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그림 작가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솔비'가 거론된다. 아마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중 한 명 이어서일 것이다. 그녀는 왜 전시를 열 때마다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을까.
비싸게 팔려서.가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비전공 자면서(=제도권에 들어오지 않았으면서) 그림으로 돈을 우리보다 많이 버는 꼴을 안 보겠다는 기득권자들의 질투. 자신들도 질투인 걸 모른 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비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내면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 아닐까. 그 통로를 열정으로 걷고 있는 그녀의 방식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비난하기보다는, 같이 가는 동료로서 인정해 줄 때 더 성숙한 예술계가 되지 않을까.
최근 전현무가 티비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그림을 친구에게 선물한 것을 봤다. 어쩜 그렇게 특징을 잘 잡았는지. 그 사람 안에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꺼내어지기 시작하고, 그 사실을 본인이 알아차리고 매일 그린다면, 그에게 작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엄마가 미술학원을 끊어 절망하였던 이유는, 미대를 나오지 않고서 작가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임을, 어린 나이에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내 주위에는 전공하지 않고 그림 작업을 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있다. 내가 만난 분들 중, 그림을 배우지 않고 성인이 되어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짙은 그림체가 있다. 취미로 시작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다가 이웃이 생기고 팬이 생긴다. 작품들은 굿즈 등의 상품으로, 또는 책으로, 다이어리로 만들어졌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리기도 했다. 어설퍼 보이는 그림이라도, 사람들은 거기서 따뜻함을 보고 그의 그림을 사랑해 주었다.
인친(인스타 친구)으로 지내며 서로를 응원하던 작가님들이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은, 내게도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비전공자여도 얼마든 사랑받는 작가가 될 수 있음을 앞서 보여주는 희망이었다.
한 해 동안 많은 전시를 하며 많은 작가님들과 갤러리 관계자들을 만났다. 아웃사이더로 혼자 작업하다가 제도권에 발 담근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미대를 가야 하나.
한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이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비슷하게 작업하고 전시하는 미대 출신 작가만큼 호당 가격이 책정되지 않더라. 더 알려지기 전에 어디라도 미술 대학을 나와라. 그래야 가격 상한선이 없어질 것이다, 라 하셨다.
그 말은 일부 사실이었다.
작품에 쓰인 재료나 기법에 따라 작품의 가격이 다르게 책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이제 갤러리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미술 시장에서의 갤러리 입장을 듣게 되었다. 내가 매긴 가격이 재료의 쓰임과는 별개로 '비전공자'인 것에 비해 '비싸다'고 했다. 유명 대학원을 나온 경우, 그 정도 가격이 책정된다는 것이었다.
미술 현장에 가장 부대끼는 사람의 이야기이니, 이 정보만이 진실일 것 같았다.
대학원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으므로, 지금이 진학하기 가장 좋은 때일수도 있었다.
대학원에 가면? -학부생이 아닌 것은 우리나라에서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럼 편입이나 학사편입을 하면? - 편입생은 영원히 같은 학부생으로 녹아들 수 없다.
신입생으로 입학하자니 - 지금 이 나이에... 정녕 수능 정시+실기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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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성이 되기는 글렀다.
나는 새로운 재료에 관심이 많다. 어떤 타입을 찾아 반복적으로 같은 유형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색을 나타내기에 유리함을 알지만, 새로운 재료를 찾고 접목하는 것이 재미있다. 아직 내 것을 찾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소품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액자로서의 작품 가격과는 편차가 크지만, 쟁반이나 테이블, 심지어 자석을 만들고도 액자 작품만큼이나 흡족한 기분이 든다. 이런 작품들을 가지고 플리마켓에 간다.
레진 수업을 하고 그림 수업을 한다.
도자기를 아크릴화와 접목하면 어떨까.
흙을 도자기에 더 바르면 어떨까.
레진을 흙과 접목할 때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하고 예쁠까.
어떤 새로운 재료를 내 작품들에 얹을 수 있을까.
세심하게 한올씩 그리고도 싶고
동시에 잉크를 쏟아붓는 작품을 하고 싶고
큰 붓으로 큰 획의 그림들을 그리고도 싶다.
이 모든 작업 형태가, 갤러리에서 그다지 반기지 않을 행로이다. 너무 많은 일을 벌리며 하는 것이 일반적인 작가의 길이 아닐 수 있으니까.
그들과 일해야 하는 시장 속에서, 영원히 기득권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아득함을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에 번쩍, 불이 켜지는 것을 느꼈다.
내 그림의 시장을 한국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내 그림의 시장을 미국으로, 유럽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오히려 그들은 편견 없이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자유의 날개를 단 기분이 들었다.
제도권의 속박에서 벗어나 깜찍한 변종이 되겠다!
판에 들어가려 애쓰기보다, 판을 흔들어놓겠다.
정통의 세계와 애초에 다른 길을 걷겠다.
영어 공부를 해야겠군, 하는 생각이 자석처럼 따라왔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활동할 수 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수학과외를 하다가 불과 5,6년 만에 그림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처럼, 깊은 집중은 빠른 시간 내에 나를 다른 세상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