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볼 수 있는 지옥의 길을 달리다
[D+10 세계일주 – 인도, 라다크]
조금씩 내리던 비는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무겁고 빠르게 변했다.
새벽에 다시 한번 숙소에 직원에게차량 예약을 확인을 했다. 직원은 지금 나가면 버스가 있을거라고 했고 나에게 당연히 "노프라블람" 이라고 얘기를 했다.
드디어 여행 처음으로 판초우의를 꺼내서 비를 뚫고 힘들게 버스정류장에 왔으나 역시나 "프라블람"이 생겼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은 버스 때문에 화가났다. 같이 기다리던 영국 여행자와 인디아 타임에 대해 욕을 했다.
숙소 예약 직원이 준 버스기사 전화번호가 있었으나 모두 모바일 인터넷만 가능하고, 전화는 불가능하어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버스를 5시간을 기다렸다는 얘기, 결국오지 않아 다음날 출발했다는 얘기 등 여행 카페에서 본 안 좋은 후기들이 떠올랐다.
동행한 여행자가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어플'왓츠업'을 사용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번호를 등록해서 메시지를 보내자고 했다. 빠르게 앱을 설치하고 기사에게 연락을 했다. 바로 전화를 거니 상대방이전화를 받는다. 나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어디냐고물으니 호텔 이리고 한다. 하... 시X 왜 지금 호텔에 있냐고 버스정류장에서 난 기다리고 있다고 화를 냈다.
버스기사는 영어로 뭐라 하는데 인도영어가 귀에 안들어왔고 영국여행자를 바꿔줘서 대신 통화를 했다. 아무튼 내용은 곧 온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새벽 2시 30분이 넘어 바쉬쉿 좁은 골목 멀리서 버스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저 멀리 호텔 직원이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도 보였다.
내가 전화한 것은 호텔 직원의 연락처였다. 난 버스기사 연락처를알려달라고 했는데 직원은 자기 연락처를알려준 것이다. 버스기사가 확정이 안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전화했을 때 호텔에 있는 게 당연한 것이었고, 전화를 받고 비 오는 새벽에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온 것이었다.
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직원도 비오는데 오래 기다린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비는 계속많이 내리고 있었고 예상시간보다 출발이 늦었다. 먼 길을떠나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운전기사는 비가 많이 내리는데 배낭을 차 위로 올리는 것이었다. 여행동행자는 가방이 다 젖을 확률이 높다고하여 레인커버를 씌우고 판초우의까지 한 번 더 감고 14승 버스 위로 올렸다.
호텔 직원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고 다시 오라는 인사와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제 진짜 라다크로 출발이다. 근데 버스 천장에서 비가 뚝뚝 떨어진다. 운전기사는 더러운 행주 같은 것으로 비가 새는 부분을 몇 번 문지르더니 출발했다.
14인승 버스에 운전기사 1명까지 15명이 가득차서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새는 것에 불만이 많던나이 많은 서양인 부부는 버스기사에 컴플레인을 걸고 내렸다. 당연히 환불불가. 나도 이때 내렸어야 했다.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잠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경적 소리에 놀라잠에서 깨니 새벽에 가드레일도 없는 절벽옆 도로를 시속 100킬로로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었고 버스 기사도 물론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면 안전벨트는 필요 없다. 그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라다크로 향하는 절벽 도로에서 떨어져 죽은 여행자들 이야기가 생각났고 난 도로 바로 옆 절벽을 바라보며 혹시나버스기사가 졸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근데 나 빼고 버스에서모두 잘 잔다. 하긴 이 절벽을 날아가듯 달리는 미친 버스를 보느니 자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인도인들 운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과격하게 운전을 잘한다. 목숨 걸고 하는 것 같다.
진짜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잠을 못 잔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절벽 밑은 정말 끔찍했다.
새벽 6시쯤 첫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해서 여권을 걷어 인도 경비소에 맡겼다.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기사 미친놈 같다고 얘기를 했고 다들 눈을 비비며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도 그냥 자고 싶다.
짜이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를 일찍 예약해서 좋은 자리를 배정받았던 내 자리에 같이 버스를 탔던 영국 놈이 홀랑 모른척 앉아 있었다. 그것도 눈을 감고 헤드셋을 끼고팔짱을 낀 채로
어차피 잠도 안오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길이라는 레로 향하는 길이나 실컷 보자고 생각하고 그냥 원래"내자리인데 너 앉아라 영국 놈아" 하고맨 앞자리에 앉았다.
다시 버스는 출발했고 곧 다시 버스는 멈췄다. 웅성웅성. 차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아 그럼 문제가 있는 차로 절벽 도로를 달려왔구나.
내리는 비를 맞으며 또 짐을 다른 차로 옮겼고 내 배낭은 운이 좋게 버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라다크에 도착해서 젖은 팬티를 입을 일은 없겠다. 영국놈 가방이 버스 위로 올라가라고 기도했다.
바뀐 운전기사는 스티븐 시걸을 닮았고 멋진 가죽재킷을 입고 "암 쏘리 스모킹"라고 담배를 뻑뻑 피는 상남자였다. 내가 미친놈이라고 욕한 그 전 운전기사는 스티븐 시걸에 비해 아주 소녀처럼 상냥하고 얌전하게 양보운전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곧 느꼈다.
레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해발 5000미터 가까이 달리는 도로는 비와 눈이 내리다가멈추고 볕이 비치다가 무언가가 하늘에서 다시 내렸다. 버스에 앉아 있으면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시걸은 담배를 꼬나 물고 갑자기 인도 음악을 아주 크게 아주 크게 틀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였고아주 별로 였고 아주 별로 였다. 아이팟을 가져오길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고 아이팟을 준 명성이가 고맙고보고 싶었다.
난 내가 아이팟에 담아온 아주 시끄럽고 비트 빠른 음악을 가장 크게 틀었다. 하지만 인도 음악은 EDM따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 귀로 스멀스멀 들어왔고 EDM과 인도멜로디는 묘하게 잘 어울렸다. 아무튼 둘 다 신나고 정신 없는 게 비슷하니깐.
그는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따 큼 옆에 앉은 날 쳐다보며 즐겁지 않냐는 듯이 묻는 표정을보이며 신나게 웃었다. 그는 절벽 옆 도로를 100킬로 달리고 있었고 나도 같이 웃어주며 난 내 사망 여행자 보험 금액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비싼걸 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스티븐 시걸은 한 손으로 절벽을 달리는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아주 더러운 수건으로 창문에 낀 성에를닦다가 나한테 던지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눈치가 빠른 편이다. 묵묵하게 보조석 앞 쪽에 성에를 닦았고 내 꼼꼼함에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우린 아주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성에 제거장치가 차에는 당연히 없었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성에는 자주 끼었고 당연히 내 손도바빠졌다. 추워서 창문을 닫자 스티븐 시걸형은 엄격한 표정으로 그럼 성에가 더 잘 끼니 창문을 열라고했다. 그래 죽는 것보다 추운 게 좋지.
시걸 형의 특징은 해발3000미터 절벽 옆 도로를 새벽의 테헤란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논현동 콜땍이처럼 달린다는 것이었다. 창문 옆 절벽을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려왔다. 지금 이 상황은실화다. 혹시나 실수 한 번이라도 하면 버스에 있는모든 사람은 죽는다. 진심으로 내리고 싶었었지만다른 선택은 없었고 시걸 형은 믿는 수밖에.
시갈 형은 또 다른 특징은 자기 앞에 차가 있는 꼴을 못 본다. 무조건 추월한다. 성에 제거장치도 없는 차에 클락션 인공지능 장치는달려 있는지, 자기 앞에 차가 있으면 미친 듯이 클락션을 울리며 절벽 옆 도로에서 추월을 한다. 추월을 할 때마다 야이 미친놈 아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마 그랬으면 내 목이 금방쉬었을 것이다.
신나게 달리던 버스는 갑자기 멈췄다. 내려서 보니 모든 버스, 개인차량, 오토바이 등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산사태가 나서 언제 도로가 개통될지 모르고 최소 4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고 했다! 어메이징 인도!
도로 옆 간이식당에서 최악의 카레도 먹고, 짜이도 마시고, 인도 음악을 피해 조용한 음악도 듣고, 노상방뇨도 실컷하고, 책도읽고, 과일도 먹고,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잠도 자고, 할수 있는 모든 걸 다해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오마이 인디아갓
버스를 탄 지 12시간이 넘었다!원래 출발 후 18시간 도착이었다. 1/5도 안 왔는데 12시간이 지났다니!!! 5시간 후 큰 경적소리와 함께 차들은출발했고 스티븐 형은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남중생처럼 아주 또 신나게 달리며 남들이 다 가는 도로로 안가고 혼자 비포장도로로 갔다. 본인 이상남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또 신나게 달리던 차는 멈췄고 2차 산사태 발생으로 도로에서 하염없이대기했다. 버스에서 보낸 시간은 이미 18시간이 넘었다. 가드레일도 없는데 당연히 가로등이 있을 리가 없다. 불빛 하나 없는암흑 속 절벽을 배터리 수명이 거의 다한듯한 아주 희미한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하며 달렸다. 난 이미 내가 죽었고,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난계속 창문을 닦았고 운전기사 상태를 확인했으나그는 지친 표정 하나 없었다. 오 멋지군. 작은 사고가 있었다. 운전기사를 도와주다 손에 나무 가시가 박혔다. 빼내려고 노력을 해도 빠지지 않는다. 욱신거린다. 제기랄. 내 손을 기사가 가끔 힐끔거리며 볼 뿐이다.
밤 11시쯤 텐트로 지어진 작은 식당에 들어갔고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치킨 수프와 짜파티를 먹으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버스에 탑승한 지 21시간째.
영어가 가능한 인도인 한 명이 의견을 제시했다. 운전기사의 피로도도있고 새벽의 운전은 위험하니 천막에서 자고다음 날 출발하자는 것이다. 버스에 탄 사람들 모두 동의했고 혹한기 훈련 24인용 텐트 같은 곳으로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들어갔다.
계속 밍기적거리던 프랑스여자애들도 번개처럼 청결하지 않은 텐트에 들어갔다. 모두아주 지치고 피곤했던 것이다.
난 손에 가시를 뽑으려고 후시딘과 손전등 그리고 다용도칼에 있는 핀셋을 꺼냈다. 다용도칼은 진짜쓸모가 많다. 맥가이버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시를 뽑는 건 쉽지않았다. 피곤했고 추워서 몸은 굳었다. 멀리서 따뜻한 차를 마시던 시걸 형은 나에게 다가왔고 내 손을 보다니 호탕하게 웃으며 "노프라블람"이라고 얘기했다. 하... 또 나에게 프라블람이 생긴려 한다는 슬픈 예감은 틀리지않았다.
텐트 주인에게 뭐라고 소리를 지르자 주인아주머니는 귀찮다는 듯 바늘을 가져왔다. 오 마이 갓.
한 손으로 단단하게 내 손목을 잡더니 소독도 하지 않은 바늘로 오른손 중지 손가락을 바늘로 후벼 파기 시작했다. 정확한 표현으로 후벼 팠다.
심심해하던 인도인들이 다 모여서 내 빠큐 손가락을 보며 다 시갈형을 응원하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주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시걸 형은 내 손가락 가시를 빼낸 것이 아니라 바늘로 살을 파 가시를건져 올렸다. 그리고 날 보며 찡끗 웃으며 "노프라블럼"
아오 내 손가락... 아무튼 손가락 가시는 빠졌고 후시딘을 바르고 가장 늦게 텐트에 들어갔다. 텐트는아주 추웠다. 침낭 안에 들어가고 젖은 개 냄새가 나는 아주두꺼운 이불로 머리 위까지 올렸다.
하루가 참 길다.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 날 밤 큰 굴에 캐비어를 올려 삼페인과 먹는 꿈을 꿨다. 왜 이런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