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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 s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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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Nov 04. 2024

최초의 뒤태 여신 the back 비키 도간 스토리

1950년대 활동한 모델이자 배우 출신 비키 도간은 정면보다는 뒷모습으로 유명해진 스타이다. 스웨터에 무릎 아래의 스커트가 보편적이던 시대에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온 최초의 모델이라 더 파격적이었으리라 본다. 1929년 1월 1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에디스 테이커로 태어난 그녀의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였고 아버지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가족을 떠났고 그녀는 10대부터 남다른 미모로 모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모델 일을 하면서 어머니의 처녀 시절 이름인 비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신기하게도 50년대 활동한 모델들의 스타일을 보면 마치 학 같다. 얼굴이 길쭉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예쁜 것보다는 우아함에 중점을 두었는데, 아무래도 보그 패션지가 귀족을 선호하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 인상적 이게도 귀족 출신의 모델이 그렇게 길고 독특하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아함을 과했으며 그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 하층민 출신도 이런 체형만 타고나면 귀족적인 모델로 대우받고 성공 반열에 오를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50년대 패션지 모델들은 외모가 비슷비슷해 보인다. 비키 도간도 이런 유형에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비키는 모델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얼굴은 독특하게 평범했고 몸매는 그다지 우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아류의 그냥저냥한 모델로 은퇴를 할 것 같았다. 러나 남다른 근성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모델에서 배우로 기웃거렸고 영화제에서 파격적으로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며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그녀는 곧장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강렬한 눈빛의 여배우 로렌 바콜이 더룩(the look)이란 애칭으로 불린 것처럼 비키에게는 더백(the back)이란 별칭을 얻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보수적인 대중을 향그녀는 풍만하지 않은 가슴을 지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등 파인 옷을 입는 거였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소속된 기획사의 계획된 홍보였고 당시 제인 맨스필드가 큰 가슴을 강조하며 어필한 전략과 대조를 이루는 소위 획기적인 마케팅을 한 것이고 회사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독특한 패션으로 뒤태의 여신이라 불리며 주목을 받던 그녀는 한동안 꽤 많이 불려 다니며 주로 뒤태 중심의 화보를 찍고 다녔다. 하지만 보수적인 사회에 보수적인 눈총을 심하게 받은 터라 파격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패션계는 그녀를 환호하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람들의 고지식함으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기 일쑤였다. 노출 범위도 그렇고 좀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1950년대 내내 파인 옷만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녀의 등 덕분에 얻은 명성으로 배우로도 성공을 하고 싶었으나 바람대로 되진 못했다. 대중은 그녀의 연기보다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온 것에만 주목했고 그녀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이렇다 할 작품은 못 남긴 채 사라져 간 그녀는 1980년대 디즈니 만화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캐릭터로 뽑힌 적이 있는 제시카 래빗으로 환생하며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진 스튜디오 소유주와 첫 결혼을 한 이후 50년대 내내 당대 최고 배우들과 사귀었고 60년대 두 번째 짧은 재혼 생활을 하며 여배우다운 삶을 만끽하며 90세를 넘긴 그녀는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서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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