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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Jan 28. 2023

아이와 함께라서, 혼자라서 느끼는 행복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올해 여섯 살이 된 딸은 지금까지 나와 떨어져 밤을 보낸 날이 단 하루였다. 아이의 통잠이 요원할 것 같던 네 살 여름, 잠을 못 자 늘 퀭한 몰골의 나를 딱히 여겨 시가 행사에 남편이 홀로 아이를 데리고 간 날이었다. 잠은 자주 못 잤건만 내가 딱한 건 하루뿐이었는지 그 전후로 남편이 아이만 데리고 시가로 가는 일은 없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종종 친정에 간다. 아이가 기저귀를 뗄 무렵부터 서너 달에 한 번씩 가서 몇 박 며칠을 보내고 왔다.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푸짐한 엄마밥을 먹어 얼굴이 조금 환해지고 배는 통통해질 것을 예상했으나 육아와 관련한 모든 일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차로 갈아타는 동안 이미 나는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집에 있던 놀잇감과 책을 양껏 가져가지 못하니 도착해서도 아이는 심심해하며 놀아달라 재미있게 해 달라 자주 치댔고,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데리고 체험활동 하기도 제약이 많던 상황이라 나는 아이의 투정을 온전히 감내해야 했다.

남편은 나의 친정행을 분명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힘든 만큼, 정확히는 나와 내 친정어마가 고달픈 만큼의 행복을 그 시간 동안 누리고 있을 터였다. 그것도 몇 박 며칠을 이어 길게도.

이번 설에 시가에 못 내려갔기 때문에 한 주 뒤인 이번주에 내려가기로 했다. 아이와 나만 신정에 4박 5일을 다녀온 걸 얘기하며 나에게도 휴식의 시간을 달라하니 웬일로 남편이 승낙했다.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나는 1박 2일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아이는 엄마와 밤에 떨어져 자야 한다니 울고불고 난리 치며 안 가겠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 아우성이었으나 나는 단단하고 친절한 엄마답게 아이를 꼭 안아주며 달래고(끝내 달래지지는 않았으나) 돌아섰다. “내일 다시 만나니까 우리는 완전히 헤어지는 게 아니고 오늘만 잠시 떨어지는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많이 받고 내일 다시 만나자.”

혼자 남겨진 금요일 오후의 시간, 집을 치우고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는데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 있고 어느 순간 나는 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내 아이를 떨어뜨려놓고 이래도 되나? 나라는 사람은 모성애도 없는 자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오후에 어떤 책을 읽을까. 오늘은 아이 재울 시간 전에 운동을 다녀올 수 있겠다. 자주 읽어 달라고 해서 너무나 지겨워진 호비책을 안 읽어도 되다니, 그 시간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마음은 점점 들떴다.

그리하여 작은 책탑을 쌓아 카페로 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 집으로 돌아와서 통목욕을 하고 꿀잠을 잘 계획의 첫 단계였다. 오늘밤은 아이 발길에 차이거나 얼굴을 얻어맞거나 배를 드러낸 아이의 옷을 내려주거나 이불을 덮어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꿀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서 혼자 아침 커피를 마시고, 또 책을 읽다 보면 점심 전에 아이가 당도할 터. 1분 1초가 매우 귀한 시간이다.

카페에서 며칠 전부터 읽던 백수린의 에세이를 이어서 읽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읽기 시작한 부분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 관한 작가의 경험이었다. 천둥이 치던 여름밤, 겁에 질린 반려견이 작가에게 엉덩이를 붙이자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반려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작가는 강아지가 좀 더 몸 가까이에 파고들자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내 아이는 가끔 머리를 내 배에 대고 잔다. 어느 순간엔 방향을 180도 돌린다. 우리 모녀가 누워 있는 모양은  ‘ㅏ’ 자를 닮았다. 그때의 아이 발길이 내 가슴이나 배에 닿고 발버둥을 칠 땐, 나는 절로 ‘아’ 외치거나 가끔은 ‘악’ 비명을 내지르기도 한다. 이런 밤에 나의 마음은 행복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나는 그저 아프고 잠이 달아나고 어떤 때는 아이에게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옆에 없는 밤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행복이 하루의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사실 2박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가 내 품에 안기고 볼에 얼굴을 비비는 일이 매일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그 따스함을 행복이란 걸 잊고 산다. 그래서 매일 누리는 행복을 생각지 못하고 오늘같이 혼자 지내는 밤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게 행복감을 주는 건 일상을 아이와 함께 하는 것, 가끔 오늘같이 혼자 있는 시간이 덤처럼 주어지는 것 두 가지 모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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