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개인전을 하는 중간에 다음 전시가 잡힌 것은 미란 언니의 소개 덕분이었다. 화실에서 같이 수강생으로 다니던 인연이었는데, 언니는 화실을 옮긴 후 여러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언니가 소개해 준 강화도 전시장이 예상치 않게 문을 닫게 되면서 전시가 불발되었던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언니 탓이 아니었건만 언니는 나를 위해 지인에게 부탁까지 하며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야, 내 작품을 많이 보여줄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갈 태세였고, 감사하게도 작품 사진을 보낸 후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시니어스 타워였다.
말로만 듣던 실버타운. 코로나로 그곳에 사는 분들 아니고는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제한된 분들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야 나도 들어올 수 없을 곳이었다. 세상에, 복도 끝에서부터 연한 베이지색의 대리석으로 연결된 환한 입구 정면으로, 고급스러운 전시장이 있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넓은 홀 중간중간에 놓인 테이블에 입주민 어르신들이 띄엄띄엄 앉아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고 계셨다.
높은 천고의 통유리창 안쪽으로 햇빛이 밝게 비쳐 들고 있었고 직원분이 나와서 나를 맞아 주셨다.
이번 전시도 설치하는 날 아침까지 밤을 새 신작 한 점을 더 완성했다. 좋은 곳에 초대해 주신 만큼, 새로운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완성된 두 번째 100호 그림도 물이 있는 풍경이었다. 공들여 모래 재질의 질감을 넣은 돌기둥과 나무들을 그려 넣었다. 수영장에 몸을 누이고 둥둥 떠있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아름다운 공간에 내 작품이 모두 걸리고 '초청전'이라 적힌 현수막을 보자,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초청전이라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어디서라도 전시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 꿈이었건만.
이 전시를 보신 다른 지점의 센터의 본부장님 초대로 다음 달 자리를 옮겨 다른 지점에서 초청전이 열렸고, 그 이후에도 시니어스 타워 각 지점을 돌며 2022년 한 해에만 총 네 번의 전시가 있었다. 레진이라는 재료가 신기하신지, 작품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하여 그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런 행보를 보던 조숙연 작가님이 같이 전시를 해보겠냐며 아트페어를 제안해 주셨다. 처음으로 아트페어라는 곳에 참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코로나를 지나며 사람들이 그림 투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TV에서도 유명 작가 그림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네, 하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유명 작가들 그림을 사려고 아트페어 첫날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고.
그림을 직접 보고 사려는 사람들과 그림을 판매하는 갤러리들이 한 자리에서 모일 수 있는 곳이 아트페어다. 보통은 목, 금, 토, 일 4일간 열린다. 짧은 아트페어 기간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모두 당첨. 띠로리~ 우리 집 어린이와 부모님들을 찾아뵙고 나니 마지막 하루만 아트페어장에 갈 수 있었다. 만들면서 어떤 생각이었는지,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재료는 뭔지 설명을 들려주자, 아이가 엄마를 조르고 옆 부스 작가님이 문 닫기 전에 뛰어왔다며 작품을 구입해 가셨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마지막 두세 시간 동안 작은 소품 다섯 점이 판매되었다.
3월 이후로 전시가 연이어 잡히기 시작하자, 쉬지 않고 연말까지 전시 일정으로 채워졌다. 이게 무슨 일이람.
시니어스타워 전시를 시작한 이후에 뭔가 무드가 바뀌었다. 꿈꾸던 것들이 갑자기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전시 일정이 다 채워져 있는데, 또 전시를 문의하는 연락이 왔다. 그러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모두 하겠다고 했다. 어떤 달 전시는 개인전이 세 군데 동시에 예약되기도 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들에 더해, 몇 달 밤을 꼬박 새우며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놀랍게도, 전시할 때마다 그 공간에 꼭 맞는 개수와 사이즈의 작품이 채워졌다.
이 놀라운 순간들을 맞이하며, 압축되었던 시간이 발화되고 있다고 느꼈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며 재료를 파헤치고 작품을 실험하던 시간은 단단하게 쌓이고 있었고, 반면 그것을 분출하고 내놓을만한 전시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다. 취미라기엔 과한 돈을 쓰고 집안 살림은 반쯤 놓았으니 좋은 소리를 들을 리 만무하다. 친구들과 만날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잠을 잤고 이런저런 핀잔과 오해를 받았다. 뚜렷이 내놓을 결과 없이 쌓아가는 시간에는 이런저런 눈길을 꿀꺽 삼키며 견디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꾹꾹 눌러 담은 몇 년의 밀도가 발화되기 시작하자, 응축된 힘만큼 강력하게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었다.
계속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만난 사람 모두가 작업에 도움을 주고자 손을 보태며 축복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쁜 마음으로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 나를 맡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