? 내가 여태 죽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그러니 내가 모르고 죽게 도와줘. 부탁이야.”


  짐을 다 싼 나는 여욱의 집에서 나왔다. 그의 여동생이 우리말을 엿들은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연락해. 무슨 의미인 줄 알지? 오래는 못 기다려.”


 생각보다 빨리 여욱에게 연락이 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쓸데없는 일에 적극적이고 진지한 성격인가 싶기도 했다. 여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내게 정황을 얘기했다.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컴퓨터에 메밀이라는 단어도 검색하지 못하고 전전긍긍만 했다는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게 웃겨? 별의별 방법으로 메밀을 공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렇다고 봉평까지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여욱은 마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일화를 얘기했다. 결국, 재래시장에서 구입했다는 소리였다. 그리곤 여욱은 내게 보온병을 내밀며 말했다.


 “미숫가루 마셔.”

“난 평소에 미숫가루를 마시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보온병에 미숫가루를 타 온 너의 모습이 얼마나 이상할지를 생각해 봐. 이건 누가 봐도 타살이라고.”

“치밀한 자식.”


  여욱은 곧바로 나를 샤부샤부 집으로 데려가려 하였다. 덜컥 겁이 났다. 이쯤에서 멈춰도 될 법한데. 이 자식 뭐지? 나는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 커다란 냄비에 가루를 얼마나 타야 내가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여욱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게임이나 하자. 레벨 94까지 올랐어. 보스 잡는데 지원 좀 해줘야겠어.”

“괜찮겠어? 여동생?”

“왜? 걔가 뭐?”

 “나를 내쫓았잖아.”

“밤에 같이 자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어. 무섭다고 헛소리야.”

 “누가 건드리기라도 한 ?”

“내 말이.”

 


 여욱의 집에 도착하니 여동생이 비빔면을 양껏 끓여 먹고 있었다.

“야 이 돼지야. 이게 대체 몇 인분이야?”

 “양이 원체 적어. 비빔면은.”

 대용량으로 업그레이드된 지가 언젠데 아니 세상에 그 많던 것을 다 처먹었네. 몇 개나 끓여 먹은 거래? 겨우 하나 남았어. 어휴 저걸.”


 그녀의 입가에 묻는 붉은 자국이 식욕을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핥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돼지 같은 게 치우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네. 냄새가 아주 식욕 돋게 만드는구먼. 하나 끓여 줄까?”


그녀를 보고 나도 모처럼 식욕이 돋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욱의 동생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후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여욱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이도 채 썰어 넣었다. 먹어 봐. 한 개 밖에 없어서 더 사 와야겠어. 먹고 있어 사 올게.”

 여욱은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더니 잔돈 어디에 있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발장 위에 동전통 있잖아 미친놈아. 다 가져가기만 해 봐.” 여욱은 착실하게도 찰랑찰랑 동전을 세더니 한 번 더 여동생 방문을 향해 소리쳤다.

“천 원짜리 두 장이랑 오백 원짜리 네 개 백 원짜리 다섯 개 가져간다. 됐지?”

시스터보이인가. 과격한 모습으로 순종적인 여욱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나는 식탁 테이블에 홀로 앉아 비빔면을 먹었다. 혹시 그녀가 나와서 김치라도 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으나 급격히 몰려오는 식곤증 때문에 아마 잠이 든 모양이다.

 비빔면을 다 먹어갈 즈음 몸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별 일이다 싶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욱이 나를 집으로 부른 이유가 이것이었나. 그러나 아직 반응은 미약했다. 잠시 이러다 마는 경우도 있었으니.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언제나 알레르기 반응과 과민반응을 고민하며 태연하려 애썼다. 아토피도 극복했는데 알레르기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민반응하지 않으면 어느새 면역력이 생기거나 감쪽같이 나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적응이 되어서 증상이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무방비 상태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레르기 반응에는 속수무책이다. 점차 식은땀이 나고 징후가 나타나면서 손바닥과 귓구멍이 가렵기 시작했다.


‘필시 비빔면에 성분 좋은 메밀가루를 넣었나 보군.’


 여욱이 재래시장에서 구입했다는 소릴 들었을 때 방심한 탓이 크다. 요즘 좀처럼 성분 좋은 메밀을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용케도 잘 구했네. 나는 여욱의 동생 방으로 향했다. 이참에 도움을 청하면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방문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숨이 막혀왔다. 기도가 거의 막혀 여욱의 동생을 부르고 싶었으나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문을 긁기는 했는데 둔감한 혈통이 일어날 리가 없다. 바닥에 허우적대며 몸부림치는 동안 이상하게 흥분이 되었다. 역시 죽음이 문턱에 왔을 때 비로소 살고자 하는 열망이 솟구친다니까. 내가 원한 건 바로 이 기분이었어. 그러니 이제 됐어. 이제 다시 살면 된다고.


 지갑에서 약을 찾았다. 차마 버리지 못했던 상비약. 캡슐 형태는 곧잘 잃어버리기 일쑤여서 가루로 빳빳하게 접어 깊숙이 넣어 다녔다. 결국 또 이렇게 죽음을 면하게 되는 군. 더 이상 지체할 순 없다. 식은땀이 쏟아지고 마비가 오기 시작한다. 물 없이 약을 털어 넣은 적은 처음인데 괜찮을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약을 펼쳤다. 약을 털어 넣으려는 순간 여욱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여욱은 여동생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야. 빨리 119 신고해.”

 소리가 분절되어 들렸다.  

“메밀 비빔면이 출시된.... 모르고.... 아. 안 돼. 그 약 먹으면 안 돼.”

순식간에 여욱이 내 손에 든 약을 낚아채려 하고 있었다. 가루가 반 이상 흩날렸다. 나는 허둥지둥 가루를 핥아먹으며 남은 봉지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입 주변에 묻은 약을 혀끝으로 핥았다. 목구멍이 불에 탄 것 같이 따끔거렸다. 컥컥거리며 겨우 말을 뱉었다.


 “이 악마 같은 자식. 이 개자식아. 그렇다고 날 정말 죽이려 해?”


여욱의 동생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지? 왜 나오지 않는 거지? 이런 내가 괴물 같아서?

 “그게 아니야. 아니 미안해. 아 씨발, 빨리 뱉어. 그게 바로 메밀 가루래. 동생이 몰래 넣어두었다고 했어. ”


대체 왜 여욱이 동생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거지? 이것들이 나를 두고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걸까.


“뭐 이 개자식.”


호흡을 가쁘게 쉬며 겨우 말했다.

“자살은 이렇게 실수로 죽는 거라고.”

“조금만 참아 봐. 119 불렀으니.”

“이거 성분 확실한 거야?”

 “모르겠어. 아저씨 말로는 백 프로 국산이라고 했어.”

“야 이 개자식아. 윽. 헉헉헉.”


  밖에선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여욱의 여동생은 어슬렁거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엔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녀는 신발장 위의 동전통을 확인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닥죽이란 닉네임의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생에 대한 유일한 갈망이 생긴다며, 그런데 그런 일이 어디 흔한가요? 하고 누군가의 글에 댓글로 달아둔 행적이 떠올랐다.


 “조금만 참아봐. 바로 온다 했으니. 조금만 버텨. 아. 미안. 이 미친년이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만. 제 딴에는 나를 도와준답시고 일을 벌였는데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동생 얘기는 낫거든 아니 살아나거든 자세히 해줄게. 암튼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조금만 버텨봐. 알았지?”


 내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약을 제때에 먹지 않았던 적이 없는데. 이 증상은 약만 제 때에 먹으면 십 분 안에 멀쩡하게 살아나는 병이다. 그러나 약을 제 때에 먹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데. 이렇게 나는 죽게 되는 걸까. 동생은 쉴 새 없이 내게 봉평에서 담은 사진을 보내오고 있었다. 부모와 함께 막국수를 먹은 모습도 찍어서 보내왔다. 지금쯤 집에 도착했겠지. 동생은 내 방 어딘가에 몰래 꺾은 메밀꽃을 숨겨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에서 온 영숙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