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막학기 때 호기심에 시작한 출판사 인턴을 시작으로 '어쩌다 보니' 편집, 출판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직무도 해봤지만, 내게는 이게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물론 힘든 업계다 보니(교육+출판) 친구들 앞에서 하소연도 많이 한다. 한참 듣던 친구들이 '그래도 우리다운 일을 하고 있네.'라고 하면 또 그런가? 해서 팔랑거리면서 행복 회로를 켜본다.
'그래, 맞아! 책 좋아하지, 글 쓰는 거 좋아하지, 애들 좋아하지, 그림 좋아하지. 그걸 돈 받으면서 맨날 하고 있잖아! 심지어 중국어 전공까지 살리고 있어!' 하면서도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현자타임이 온다. 아무튼 그래도 이렇게 집에 와서 또 독립출판하겠다고 앉아있는 거 보면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천직이다.
사실 책을 만드는 방법, 순서는 정말 간단하다. 컨셉과 기획만 좋으면 PPT로 뚝딱 페이지 기획을 끝낼 수 있다. 누추한 기획서를 디자이너느님이 뚝딱뚝딱 새 숨을 불어넣고, 저자는 뚝딱뚝딱 글을 써온다. 삽화가는 글을 더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쓱싹쓱싹 그려준다. 그걸 모아 조판에서 착착착 기획대로 내지 배열을 해준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는 여기 빼주세요. 이거 넣어주세요. 이건 왜 그렇죠? 좀더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드는 방향으로 채색부탁드립니다. (아무말대잔치) 라며 본의아니게 많은 분들 힘들게 하다가 눈 빠지게 검수하고, 인쇄업체에 최종 데이터를 넘기면 출력해서 짠! 입고하면 끝!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는 막강한 자본력과 시스템이 있다. 모르는 건 선배한테 물어보고, 틀리면 깨지고, 날밤을 새서라도 마감 일정을 맞추면 탄생하는 게 '회사 안에서의 책 만들기'였다. 하지만 독립출판은 기획에서 디자인, 조판, 검수, 입고, 마케팅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 일정 맞추라고 닦달하는 상사도 없고, 제발 써달라는 사람도 없다.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는 출판계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시장성이 없어보이는 난해한 콘티를 두고 주인공은 "제가 읽고 싶습니다. 팔리든 말든 알 바 아녜요!"를 외치고 상사도 쿨하게 오케이 한다. 역시나 현실판 회사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도 "제가 쓰고 싶습니다. 팔리든 말든 알바 아녜요!' 에서 시작한다. 왜냐면 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모든 일에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냥 재밌으니까 시작하고, 그게 잘되면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뭐,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일단 중쇄는 고사하고 초판이라도 찍어보자.
춥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되었다.
바로 '나와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