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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Dec 31. 2022

달리기를 하며 생각한 것들 6

올해의 마지막 달리기

눈이 쉽사리 녹지 않아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하기로 했다. 추위에 대비해 난생처음 비니도 사고, 발열 속옷도 새로 샀건만 눈이 얼어 빙판이 지속되는 상황은 생각지 못했다. 기계와 반친화적인 나는 러닝머신 위에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새벽 운동하는 남편이 그날 피트니스센터 출입 카드를 잃어버렸고 설상가상 자유롭게 드나들던 건물 입구에 도어록이 설치되어 비번을 알아야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던 것. 집에서 10시에 나왔으나 여러 번 헤매던 탓에 10시 30분에 러닝 머신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러닝머신은 역시 불편했다. 12년 전 미혼 시절 두 달 다니던 피트니스센터에서 두어 번 달려본 게 이력의 다였기 때문이다. 버튼 조작을 잘못해 비상버튼을 누르지 않나 발을 헛디딜까 봐 움츠러들어 자세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나와 띠 동갑 쥐띠들은 가볍게 뛰어다니고 있겠지. 연말을 즐기기 바빠서 아예 러닝머신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으려나. 몸도 마음도 정말 마흔 줄에 접어들었음을 느끼며 왠지 슬프고 씁쓸하고, 즐겨 듣던 음악에도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디딘 땅을 내가 밟고 지나간다는 느낌 대신 컨베이어벨트의 규칙적인 운동에 내가 발을 얹고 있는 기분이 불쾌했다. 그 수동성에 다람쥐가 된 기분이었고, 컨베이어벨트에서 공정 작업자가 된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원체 느린 데다 느슨하고 야물지 못한 편으로, 마음이라도 느긋하면 박자가 맞을 텐데 성격은 급하고 욕심은 많아서 매사 불평도 많고 짜증도 많은 편이다. 이런 내가 어쩌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직장에서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을 만나며 일을 하니 매번 무언가에 떠밀려 사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쉼 없이 돌아가야 한다면 똘똘이표 나사라도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해서 근심만 늘어났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지금보다 잘 살기 위해서였다. 육체와 정신의 생존을 위해서, 일터에서 힘을 다 뺏기지 않고 집에서 내 아이에게 나누어줄 에너지를 남겨오기 위해, 수동성을 줄이고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거였다. 개인이 소진될 수밖에 없는 형국의 사회에서 소진되지 않기 위한 달리기라니. 그래도 지난 반년 간 꾸준히 달렸다. 힘들 거라 생각했던 달리기는 점점 익숙해져 처음보다 덜 힘들었고, 내 호흡과 발소리 이외에 조용해지는 사위나 발에 새겨지는 두드림이 활력이 되었다. 목적 달성은 판단할 수 없으나 달리는 나는 마음에 든다. 어느 순간부터 뜀박질하러 밖에 나갈 때 가슴이 뛰었다. 일터에서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운동 중에서 달리기를 찾았듯이 교실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나만의 무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새해엔 큰 욕심 내지 않기로 한다. 많은 교과목 중에 딱 한 과목이라도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가르친다는 자부심이 들 만큼 준비해 보자고, 육아서도 한 권만 제대로 겨울에 읽고 새로운 봄을 준비해 보자, 다짐한다.

부러 정한 책은 아니었는데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은유의 <올드걸의 시집>이다. 복직한 뒤 반납하고 다시 대출하기를 거듭해 드디어 다 읽은 책.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낮에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보다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나오는 진짜 노동자. ‘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지만 임금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고 말할 때의 그 노동자. 나는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사교의 장에서도 근면성실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내가 삐끗하면 삶의 시스템이 멈추니까 몫을 다한 것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고작 또 다른 시시한 하루를 재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삼십 대에는 치열함의 미덕으로 소용되었을지언정, 사십 대에는 좀 넉넉한 시간의 옷이 필요한 것 같다. 빈틈없이 날카로운 잣대는 늘어진 뱃살 드러나는 쫄티처럼 이제 내게 안 어울린다. 갑갑하고 각박하다. 남 보기에도 안 좋고 나도 불편하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도 달린다. 오래된 휴대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인가 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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