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선생님과 언니들 사이에 E의 기질이 다분한 내가 들어갔을 때 이미 화실 분위기가 너울너울 요동쳤을 것이다. 그리고 채 몇 달 지나지 않아 은혜가 왔다. 은혜는 20대 초중반의 꽃다운 아가씨였다. 아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아가씨라고 부르긴 또 그런가. 은혜는 화실을 뒤집어 놓으셨다!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그 젊음과 에너지를 감당할 재간이 없을 정도였달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입은 쉼 없이 떠들면서도 붓질은 더듬더듬 겁내는 쫄보였다. 선생님은 절대자였기에 선생님이 권하는 순서대로 방법대로 잘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그림 자체가 적은 것을 골랐다. '구' 연습을 위해 열매 한두 개가 있는 사물을 추천받아 그렸고, 그게 익숙해지면 나뭇가지에 목화꽃 서너 알이 붙은 것을 그릴 자격이 생기는 식이었다.
은혜가 그리고 싶다고 가져온 첫 그림은 무민 캐릭터 그림이었다. 옆으로는 숲이 우거지고 무민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이것을 <혁명> 또는 <은혜의 난>이라 느꼈다. 선생님은 약간은 노골적으로 이 그림을 싫어하셨다. 감히 입시 전문 선생님께 무민 만화 캐릭터를 내미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달까. 이 불편한 공기를, 나이가 적지 않은 우리들은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여러 번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며 그림을 손 봐주실 때에도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께 선물할 마음에 신이 나 있는 것이었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나중에 물어보니 눈치 주는 것 따윈 상관없다고 했다. 정말로, 은혜는 괘념치 않고 결국 숲 속 무민 가족을 그려내고야 말았다.
이제 돈 주고 수모당하는 일이 없으려면 선생님이 권하는 그림을 그릴 차례였다.
은혜는 당당하게 두 번째 그릴 그림을 갖고 왔다. 이번엔 밤비였다. 우거진 숲 속의 디즈니 캐릭터 사슴, 밤비. 이쯤 되면 싸우자는 건가. 선생님은 이번엔 조금 더 강하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은혜는 잘 그리고 싶어 자신의 최선을 다할 뿐 불만은 없었더랬다. 원하는 것을 확실히 하고, 그것을 추진할 때 폭주기관차 같았다.
수채화를 시작하고 처음 선생님이 권해주신 물감은 미션골드 였다. 입시생들이 사용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물감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붓에 물감을 조금만 발라도 선명하고 발색이 아주 좋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니 수채화 용품들도 귀여운 것이 많다. 인스타 감성이랄까. 내가 알던 팔레트가 아니라 한 칸씩 나누어진 통에 물감을 담아 팔레트로 쓴다. 도자기 팔레트는 깜찍한 미니 사이즈이고 붓을 잠시 놓아두는 받침대도 귀엽다. 이런 용품들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사기도 했다.
소심하게, 그렇지만 조금씩 용기 내어 다른 것들도 사 보기 시작했다. 캔손으로 시작했던 스케치북은, 아르쉬지로 옮겨갔다. 만 원짜리 종이를 쓰다가 십만 원짜리로 점프.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두께마다, 종이를 누른 정도에 따라 어떤 느낌이 날지 너무 궁금해 돈이 날 때마다 종이를 사모으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종이가 뭔지 이것저것 그려 보며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갔다.
펄이 잔뜩 섞인 이탈리아 물감도, 유명한 프랑스 물감도 잔뜩 별러 샀다. 별이 내리는 밤하늘, 그 별빛을 머금은 폭포를 몇 시간씩 몰두해 그렸다.
펄물감을 보여드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 화실에 가져갔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전공생은 이런 거 안 써요.
은혜는 태초부터 다른 사람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살짝 쭈그러든 나와 달리 은혜는 미션골드 물감을 사 오라고 하면 홀베인 풀세트를 사 와버리는 극강 멘털의 소유자였다. 선생님은, 자신이 생각한 색과 결이 살짝 다른 물감의 색에 혼란스러워하셨다. 수업을 이끌고 갈 때의 방향성이, 나와 은혜의 돌발 구입과 새로운 시도로 인해 점점 혼돈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알게 되었다.
전공생이면, 이미 그림을 잘 그리면,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재료를 시도해 볼 필요가 없다. 이미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힘들 수 있는 것이었다. 시도를 안 할 뿐 아니라 그 시도를 하는 사람조차 배척하기도 한다. 전공생은 그런 거 안 해, 와 같은 자세로.
어느 날 은혜와 이야기하다 알게 되었는데, 은혜는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달리기를 하고 주말 내내 사이클 동호회에서 사이클을 연습했다고 했다. 그러니, 마라톤 10킬로 정도는 가뿐하게 달리고 오는 사람이었다.
마라톤 달리기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도대체 저걸 왜 하는가 하며 티브이에서나 보던 마라톤을, 그녀는 얼마나 재미있는 이벤트인지 설명하며, 한번 도전해 보라고 했다. 넌 미쳤어! 하면서 마라톤 일정을 검색하는 나. 그렇게 마라톤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은혜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10킬로 마라톤을 하기 위해 매일 일정 시간 연습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나를 알게 되었다. 불과 2분 구간부터 헐떡거리게 되고 멈추지 않고 뛰다 보면 10분쯤 뒤부터는 호흡에 안정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또 고비가 오고 그 고비를 넘기는 날도, 못 넘기는 날도 있었다. 오롯이 혼자, 나의 컨디션에 집중한 채로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목표를 이렇게 쪼개봐야겠다던가, 다음번에는 이 구간에서 쉬지 말고 조금 더 뛰어보면 다를까, 라든가. 그 시도를 자꾸 쌓아간다. 내 몸을 알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한계에 맞닥뜨리고 넘어설 때만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한계를 매일 조금씩 넘으며 단단해지고, 내가 원하는 것이 조금씩 더 명확해져 갔다.
철인 3종경기를 완주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갔을까. 숨이 턱끝까지 찬 채로 자신의 한계를 끝없이 넘어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 자신을 알아갔을까.
그 과정을 겪은 사람이기에, 은혜는 남의 은근한 무시와 조롱, 자신의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권위와 나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별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그것에 긍정적인 눈으로 집중하는 자세. 그녀의 자신감은 거기서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마라톤을 하고 나서 알았다.
그 후 1년 동안, 나는 다섯 번의 10킬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아주 느린 속도일지라도 한 번도 걷지 않고 뛰는 것을 목표로 했고, 끝날 때마다 머리끝이 뾰족해지는 기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