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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Apr 11. 2023

타이밍

2018, 새로운 세상

아무래도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곳은 피서지 주차장이 아닐까. 빨라서도 안되고 늦어서도 안된다. 내가 지나가자마자 빠지는 차가 있다. 부랴부랴 한바퀴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온들, 그 자리는 이미 남의 차지다.


사실 이런 일은 살면서 수도 없이 겪게 된다.

너무 빨라서도 안되고 너무 늦어서도 안된다.

딱 맞는 타이밍에 딱 맞는 인연을 만나야, 우리는 어떤 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




수채화에 흠뻑 빠져 1년 남짓을 지냈다.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그림을 깊이감 있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계속 올리다 보니, 내 인스타그램에는 무작위로 그림 작가들의 페이지가 추천되곤 했다. 전 세계 사람들의 그림을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축복받은 세상이다. 그러다 보게 된 이 작품. 하늘하늘 나풀나풀한 물감의 흐름은 나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아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휴대폰을 두 손으로 붙든 채 정신이 몽롱해지며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것을 느꼈다.


재료가 뭔지,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이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결국 나도 크고 멋진, 가슴 뛰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 그림 아래 붙은 해시태그 #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찾은 글자, #RESIN.

이게 재료인가 보다, 하며 무작정 레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한 명도 검색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뒤지다가 이 재료의 브랜드 하나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쓰고 있는 재료의 상표. 이 작은 단서 하나를 얻기 위해 며칠 밤낮으로 수십 개, 수백 개의 외국 영상을 봤더랬다. 제발 어떤 단서라도 나와주길 얼마나 기도하며 찾아 헤맸던 가. 보통의 아티스트들이 꼭꼭 숨기는 자신의 기술과 재료를 나누어주는 몇몇 아티스트들에게, 이 먼 곳에서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가슴 깊이 그들의 행복과 축복을 기도했다.

신기하게도, 네이버 검색으로 내가 본 상표의 제품이 나왔다. 가슴이 뛰었다.


같이 화실에 다니던 친구 '은혜'와 화실 앞 빵집에서 만나, 이 작품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 이거 해보려고."

"언니, 이게 뭐예요?"

"이거, 레진이라는 재료래.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는 곳이 있더라고. 봐봐, 바로 이거야."


은혜는 내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언니, 지금 소름 돋았어요. 이거 수입하는 사람, 저랑 아주 가까운 친구예요. 친구 남편이 얼마 전에 이 레진을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작품을 만들어야 홍보도 하고 판매도 할 거 아니에요? 제가 그림 그리고 있으니까, 친구가 몇 번이나 와서 이 제품으로 작품 좀 만들어 보라고 전화가 왔었어요.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알았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었어요."

"내일 가자."


나란 사람, 즉흥적이기 때문에 앞뒤 계산이 없다. 좋은 말로는 추진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은혜는 레진 수입하는 친구에게 바로 연락했고, 우리는 다음날 바로 한 시간 넘는 거리의 레진 수입 회사로 쫓아갔다.


이 절묘한 타이밍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주의 선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두 달만 빨리 이 제품을 알았어도 오히려 수입 전이라서 검색이 안되어 구입을 못했을 것이다. 하필 몇 달 전 새로 만난 친구가 은혜였고, 열두 살 띠똥갑도 넘는 나이 차에도 각별한 친구로 지냈다. 하필 그날 은혜에게 이 제품 사진을 보여줬고, 은혜의 친구인 수입회사 친구가 거꾸로 은혜에게 와주길 요청하는 중이었다.

이 모든 일 중 단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금 같은 레진 아티스트로서 살 수 있었을까. 끼워 맞추라고 해도 힘들 그 일이, 모든 시간을 맞추어 내게 왔다. 운명, 같은 단어가 아니고서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랴부랴 찾아간 레진 수입 회사에서, 레진의 사용법과 주의사항, 특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레진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내가 본 위의 사진은 <알콜 잉크>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레진은 그 위에 투명하게 코팅을 한 용도로 쓰였다는 것이다. 무늬를 만든 것이 레진이 아니었다니. 이곳에서 또 새로운 단서를 얻었다. 실행하는 자에게 우주는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선물을 주시는 것이었다.


2018년 8월, 내 그림 인생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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