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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Jun 06. 2023

2022년 8월,

네 개의 전시-1

2022년 8월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성동구 문화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소월아트홀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데, 초대 개인전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8월 예정이라고 했다.


8월에는 이미 수원과 인사동 두 군데 전시가 잡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시니어스 타워에서 또 연락이 왔다. 전시 작가를 찾을 수 없어 그러는데, 작품을 좀 걸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소월아트홀 개인전을 추가할 수 있냐는 연락.

제가 뭐라고 했게요?

예상하시듯, 그렇습니다.

'모두 예스'

작품이 없어도, 일정이 겹쳐도, 임박해도 모두 예스!





시작을 하는 방법을 몰라 애태우던 게 불과 1년 전이었는데, 이렇게 전시 기회가 와르르 쏟아진다니 꿈같지 않을 수가. 그러니 작품 수가 당장 모자라건 돈이 얼마건 따질 것도 없이 감사합니다, 하며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당장 한 달 남짓 후 전시 시작이었는데, 내게는 그만큼 충분한 양의 작품이 없었다.

6월 말부터 작업실에서 밤샘 작업을 시작했다. 열 살 아들과 일곱살 딸은 밤에 내가 집을 나서 작업실로 갈 때마다 물었다. 엄마, 엄마랑 자고 싶은데... 언제 올거야?

너 학교 갈 때.


7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엄마 없이 아빠와 잠을 잤다. 아들은 매일 밤마다 도돌이표처럼 "엄마랑 자고 싶은데..." 라며 말끝을 흐렸고 아침에 학교 보낼 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집에 들어오면, 세상 모르고 곤하게 자는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을 시간도 없이 깨워 학교에 보내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밤낮이 바뀌고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도 내려놓고 밤을 새며 작품을 만들었다. 만드는 동안은 시간이 가는 줄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했다. 전시 날짜는 다가오고 압박감도 조여오고 시간은 흘렀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워라밸도 없고 가정과 일의 균형도 없었다.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만 미친 사람처럼 그려댔다.


남편이라고 왜 불만이 없었겠는가. 나 간다~ 하면서 내가 신발을 신을 때면 남편은 대답 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나를 알았고, 그가 표현하는 최대한의 불만이 그쯤이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챙겨 재우고 집을 둘러보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 따위, 개나 줘버리고 부인은 또 밤샘 작업을 하겠다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걸 참아야할까, 남편은 차마 말로 꺼내지는 못하고 속을 썩였으리라.

이런 무언의 항의에 눈을 질끈 감고, 그냥 모른척했다. 가정에서의 내 역할을 너무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하고 헤롱대며 지내는 낮 시간도,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수원 만석 전시관

조숙연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이 곳에서 단체전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그 중 몇 명은 부스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또 덜컥 손을 들었겠쥬? 부스라 하니 아트페어처럼 3미터쯤 내가 쓸 수 있으려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더랬는데, 알고 보니 내가 사용할 길이가 20미터쯤 된다고 해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20미터라 함은, 몇달전 내가 단독 개인전 한 갤러리보다 더 큰 규모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흙 작업을 레진과 접목했다. 작업실 바닥 한가득 온갖 판넬이 누워 있었다.

자연에서 오롯이 가져온 흙 위에 레진 작업을 하니 세상에, 너무 아름다웠다. 여러 겹의 작업은 작품에 점점 깊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인사동, 이즈갤러리

만석 전시관에서 철수하는 날, 인사동에 그림을 설치했다. 아는 작가님들과의 4인전이었다. 이곳을 예약할 때에야, 인사동의 일주일 전시장 대여료가 몇백만원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마저도 성수기는 이미 이듬해까지 예약이 끝나버렸다. 비수기 할인가가 뜨자마자 조숙연 선생님이 잽싸게 낚아챈 전시장을 넷이 나눈 덕에 나도 인사동에 입성했다.

숙연 선생님은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죠'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일렁였다.

설치하는 날, 전시장 중간을 빙빙 돌며 말했다. '인사동에 입성하다니, 꿈같아요.'


큰 돈을 내고 참여하는 전시에서, 작은 작품들을 걸어 판매를 목적으로 할 것인가, 큰 작품을 걸어 '나'라는 작가를 알릴 것인가. 후자를 선택했다. 안팔려도 되고, 여기 '플로우지니'작가가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 앞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지켰다.

이 노력들이 쌓여 은행예금처럼 저축되어 있다가 어느날, 빵! 터지며 판매가 시작되는게 아닐까, 하는 기분좋은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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