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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클라쓰 Jun 22. 2020

존재의 고독과 불안(1)

홀로 있다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났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왔다 갔다 했으니 모태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를 향한 확실한 믿음, 구원의 확신 같은 것들은 마치 호흡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하는 삶의 일부였다.      


그러한 생각의 껍질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 무렵이었다. 아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넘어가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근원적인 물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분은 어떤 분인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왜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내 그 물음은 다시 덮어지곤 했다. 이 질문 자체가 너무도 불경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 중 한 가지는 존재의 불안, 고독 때문이 아닐까. 나의 존재 그 자체에 확신을 더해주는, 그 이유를 보장해주는 어떤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질문을 할 때마다 일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 불안감이 싫어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다. 이것과 맞서 싸워야 했다. 내가 살던 생각의 껍질을 깨지 않고서는 이제 살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걸까.      


고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니, 지나 보니 그것이 고독을 마주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던 어떤 존재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나의 선택의 책임을 위탁하는 어떤 존재로부터의 독립. 존재와 선택의 문제.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나.     


나름 독립적이었던 사람이라,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정신과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했던 어떤 존재로부터 스스로 홀로 서는 것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다른 고독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간다. 故君子愼其獨也 - 중용中庸      


‘독(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혼자라는 것, 단순히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닌 존재론적 고독의 상태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맞서 싸우는 것을 생각한다. ‘그럼에 불구하고’ 홀로 삼가며 살아가는 군자의 경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이 불안한 싸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혹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시간이 갈수록 더 깊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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