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멘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애써 칠한 부분을 여러 번 더 덮어야 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해서 나는 털썩, 붓을 놓고 주위 수강생 분들의 그림을 보려고 일어났다.
혜영 언니의 그림은 다른 수강생들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색깔의 연잎이었다. 색을 붓으로 칠하지 않고 작은 나이프로 한 땀 한 땀 퍼 올리고 있었다. 오늘 끝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아직 여러 번 더 올려야지요, 하고 언니는 말했다.
그때는 나이프로도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화실은 6개월도 못 다니고 그만두었고,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매일 그린 지 1년쯤 된 무렵, 머릿속엔 온통 그림 생각밖에 없었다. 뭘 그릴지, 그걸 어떤 구도로 종이에 올릴지, 어떤 식으로 색칠하면 이렇게 보일지. 그렇게 그림을 쌓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릴 것은 차고 넘쳤다. 하나에 푹 빠져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주제로 관심사가 바뀌며 그림이 한 번씩 변환기를 맞았다. 아마 평생 그려도 재미있을 것이며 스킬이 느는 건 덤일 것이다.
어느 날 궁금해졌다. 이쪽 일을 하려면 결국 이 나이에 대학을 가야 하는 걸까?
'그림 작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작품을 만드는 걸까?
자신을 그림에 투영한다는 건 뭘 뜻하는 걸까?
그래, 내 주변에 현직 작가 '혜영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주는 답은 무엇일까.
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술학과와 다른 과 한 군데에 붙었는데, 미술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반대하시며 입학금을 내주지 않겠다고 했단다. 언니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공부를 위해 다른 학교에 돈을 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고.
시간이 지나고 결혼했다. 고졸에 비전공자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미술협회에 가입을 권유하더라고 한다. 비전공자라면 10년의 개인전 경력이 있어야 했고, 전공자는 바로 가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씩 늦깎이 대학생이 될 때, 언니는 그냥 묵묵히 시간을 채워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니, 미술협회 가입을 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본질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항상 산책을 한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며 생각을 천천히 정리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쪼그라들었던 자신이 한 뼘씩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연잎은 자신이었다. 이제 막 성장하고 있어, 아래에서 자신이 커가는 모습을 올려다보는 것을, 구도에 표현했다고. 언니의 연잎은 중후하고 깊은 색 안에서 눈이 부시게 밝은 빛을 마주 보고 있었다.
언니는 언니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원하지 않는 과에는 가지 않겠다는 결단.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마음이었던 사람. 주위 사람들이 졸업장을 위해 어디라도 미대를 가자고 할 때 '그림'자체가 중요하다며 흔들리지 않고 그리던 사람.
지금 언니의 그림을 검색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바뀌어가는 그림에서 언니가 보인다.
몇 년 사이, 언니의 잎 위쪽이 보인다. 언니는 이제 웅크려서 세상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몸을 쭉 펴고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선의 변화만큼이나 변한 것은 색상의 변화이다. 톤이 밝을 뿐 아니라 밝은 빛을 눈높이에서 마주 보고 있다.
최근에는 나의 숲이라는 주제로 물감을 나이프로 한 올 한 올 찍어 올리는 작업을 한다. 겹겹이 올리는 색깔들의 조화가 신비로우면서 경쾌하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들겠지만, 언니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한 올 한 올 그림에 올린다는 것을 안다.
계속 그림을 그린다면 언니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 밖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말고, 자신의 내면을 보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그림에 담는 사람.
롤모델이 이렇게 가깝게 있다는 것이,
그녀가 이미 길을 닦으며 먼저 가고 있다는 것이,
안심되고 든든했다.
#임혜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