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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언트 Aug 28. 2019

왜 이렇게 말랐어?

밥 좀 먹고 다녀~ 저 밥 잘 먹는데요?



왜 이렇게 말랐어? 밥 좀 먹고 다녀~


저 밥 잘 먹는데요?






누군가는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야기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랜만에 보는 지인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전자의 경우로 살다가 후자가 된 케이스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체중은 대학생이 되어서 만렙을 찍었고, 그 이후 지겹도록 다이어트를 하며 살았다. 언제, 어디서, 무얼 먹든 땅콩 반 개를 먹어도 칼로리를 계산하고 기록하며 수도 없이 디데이를 만들어 놓고 살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하루에 줄넘기를 3000개씩 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이 성공했다는 다이어트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 보기도, 각종 식이요법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캐나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휴학을 하고 대형 편집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그때 의도치 않게 하루에 한 끼 정도를 먹으며 7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이 빠졌을 때 같이 일하던 친한 언니에게 내 몸이 마치 ’나뭇가지’ 같다는 장난 섞인 이야기를 듣고서는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나뭇가지라니.. 나뭇가지라니..!!’


그런데, 인간 나뭇가지의 기쁨도 잠시… 어학연수를 떠나기 직전 살이 야금야금 찌기 시작하더니, 결국 캐나다에서 다시 한번 인생 최대 몸무게를 갱신하고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


그도 그럴 것이 홈스테이 할 때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았던 홈맘들과 함께 거의 매일 고기반찬을 먹었고, 홈스테이를 떠나 쉐어하우스를 할 때는 매일 같이 음식을 사 먹었으니(패스트푸드 위주) 당연한 결과였다. 비슷한 이유에서 피부도 엉망진창 대환장 난리 파티가 났었지.


즐겨 먹었던 A&W


아무튼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천천히 조금씩 살을 빼기 시작했다. 정말 솔직하게는 언제 이렇게까지 빠진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취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빠진 것 같다.

그러다 기적같이(?) 내가 항상 바라던 이상적인(내 기준에서) 체중에서 더 이상은 쉽게 살이 찌찌 않는 몸이 됐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감사하게도 다이어트 보조 식품이나 관련 약물의 도움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구찌갱갱(내가 지어준 별명이자 애칭)은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다. 그녀 역시 체질적으로 마른 몸이고, 가족 전체가 뼈마디가 얇고 가는 ‘살찔 걱정’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타고난(?) 집안이다.


한참 살이 쪘을 때 구찌갱갱을 만나면 그녀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아무 때나 배가 고플 때 원하는 음식을 양껏 먹고(사실 많이 먹지도 못하지만),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침대에 드러눕고, 새벽에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물을 끓이고, 잔뜩 몸을 구겨 쪼그려 앉아도 살이 퍼지지 않는.

이번 생에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대로 하는, 어쩌면 로망이기까지 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오자마자 구찌갱갱이 해준 핫케이크...



다만 그런 그녀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그건 역설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살을 빼는 것보다 건강하게 찌우는 것이 더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체질적으로 살이 붙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 찌우기’란 좀처럼 힘든 게 아니다. 한약을 먹거나 보조 식품을 함께 섭취해도 체중은 그대로였고, 언젠가부터 그녀도 살 찌우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별생각 없는’ 혹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밥은 먹고 다니냐며, 살 좀 쪄야 하지 않겠냐는 둥, 다리가 그게 뭐냐는 둥, 손목이 부러지겠다는 둥 지껄였다고(그녀의 입장)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속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녀는 내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물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살찐 사람한테는 ‘너 너무 살찐 거 아니냐, 탄수화물 좀 그만 먹어라'라고 이야기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마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걸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똑같이 자신의 마른 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쉽게 찌지 않는다는 걸 왜 그들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할까.


나쁜 뜻이 없는 것도,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던 것도 다 잘 알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처를 준 사람은 없고, 상처를 받은 사람만 있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있어도,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나름 건강한 방법으로 7~8kg이 빠지고, 3년 가까이 그 체중이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전처럼 '배가 터질까, 안 터질까' 하며 미련하게 음식을 먹지도, 눈앞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음, 정확히는 음식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이제는 먹고 싶은 것을 아무 때나 먹고, 칼로리를 계산하지도 않고, 양껏 배부르게 먹어도 죄책감이 없는 다이어트로부터 자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칼로리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직도 나를 오랜만에 보는 친한 언니, 오빠들은 다이어트 좀 그만하라며, 왜 이렇게 말랐냐고, 밥 좀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다이어트는 3년 전에 끝났고, 더 빼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난 지금 내 몸이 좋고, 밥도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있다.


아직은 그런 말들에 크게 스트레스받는 것도, 속상한 것도 아니라 개의치 않고 웃으며 대답할 수 있지만, 그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된다면 적잖이 뻘쭘하지 싶었다.

물론 살이 빠지고 예뻐졌다는 얘기도 종종 듣기에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으니 정신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사실 안 그래도 다음 달에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건강검진을 받아 볼 생각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리만큼 체중에 변화가 없고, 종종 오는 편두통은 나의 건강염려증을 더욱 증폭시키니까.


이제 내 목표는 아무쪼록 지금의 체중을 유지하면서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병행하고, 이너뷰티를 실행하는 일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내면과 외면을 두루두루 갖춘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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