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와서 방 한 칸을 오롯이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행복했다. 언제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육아의 세계에서 작업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었다. 집안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며 도피처였다. 매일 밤 그곳으로 향했다.
작업방이 생기면서 책상 여러 개를 놓고 한 번에 많은 작품을 늘어놓고 만들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지. 그때는 몰랐는데 작품 개수는 책상 개수에, 작품의 크기는 책상 크기에 비례했다. 그곳이 내 작품의 우주였다.
작업방이 생기며 우주가 확장되었다. 큰 이젤을 하나 들여놓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림을 그리다가 처음으로 책상 크기를 넘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돌아보면, 작품 크기를 늘릴 때마다 얼마나 겁이 나던지. 판넬과 캔버스를 사놓고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몇 달씩 벽에 세워놓았더랬다. 가로 20센티 그림을 그리다가 40센티로 늘릴 때, 두려움을 넘어서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다.
돈 공부를 하고 돈에 관련된 나의 내면을 살펴볼 때 돈그릇이 찢어진다고 한다. 변화의 순간,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릇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림도 같은 경로를 지나가는 듯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림의 크기를 키울 때마다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가, 결심하고 마주하고 결국 그려낼 때마다 그림이 성장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나는 그 고통과 두려움을 마주했던 것일까.
친구가 교습소를 연다고 해서, 그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기구 작품을 만들었다. 처음 만드는 사이즈였다. 잉크로 배경을 만들고 콜라주 작업으로 작은 조각 하나하나를 붙인 후 몇 번의 레진 작업을 하였다. 사이즈가 큰 만큼 레진을 많이 부어, 편평하게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작품 중간에 보물 찾기처럼 친구의 학원 이름도 넣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에게 얘기해 주니 기뻐했다. 기분 좋은 도전이었다.
보통 미술 작품들은 <몇 호> 짜리인가로 크기를 가늠한다.
책상에서 만들 때 A4사이즈보다 살짝 큰 6호 작품을 선호했다. 6호를 만들다가 10호 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 그 캔버스가 너무나 거대해 보였다. 처음 10호를 완성했을 때가 기억난다. 이건 아직 내 실력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는 불편함. 어쩌다 큰맘 먹고 한 것이 성공했을 뿐, 두 번째 10호는 실패할지도 몰라. 10호를 다섯 개쯤 그리고 나면 알게 된다. 이제 10호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10호도 크다.
그런데 나는 100호를 그리고 싶었다. 딱히 이유도 없는 상징적인 숫자인데, 화가라면 그 정도는 그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언젠가는 그곳에 도달하고 싶었다.
마음은 달려가고 있더라도 10호에서 20호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15호 그림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리다 쉬다를 반복했다. 15호를 다섯 개쯤 그려, 익숙해 지는 데까지 또 몇 달이 걸렸다.
이렇게 사이즈를 늘려 30호짜리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때, 30호 세 점을 연작으로 만들어 100호에 가깝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업방을 다 치우고 별의별 수를 다 써도, 30호 캔버스 세 개를 이어서 놓을 수가 없었다. 연작이라면 연결을 시켜야 하는데, 각각 다른 벽을 사용하지 않고 한 번에 연결을 할 공간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30호 두 점 연작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만들고 나니 더더욱, 구도상 3점이어야 완벽했던 건데, 하며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쯤 되면 20호 3점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으련만, 나는 내 우주가 너무 좁다고 느꼈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넓은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마자, 우주는 내게 적합한 환경을 찾기 시작했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코로나 시기에 나라에서 만든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놓은 것이, 집 근처 상가 한 칸의 보증금 액수인 것을 알았을 때, 겁도 없이 그곳을 덜컥 계약하고 통장에 받아놨던 돈을 모두 밀어 넣었다.
지금 되돌아보아도 무모하다. 벌이도 없이 취미생활하는 사람이,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덜컥 15평짜리 낡아빠진 상가를 덜컥 계약해 버린 것이. (남편은 오늘도 도를 닦습니다.)
사놓고 주방 벽에 1년 넘게 세워두었던 빈 캔버스를 옮겨왔다. 꿈꾸던 100호였건만 손댈 엄두도 못 내던 것.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도 무섭긴 매한가지였다. 결국,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도전했다. 기필코 100호짜리 그림을 걸겠다는 결의로 시작해 며칠 밤을 꼬박 새우고 완성을 했다. 기쁘고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공간의 확장은 또다시 나의 그림 그릇을 키웠다. 아니, 그릇을 찢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도전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만큼 큰 선물을 받았다.
얼마 전, 친구의 교습소에 들렀다. 한참만이었다.
칠판 가까이의 기둥에 내가 선물한 그림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걸려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았네.
5년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작은 테이블에서 시작된 그림은 5년 만에 이 작업실 공간마저 모자랄 정도로 커지고 많아졌다. 이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남편님아, 준비하세요.)
작년 말부터 천고가 높은 창고가 나온 곳이 있을까 자꾸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리게 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의 그림 세계가 공간과 함께 또 한 번 커질 것에 미리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