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을 덜컥 계약했을 때, 월세를 어떻게 낼 지 대책이 없었다. 늘 그랬듯, 그냥 저질렀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월세 정도는 낼 수 있겠지. 레진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수학 과외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해서 일단 작업실을 얻어놓고 작품을 만들다 보니, 한 번에 집에서 작업하던 양의 몇 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업의 크기를 키우는 데에 한계를 느꼈다. 월세는 기본이고 전기세, 인터넷, 각종 보험 등 큰 고정비용이 생겨, 비싼 레진 가격까지 감당하기 힘들었다.
밤에 동네를 돌며 전단지를 붙였다. 그림 수업도 열고 수학 과외도 다시 시작했다. 그럼에도 월세를 내면 재료비가 모자라고 재료를 사면 월세가 모자랐다. 숨이 턱 막힐 때쯤, 소상공인에게 나라에서 코로나 지원금 명목으로 돈이 나왔다. 그러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캔버스와 물감을 사다 쟁였다.
나의 예술가 친구가, 내가 여러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 주었다. 그녀의 지도 아래 향수도 만들고 인센스스틱도 만들었다. 친구가 최고급 재료들만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그녀의 작업물들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레시피로 내가 만들기 키트를 제작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나는 동대문과 을지로를 뒤져 포장할 것들과 부수적인 재료들을 사서 인센스스틱 만들기 키트를 제작했다. 작업실에서 촬영을 하고 만드는 방법을 인쇄해,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많은 학교나 회사, 공공기관에서 주문을 해주셨다. 코로나 시기여서, 오프라인 수업보다 키트 수업을 훨씬 선호했고 나는 그 덕에 재료비와 월세를 처리해 나가며 지낼 수 있었다. 코앞까지 재난이 닥쳤다고 느낄 때마다 나를 구하는 손길이 있었다.
먹고사는데 급급해 수업을 더 늘여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나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수강생분이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려야지요, 선생님.
당장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 작품들이 모두 미래의 재산이에요.
제가 어떻게든 후원해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그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목소리. 돌아보니 늘 응원해 주는 손길이 있었다. 수학 과외를 정리하고 '그림으로만 먹고살겠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던 날, 그런 나 자신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토닥였더랬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공간'이었다. 공간이 생기자 그에 맞게 작품의 스케일이 커지고 사람의 그릇도 커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더 성장하고 싶고, 더욱 큰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다.
먹고사니즘으로 벌여놓은 일들을 하나씩 수습하고, 작품 활동으로만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