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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Mar 24. 2023

자신의 것,

그림 그리며 만난 '안 솔' 작가님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말했다.

"저는 학교 선생님들의 특징을 잘 잡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그 그림을 보면서 친구들이랑 웃곤 했어요. 그런 식으로, 저는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그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그림'이었다.


입시 학원에서 전공을 위한 그림을 그릴 때에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에게 그림은 '명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주류'로 살 때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가장 좋은 학교를 거쳐야 했다.

'그림을 좋아하니까 화가가 되고 싶다' 보다, '화가로서 '인정받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니, 연필을 쥐고 사는 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단 한 번도 책 귀퉁이에 들어갈 작은 그림조차 끄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 솔 작가님은 파리로 그림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그림 몇 장을 엽서로 만들어 가 파리에서 판매했다고 했다.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똑똑할 수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파리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손그림 엽서를 구매해 갔다고 했다. 그 후, 작가님은 제주를 여행하며 제주를 그려 <열두 달 제주>라는 다이어리 북을 출간했다. 배우지 않고 터득한 본인만의 기법은 자신의 색이 되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어떤 분이 '이랑'이라는 작가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림이 예뻐서 그분이 만드는 굿즈를 모조리 사고 있다고 했다. 그분의 계정에 들어가 보고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계절에 맞는 꽃이나 열매를 그려, 그것을 마스킹테이프로, 휴대폰 케이스로, 스티커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개인이 판매하다 보니 몇 개만 만들어 선착순으로 판매했고, 판매 글을 올리면 금방 소진되었다. 많이 팔리면 더 많이 만들 만도 하건만, 그녀는 아주 똑똑하게, 재고를 남기지 않는 쪽으로 운영하는 듯했다. 화면 가득 채운 정통 수채화가 아니어도 사랑받는 작가로 돈을 벌며 살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인스타에서 알게 된 또 한 분은 매일같이 컵 하나를 그렸다. 아무 무늬가 없는 단순한 형태의 컵이었다. 어떤 날은 주황색이었고 어떤 날은 초록색이었다. 컵에는 늘 커피가 가득했다. 이 분의 그림은 그림자가 생략되어 있었다. 어디서 빛이 들어오니 이쪽이 어두워져야 하고, 커피 컵이 둥그니까 이런 효과를 넣으면 둥글게 보여,라는 공식 따위는 파괴된, 그냥 오늘 칠하고 싶은 색이 칠해진 그림이었다. 그 작가는, 커피와 수채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별 이유 없이 매일 똑같은 커피 컵을 그린다고 했다. 매일의 루틴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이 그림은, 신기하게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묵직한 색깔이 주는 효과였을까.

그러다 어느 날, 새로운 종이를 샀다고 했다. 똑같은 컵이 반복되기에 종이의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감도 간간이 소개되었다. 미국 물감, 영국 물감, 프랑스 물감, 이탈리아 물감... 튜브 하나에 2만 원에 육박하는 재료들을, 나도 몇 개씩 따라 사보았다. 같은 빨강이어도 물감 회사마다 결이 달랐고, 같은 회사의 물감으로 그려도 종이마다 번짐의 정도나 거친 정도가 달랐다. 물감 튜브를 처음으로 열 때, 너무 신나서 가슴이 벌렁벌렁 떨렸다. 이 분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이 작가님은 취미로 시작해 컵 그림을 그리다가 사람들이 재료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아지자 재료를 하나씩 판매하기 시작했다. 매일 커피 머그 한 잔을 그릴 때에는 일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인스타그램 친구로 지내면서, 이렇게 일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생이 되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 샘플을 보며 따라 그리는 것이었는데 월화수목금 10년의 세월이 쌓였으니 족히 몇백 장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많이 그리다 보니 나무마다 붓터치하는 법, 그림자 넣는 법, 색깔 쓰는 법을 나도 모르게 익혔다. 다른 곳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에서는 풍경화를 끝장 내고서야 정물 그림으로 진도를 옮겨갈 수 있었다. 정물 그림을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미술학원을 그만둔 나는, 두고두고 못내 아쉬웠다.


서른일곱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열넷에 그만둔 후 무려 23년 만이었다.

배우지 않은 것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스승 없이 그린다는 것이 두려웠다. 혼자 취미 생활로 그리는 것이건만 작은 그림 하나를 그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지우개 하나, 연필 한 자루, 작은 쿠키 하나... 작은 것을 하나씩 그려갔다.

그렇게 열 점 정도를 그렸을 때쯤,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두려움이 점점 잔잔해졌다. '안 배웠는데 어떻게 그리지?'에서 '이거 이렇게 그리면 되려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선생님께 의지해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사실이 아니었다니. 철석같이 믿던 세상이 뒤집어졌다.






어린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때 부모는 미술학원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아이의 재능을 말살시키고 싶지 않다. 계속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면 전공까지 하면 좋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미술 앞에 '입시'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특별함은 장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창의력이 넘치는 것은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틀을 뛰어넘는 미술은 좋은 성적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해진' 것을 특출 나게 잘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 안에 완성도 있게 그리기 위해 똑같은 것을 반복 연습한다.


이 과정 없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오히려, 자신의 색을 찾는 것에 너무 많은 배움이 해가 되었다는 분도 보았다.


비전공자로서, 그림을 어떻게 계속 그릴 수 있을지를 절망하며 찾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매일, 두려움을 이기고 무엇이라도 그리신다면, 너무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을지라도 알게 될 것이다. 당신만의 화풍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당신의 큰 무기임을.


혼자 그리며 화가를 꿈꾸시는 모든 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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