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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Apr 21. 2023

밑작업

알콜잉크는 보통 흡수되지 않는 바탕 위에 작업한다. 유광 코팅 되어 있는 타일이나 간판에 붙이는 비닐 같은 재질의 유포지가 많이 사용된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은 타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육각형 모자이크 타일이 참 예뻤다. 알콜 잉크 작업을 하다가 실수하면, 알콜 묻힌 휴지로 쓱쓱 닦아주기만 하면 다시 깨끗해진다. 그래서, 초보자에게 타일은 참 좋은 재료다.





외국 작가들은, 타일에 알콜잉크 작업을 한 후 레진으로 코팅을 하고 아래에 코르크판을 붙여 컵받침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렇다. 잉크 연습을 많이 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나왔더라도, 작업한 타일을 죽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상품의 가치가 없었다. 이 것들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전후 작업으로 상품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타일 위에 만들어진 잉크 무늬는 스크래치에 약하다. 또, 물티슈로 힘주어 닦으면 쉽게 닦여나간다. 작품 보존을 위해 레진을 씌운다. 레진 작업 전, 타일 뒷면에 레진 흐른 자국이 남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마스킹테이프를 붙인다. 레진 작업 후에는 드라이어로 열을 주며 마스킹테이프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코르크판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붙인다. 코르크판을 자를 때에는 엄청난 부스러기가 나온다. 자른 코르크판을 들고 서로 문질러가며 먼지도 털고 자른 부위를 하나하나 정리한다.


이 코르크판을 레진작업된 타일 뒤에 실리콘과 본드를 이용해 붙인다. 붙이다 튀어나온 본드를 물티슈로 부지런히 닦아 잘 정리한다. 튀어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모자라는 것은 더 문제다. 가장 완성도 높게 만들기 위해서는 귀찮은 과정이 필수다.

잘 마무리한 타일 컵받침을 몇 시간 동안 잘 눌러줘야 한다. 코르크판이 타일 뒤에 잘 붙게 하기 위해서다. 무엇으로 눌러야 안전할까. 모두 같은 모양의 타일 작품들을 켜켜이 쌓았다. 타일 자체가 가진 무게로, 자기들끼리 단단히 잘 붙었다. 이제 포장만 남았다. 


다음날, 나는 절망했다. 겹겹이 쌓인 모든 작품마다 코르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틀쯤 굳히면 완벽하게 경화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레진이, 며칠 더 굳혀야 찍힘에 강한 정도의 경화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없기에, 이런 아까운 작품들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가곤 했다. 


이렇게 기준을 통과한 완성 작품들이, 집에, 그리고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LOVE FLOW (15F SIZE) 2021, SOLD




밤새도록 잉크 작업만 하고 싶었다.

잉크 한 방울 위에 알콜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결정이 모두 깨지는 듯한 모양으로 잉크가 퍼져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의 빅뱅이나 별의 탄생을 보는 듯 신비로웠다.


따뜻한 바람의 방향대로 잉크의 결이 생기며 마르면, 그 결이 마치 한복 천처럼 하늘하늘 아름다웠다. 두 번 세 번 수정하다 보면 이 작품은 탁한 색깔로 변하며 투명함을 잃고 만다. 적당한 때 완성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작품 한 점을 만드는데 필요한 공정이 10이라면, 그림 그리는 시간은 3에 불과하다. 4는 밑작업에, 3은 마무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판매할 수 있는 작품 한 점이 완성된다. (아직 판매는 시작도 안 했다)


코르크판을 몇 시간 동안 자르면서, 

마스킹테이프를 타일 뒤에 꼭꼭 눌러 붙이면서

이게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만 그리고 살 수 없듯,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가 없다.

어쩌면 허드렛일 같은 7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작품으로 보이는 3의 앞뒤로 계속 함께 해야, 내가 하려는 것이 비로소 상품성을 가진, 가치 있는 무언가로 세상에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밥을 하러 집에 간다.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다가도 집에 달려가 시간 맞춰 아이를 깨우고 등교시킨다. 엄마로서 살자니 종종 작업의 맥이 끊긴다.


어떤 분이 물었다.

결혼을 안 했으면 어땠을 것 같냐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실컷 하지 않았겠냐고.

글쎄,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면서 아직도 원룸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A직업에서 B직업으로 바꿀 때는 그 사이에 공간이 필요하다. 배우는 동안 돈과 시간이 투입되고 내 입에 밥도 먹여주면서 보채지 않고 기다려줄 사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이고 먹고사는데 바쁘면 이직도 아니고 전혀 다른 일을 할 여유란 없었을 것이다.


결혼을 했으니 구색 맞추기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새 가구와 새 전자제품으로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거쳐 수학과외 선생님, 에세이작가, 화가로 살고 있다. 그 사이마다, 남편이 덤덤하게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럼에도 과정이 쉽지 않았다. 모든 결과물 3 뒤에는 7이 더 있었다. 주위의 도움과 균형 맞추기를 위한 눈물의 시간도 있었다. 그게 성취와 한 세트라는 것을 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어쩌면 좋은 결과 3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 7이 아니라

일상 7의 무게가 기준이 되어 결과물 3이라는 인생 가치도 무게를 갖는다는 걸, 점점 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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