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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Mar 28. 2023

내맡기는 삶

될 일은 된다

<될 일은 된다> 책을 추천받아 읽었다. 정말 놀라운 책이다. 내려놓으면 다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려할 때, 이 보석 같은 책을 만났다. 내려놓으라는 것은 포기나 무력함을 뜻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 이끄는 대로 저항하지 말고 따라가 보라는 이 내맡기기 실험을, 한 사람의 실제 삶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에고 말고 세상이 안내하는 길을 걸어보라는 뜻이었다.


화실에 다닌 지 6개월 차쯤 되었을 때까지 수동적으로 그림을 배우기만 하다가, 처음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밤 혼자 그린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친구로부터 수채화 원데이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누가 누굴 가르쳐?'

마음이 지껄였다.

하긴, 아직 화실에 발은 걸쳐둔 상태였고 이제 수채화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을 뿐이다. 전공자도 아니고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다. 그런 내가 수채화를 돈 받고 가르치는 게 가능한가? 사회의 통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를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었다.


"글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아니, 안 할래!'라며 포기해 버리는 것보다 훨씬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 이면에는 '이게 우주의 신호라면 좀 더 확실한 신호를 주세요.' 하는 마음이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사람들을 모을 테니, 와서 한 번만 수업해 달라고 했다.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틀어막고 신호를 기다렸다.


이 수업을 의뢰받은 지 일주일도 안되어, 전혀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친구가 자신의 공간에서 취미 클래스를 모으고 있는데 수채화 클래스도 열고 싶어 한다고, 강사를 찾는데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왜 나를 추천했냐는 말에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전공자한테 배우고 싶은 게 아니야. 오히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는지가 궁금해. 우리는 친절하게 그림을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거든."

전공자가 아닌 내가 필요한 이유를 듣자 안도감이 들었다.

일산에서 부천까지 갈 수 있을까? 다녀오는 게 시간 대비해서 돈을 번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 이런 생각이 마구 일어났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우주가 내게 확실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내게, 우주는 다음 스텝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두 군데 수업을 다 수락했다.


 첫 원데이 수업에서 그린 것은 오로라가 펼쳐진 하늘이었다. 전날 밤을 새우며 샘플을 만들었다. 재료를 한 아름 들고 가 수채화 물감의 번짐을 이용하는 법을 알려 드렸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내놓았고, 오시는 분들은 감사하게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해 주시고 행복해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두 시간 만에 꽤 큰돈을 벌었다.


자, 이제 부천에서의 수업을 할 차례였다. 막 출발을 하려는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세 살배기 아이가 아플 때, 엄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엄마의 아킬레스건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날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건드려진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너, 계속 이 길 갈 거야? 우주가 묻는다. 원래대로 살아, 그게 가장 편할걸?

2,3년 전의 나라면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며 수업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험을 뚫고 나가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 내. 고. 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기필코 이 난관을 넘어 다음 세계로 옮겨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부천으로 출발했다.

글 쓰며 만난 사람들이, 응원차 수업에 참여해 주었다. 그 공간의 호스트와, 그분의 친구들도 오셔서 수채화 수업을 들어주셨다. 그날 오셨던 분들이 수업을 좋아해 주셨고, 그 수업은 정규반이 되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나는 매주, 편도 한 시간 넘는 거리의 그 공간에서 수채화 수업을 했다.


그때쯤, 가장 고민거리인 것이 '나도 한 장만 그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좋아서 그려 선물하기 시작한 그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이 '나도 한 장만'이라며 줄을 서기 시작하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절하지도 못하고 숙제처럼 다음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숨이 턱 막혔다.


온당한 수업료를 받고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쉽게 하던 '나도 한 장만'부탁이 없어졌다. 내 수채화가 취미에서 직업으로 전환되었다는 표시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그때쯤, 완전히 다음 단계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저항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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