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고
SF 장르는 우리의 실제 문제를 가장 관념적이자 원형적으로 보여준다. 가상현실이라는 무대를 빌어 작가는 보다 자유롭게 인간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K. 딕은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을 꾸는가?>역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공상 과학의 힘을 빌어 던진다.
하지만 때로 굳이 SF를 찾지 않아도, 가상보다 더 기막힌 현실이 있다.
촌각을 다퉈야 했던 참사 현장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어색한 눈물 한 방울을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였던 모습이다. 그녀의 어떤 행동, 모습에도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앞에 두고도 그녀는 꼿꼿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심지어 유가족들이 내뱉는 슬픔의 통곡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끝내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올림머리만큼이나 차가웠다.
그렇게 채 피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되었다. 눈 앞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 그 자체였다. 산 생명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대다수의 우리는 깊은 슬픔과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광장으로 모였다.
소설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척도는 '감정 이입', 즉 공감 능력이다. 안드로이드를 퇴역시키는 일을 하는 릭 데카드는 고도화된 안드로이드를 구분 짓기 위해 보이트 캠프 검사 장비를 사용한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고통스러워할 때, 죽어갈 때의 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측정하는 검사인데 인간이라면 이 경우 타자가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여 감정이 요동치는 원리이다.
작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느꼈던 열기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연대였다.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은 언니의 편지에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의 영정사진만 보고도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슬픔들이 모여 지금의 작은 변화들을 일으켰다. 그렇게 요원해 보였던 배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미처 수습되지 못했던 시신들은 뒤늦게나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이자 우리가 지켜가야하는 가치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안드로이드였을까? 굳이 릭이 쓰던 검사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녀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안드로이드들이 있다. 타인의 슬픔에 눈물 흘리지 않는 자,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타인의 목숨까지 뺏는 것을 서슴치 않는 자들이 아직 우리 곁에 존재한다. SF 소설을 덮으면서 모골이 송연한 기분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2017.11 트레바리 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