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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Feb 04. 2021

아직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이유

일본어만 붙잡고 살았던 4년 전



  외국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일본어는 나에게 있어 조금 다른 의미의 도구였다. 태국 여행을 다녀와 내 꿈을 "겨울마다 태국에 사는 것"으로 정하고 나서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일을 택해야 하지? 당시의 나는 먹고 살 기술 하나 없는 형편이었다. 처음에는 코딩이나 디자인 쪽을 생각해봤지만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분야로 느껴졌고 꾸준히 해나갈 자신도 흥미도 없었다. 그러다 생각한 게 바로 일본어 번역가라는 직업이었다.


  물론  가지 언어를 깊이 판다는 것이 힘들다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인정받아왔던   쓰는 실력밖에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해낼  있지 않을까,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 과거의 내가 지금도 정말 어이없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항상 식이다. 어쨌든 나는  년이 걸려도 상관없으니 번역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하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똑같으니까 조금이나마 흥미가 있는 분야에 덤벼보자는   생각이었다.  정말 재미없는 일은 꾸준히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즐겨 읽던 일본 소설들 덕에 일본어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기억하고 있는 말은 하지메마시떼, 스미마셍 정도. 맨땅에 헤딩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데까지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를 위해 잠깐 변명을 하자면 나는 자율신경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 기복도 심했고 우울증이 겹쳐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정신적으로만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소화불량이나 이명, 두통, 피부 트러블 등 온갖 신체적 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금 와서 이런 증상들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니다. 또 이렇게 태어나서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남들보다 느리게 걸으면서도 조바심 내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또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치료해주신 선생님께 추천받은 <그릿>이라는 책은 내게 끈질김과 의지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책을 종종 꺼내 읽으며 일본어 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지곤 했고 또 그렇게 지속한 일본어 공부는 큰 성취감이 되어 내게 다시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 이후로 자기 계발서를 무시하던 건방짐이 고쳐지기도 했다)



처음 탄 일본 버스에서, 모든 것인 낯설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



  다행히 일본어 공부를 하던 2년 동안 병원 치료를 병행하며 내 증상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내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의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공황장애 증상이 두어 번 나타나긴 했지만 그때마다 이제까지 잘 해왔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건강한 마음이 있어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그때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난 괜찮아질 수 없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현실을 원망하고 그 안에 잠겨있기보다는 햇빛이 쏟아지는 길을 하루에 한 시간씩 걷고 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느릿느릿 일본어를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아무도 챙겨주지 못했더 나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보듬기 시작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회복하려 하지 않고 나와 내가 하는 일들을 믿었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의 출발선에 서있다. 누군가는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서포트를 받으며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환경에서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난 때문에 부모에게 특별한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외롭고 치열한 삶 속에서 홀로 꿈을 향해 전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전자의 삶은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지해 줄 더 많은 것들을 내 손으로 만들어냈고 지금도 그 삶 속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출발선이 다르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을 포기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은 일본 생활, 내 블로그를 아직도 장식하고 있는 사진



  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한 도구로써 일본어를 선택했다.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남들이 겪기 힘든 일들도 수없이 경험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생긴 일들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 다양한 일을 제안받기도 했다. 지금은 번역가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일본어를 공부해 나갈 생각이다. 일본어는 소통,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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