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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an 09. 2021

스물넷, 태국에 살기를 꿈꾸다

태국에 도착한 첫날, 눈을 뜨자마자 느낀 행복



  누군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를 물으면 나는 어김없이 "태국"을 외친다. 나는 스물넷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거니와 돈이 생기는 족족 다 써버리는 소비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떠날 비행기 값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치도록 태국이라는 나라로 떠나고 싶어 졌다. 다양한 영화나 소설을 접하며 남미와 동남아같이 더운 나라에 대한 환상이 생긴 탓이었다. 이 점은 예전에 투고한 에세이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런 나라들은 대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굉장히 섹시하고 이국적으로 비추어 진다. 나는 그런 끈적끈적한 감성에 환장하는 중2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꼭 남미나 동남아에 가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었던 나라가 바로 태국이었다. 아마 츠지 히토나리가 쓴 <안녕, 언젠가>라는 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숙소가 있던 총논시 역, 점심시간에는 회사원들로 식당이 붐비곤 했다



  그렇게 나는 태국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딛게 됐다. 도착 시간은 새벽 세 시. 어플로 사귄 태국 친구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다.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 도착시간은 새벽 세 시. 친구도 없이 혼자서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만 믿고 태국으로 떠난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언젠가는 이 무모함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무사히 살아 있지만.



콘 파이 하나 먹고 떠돌다 들어간 이름 모를 가게의 꾸웨이 띠여우



  친구가 자신의 회사 근처라며 추천해준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5일 간, 나는 태국의 열기와 에어컨 바람의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며 푹 쉴 수 있었다. 11시쯤 눈을 뜨면 혼자 정처 없이 걷다가 이름 모를 식당에서 팟타이 한 접시를 먹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가게에서 손짓 발짓으로 적어도 3인분은 될 법한 푸 팟퐁 커리를 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고 사장님과 깔깔 웃기도 했다. 국수 가게 아르바이트 중이던 태국 남학생의 "안녕하세요"라는 귀여운 한국어 인사에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어버린 적도 있었다.



태국의 클럽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매일 밤 마시던 술은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면 근처 재래시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탐색하거나 쇼핑센터를 구경하고 밤이 되면 새로 사귄 태국 친구들과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바에서 술을 마셨다. 우리는 처음 만난 주제에 서투른 영어로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기뻐해 하기도 했다. 활자 속이나 스크린에서 보았던 불같은 사랑은 없었지만 그 역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고 나는 점점 태국이라는 나라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새벽 두 시, 우버 택시를 불러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겨울이 올 때마다 이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태국 친구와 푹 빠져버린 호가든 로제, 미지근했던 태국의 마지막 밤



  그때, 택시 안에서 내뱉은 나의 짧은 생각은 이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한국에 돌아간 나는 어떻게 하면 겨울마다 태국에 가서 살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진지하게 인생의 목표로 잡은 것도 참 웃긴 일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나는 '태국 취업'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일 년 내내 태국에 살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 순간 태국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았던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나에게 짧은 인사를 던지고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 답은 '디지털 노마드'였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거기서부터 나는 내 인생을 새로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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