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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Apr 25. 2023

서연 작가

그녀는 색연필로 컵을 그렸다. 도자기 컵을 좋아한다고 했다. 따뜻한 온기가 그림으로 느껴졌다.




달뜬 구석이 없는 차분하고 묵직한 글도 좋았다. 그림 아래 한두 줄의 글이 철학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좋게 보이려 하지 않고 날것으로서의 자신을 꺼내어 샅샅이 훑어보는 사람의 글이 내 어떤 곳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상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또 어떤 때에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림으로 만나는 그녀를 나는 만나고 싶었다.

용기 내어 어디 사시냐고 물으며, 우리 차 한잔 할까요? 하고 물었다.


우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호크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호크니는 당시, 현존하는 미술 작가들 중 그림이 가장 비싸게 팔린 작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 앞에는 전시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들 속에서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서연 작가님은 이날 동탄에서 왔다고 하셨던가, 하여튼 먼 거리를 오셨고 나는 또 가까운 곳에서도 겨우겨우 시간을 맞추느라 와다다 달려오자마자 와락! 그녀 앞에 섰다. 맞죠? 하는 표정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의 2층, 3층 공간을 돌며 조용히 전시를 관람했다. 두 시간가량 인파에 밀려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이제 마지막 방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껌껌한 전시실에서 고개를 틀자, 벽 가득 펼쳐진 연작의 <더 큰 그랜드 캐니언>이 펼쳐졌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웅장하게 펼쳐진 수십 점의 풍경에 완전히 압도당해, 가슴이 저릿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그림을 사진으로 봤다면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을 크기였다.


우리는 그 감동을 깨고 싶지 않은 무드로 조용히 미술관을 나왔다. 정동길을 걸으며 어딘가 들어가 밥을 먹으며 그제야 서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물었다. 통성명도 하지 않고 둘이 만나 몇 시간 전시를 봤다는 게 웃겨서 우리는 좀 웃었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화가라고 하기엔 취미생이고 취미로만 한다기에는 매일 일정 시간을 쓰고 있는 우리.

그녀는 수학 과외를 오래 했다고 했다. "어머, 저도요!"

그녀는 4살, 7살 아이가 있다고 했다. "저도요!"

이런 비슷한 환경 속에서 그녀는 가족과의 충실한 삶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산다고 느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추진력으로 마구 돌진하는 사람이었고.




내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나는 그때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재료비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 돈으로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작품을 파는 사람들이 없어 어느 정도 선의 가격을 정해야 하는지 감이 전혀 없었고, 작품을 끝없이 만들고 있는 나로서는 다음 재료비라도 벌 수 있다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 날 만난 서연 작가님도 비슷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인스타 메시지로 그림을 사고 싶다고 말했고, 고민해 보겠다고 했단다. 고민 후에 10만 원을 불렀고, 그 사람은 사겠다고 했다고. "산대요?" 하고 되물은 건 나였다. 

놀랍게도, 그걸 보낸 후 그림이 너무 아까워서, 그 이후에는 구입 문의가 와도 거절했다고 했다.

"왜요, 팔고 또 다른 거 그리면 되죠!"

그림에 저를 정말 녹여 넣었어요. 그 그림은 저의 일부예요. 그걸 돈으로 환산해서 받고 싶지 않았어요.





자기, 이 트레이 6만 원에 팔면 살래?

당연히 안 사지, 다이소에 천 원짜리도 많은데!!!

-여러분, 제가 이런 공대 남자랑 삽니다.


서연 작가님과의 대화 후 나는 작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뭘 그릴지 정할 때, 내가 그것을 고른 이유는 내 삶에서 나왔다.

붓이 이런 방향으로 지나가는 것은 수없는 연습 끝에 이쪽 결이 맞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터치 하나하나에 내가 담겨있다.

어쩌면 그림 한 점에 그리는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다이소 트레이를 사는 사람은 '가격'에 무게를 둔 것이고

작품이 마음에 들어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취향'에 무게를 둔 것일 뿐.

그걸 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걸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세상이다. 나의 타깃은 '취향'을 찾는 사람이고, 그러니 내 취향대로 만들어 결이 맞는 사람에게 정당한 값을 받고 판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처음, 다이소랑 싸우려니 힘이 쭉 빠지던 그때, 타깃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서연 작가님은 내게, 작품의 가치에 대해, 나아가 나를 담은 작품에 대해, 나아가 나, 그 존재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 같다.




서연 작가님이 몇 년 전 제주도로 옮겨 아이들과 자연에서 사는 모습을,

그리고 최근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아이들과 적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림으로 만난 그녀의 모든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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