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으로 '떡상'한 비를 보면서
현대에 이르러 종교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독교의 쇠퇴와 종교 세력의 약화는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여러 종교 중에서 기독교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데카르트 등의 철학자를 대표로 하여 근대철학이 등장한 이후,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철학이 발전했다. 이와 더불어 여러 천재적인 과학자들의 공로로 과학 또한 눈부신 발전을 이룬다. 이러한 흐름은 중세 기독교의 절대적인 권위를 흔들어놓기 시작한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종교는 더욱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진화론의 등장 및 니체, 마르크스와 같은 사상가들의 철학은 더 이상 종교가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이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그 자체로서의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근대 이전 중세 기독교는 지나치게 내세와 정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교리로 인해, 현실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또한 기독교의 교리의 핵심인 죄사함과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교리는 인간이 짊어져야 할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결국은 이에 저항하는 철학적 흐름을 만들었고, 과학 또한 현실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기독교에 대한 반발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와 같은 문제의 양상은 현대에도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고 있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 상황에서, 만약 종교라는 것이 소멸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종교 또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현대성에 부합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는 '고집부리지 말아야'한다. 지켜야 할 핵심 가치와 전통 등을 유지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모습, 특별히 권위주의적이고 타 종교 및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인 모습은 절대적으로 없어져야 한다. 특히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보여주는 배타적이고 권위주의적 태도는 스스로의 입지를 스스로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교리적 해석과 적용에도 마찬가지로 현대적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면 과학적 방법론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기독교 계층에서는 지나치게 비과학적이고 사실 부합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젊은 층이 기독교에서 이탈하게 하는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맹신을 통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꼴이라고나 할까. 이것을 사람들이 달갑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특별히 과학적 비상식의 영역에서는, 이것이 무조건 맞다고 억지 부리지 않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기적들,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기독교인 자신들의 믿음 안에서만 별도로 해석되는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잘 믿어지지는 않지만 예수의 말과 행적이 좋아 따르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시각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무조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억지이다. 무엇인가를 주장하려면 충분히 이해되고, 납득이 되도록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제발 억지 부리지 말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자. 그리고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고 말하자. 그게 낫다. 괜한 자존심 세우다가 큰 코 다친다. 최근 깡 열풍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비의 태도를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낀다.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도 솔직해지고 낮아지면 오히려 그것들이 긍정적 효과로 돌아오게 된다. 자천차왕 엄복동의 대실패와 깡러들의 댓글놀이를 보면서 비가 이 정도까지 '떡상'할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기독교계 리더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님 말씀도 잘 보면 솔직해지고 낮아지라고 하시지 않는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마태복음 23장 12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마태복음 18장 4절
차라리 부족한 부분을 내놓고 정면 돌파하는 편이 낫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그 정도 '깡'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조금의 태도의 변화가 많은 것들을 바꿀 때가 있다. 철 지난 것들은 이제 좀 청산하고, 변화를 직시하자. 젊은 층이 기독교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변화에 맞춰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논쟁의 중심에 서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은 점점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무엇보다 정말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종교가 되었으면 한다.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방황과 혼란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가 지쳐있는 삶 속에서 진정한 위로를 제공하고, 이 시대에 맞는 정신적 가치를 제시하며 그것을 현실적 삶에 실천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과학의 시대인 현대에도 종교가 자리 잡을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77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