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장 Jun 15. 2023

프로젝트 안암(安岩)

#27. 지속 가능성

 장사는 이윤이 남아야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걸 보란 듯이 실현하면 속물취급당한다.

그래서 장사는 보이지 않게 이윤이 남아야 한다.

그 갭을 소비자는 가성비로 표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볼거리로 가격을 보이지 않게 하거나, 알아챌 수 없는 가격방식을 사용해 기억에 남기지 않는다.

한번 결제에 30,000원인 것과 29,820인 것은 차이가 있다. 나중에 내가 얼마 냈는지 상대적으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 이유만으로 가격을 결정하진 않지만, 그런 이유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 가격결정 방식도 결국 사장의 성격이다. 나는 딱 떨어지는 성격이라 음식 값도 뚝하고 떨어진다.

물론 회사가 커질수록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이 달라지므로, 그땐 또 다른 소리할 게 분명하지만.


작년 말부터 물가가 요동을 친다. 사실 한 번도 멀쩡한 적 없던 물가(만만한 게 물가다.)는 소상공인이 된 후로 피부를 한 겹 씩 벗기듯 피부에 와닿는다. 사용하는 재료가 수십 가지면 매주 수십 번, 수백 개면 수백 번 와닿는다는 이야기다. 요즘 워낙 이슈라 물가인상 뉴스를 볼 때면 보이는 "물가인상 핑계로 가격 올라가는데, 물가 안정됐다고 가격 내려가는 거 본 적 없다."는 소상공인 도둑놈 취급하는 댓글. 대답할 도리도, 방법도 없다.

물가가 안정된다고 지출이 줄어든 적은 없는데, 어떻게 가격을 내리란 말인지..

최저임금은 계속 신경 쓰이는데, 막상 사장 임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뉴스를 봐도 임금인상 운운하면서 사장들이 돈 잘 버는 진 여백으로 비워둔다.

혹시 누가 그런 얘기 꺼내면 실력 없는 집들 문 닫아야 한다고 책임질 수 없는 말들 쉽게 하던데,

욕하는 사람 대부분이 노동자일 테고, 그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게 아님에도 섭섭함이 남는다.

내 인건비까지 녹이고 나면 시장에서 가격으로 경쟁을 붙일 수 없다.

아마 그게 시장이 선택할 수 있는 재료의 제약이 자꾸만 생기고, 비슷한 메뉴만 늘어나는 이유겠지.


장사는 이윤이 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름 남긴 대상들이 이문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는 소일했던 건 헛소리가 아니다.

이윤이 남아도 이름을 남긴 척, 사람을 남긴 척해야 하는 지혜가 담겨있기도 하겠지만, 가격을 결정하거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과정에 필요한 일은 숫자놀음이 전부는 아니기도 하다.

그렇기에 오픈 후 계속,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메인콘텐츠인 국밥의 가격을 올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했다.


재료를 줄이거나, 퀄리티를 낮추는 방법을 사용할 순 없다.

그건 우리가 안암을 운영하는 목적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방식의 조리방법을 사용한다는 모토로 운영해 왔다.

그중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성을 위해 힘을 줄 것과 뺄 것을 구분해,

질 좋은 국내산 김치와 국밥으로만 운영해 왔다.

다양한 반찬 구성을 요구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잘 알지만, 구색 맞추겠다고 애매한 것들 꺼내놓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소비자는 세분화된 기준을 가지게 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런 가치관에서 퀄리티를 낮추는 선택은 불가능하다.


꾸준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낸다는 것에서 단일메뉴는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사람들의 경험이 일관되고, 중첩되며, 이미지화하기 좋다.
하나 이건 초기에 자리를 잡기 위한 전략이므로, 일관된 경험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쯤 새로운 변주를 줘야 한다. 우리처럼 어느 정도의 경험이 중첩된 가게는, 다양한 메뉴를 자리 잡게 하되 메인 콘텐츠인 국밥을 흐리지 않게 한다면 경험의 다각화를 노릴 수 있다.


그런데, 5개월 전부터 이윤이 안 남는다. 이윤이 문제가 아니라 적자폭이 너무 커졌다.

그래서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이상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건 플랫폼에 사람이 가득할 때 가능하다.

올린 가격에 반향이 생겨 3분의 1 정도의 소비자가 빠져나가도 운영이 가능할 때.

헌데 지금은 팔면 빚이 생기는 조건이 완성되어 가격을 안 올리는 게 불가능한 상황.

생존이 불가능해졌다. 이럴 때를 대비해 비축해 둔 잔고도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다.

킬로당 6100원이던 고기가 9800원 수준이니, 사실 1000원 올려선 해결이 안 된다.

인건비, 월세, 공과금, 재료비, 생활비 중 안 오른 게 한 가지밖에 없다. 내 임금뿐이다.


예전엔 왜 그렇게 대중음식가격을 올리는 게 쉽지 않은지 궁금했다.

다이닝 역시 객단가를 높이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거든.

대중음식을 해보니 알 것 같은 게, 시장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예측하는 소비자의 소비심리의 마지노선에서 가격을 결정하게 되어, 벼랑 끝에서 가격을 올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다이닝은 브랜드 가치가 더 크기에 내 음식의 가치를 돈으로 치환하는 것에 내 결정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하지만, 대중음식은 그보다 소비자의 소비심리에 이해가 더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큰 규모의 자본을 가진 회사들이 가진 기획과 전략에 대단함.

자본을 많이 밀어 넣고, 마케팅을 크게 해서 초기 매출을 만들기 위해 애초에 판매가를 높게 책정하고, 그에 따라 재료비 등의 변동비를 줄인다는 것. 그건 또 그거대로 대단한 게, 그 가격을 팔 수 있는 가치부여가 가능하다는 것과, 변수를 측정해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는 것. 개중에 가격인상이든 가격 결정 전략이든 차곡차곡 준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체 소비자와 자기 자본을 얼마나 치밀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저런 게 가능한 걸까. 그 치밀함은 SPC 순이익 비율에서 많이 도드라져 보인다.

다 죽이고 시장 독점을 하면서 혼자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현 시장의 물가가 얼마나 당혹스러운지는 GFFG를 보면 알 수 있다.

23%의 재료원가에서 현재 34%를 넘는 재료비에 적자폭이 커진 다운타우너를 매각한다 만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괜한 상황이 아니다. 23%는 오픈 초기 잡았던 비용이고, 34%는 더 올라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저렇게 크고 잘 나가는 회사조차 자본잠식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확실하진 않지만 GFFG정도의 규모라면 규모경제를 만들 법도 한데, 그럼에도 최근 300억 남짓 투자를 받았다는 회사의 대표가 물러난다거나 하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는 걸 봐선 외식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그 시장의 토대가 낮은 임금이었기에 흔들릴 시기가 되긴 했지만.



지금 상태에선 매출이 오르는 게 의미가 없다. 적자폭이 줄어들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그런 이유로 올리는 게 아니라서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뜻하는 바를 전부 이루기 위해서 생존이 필요하다.

내가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 주는 미안함은 어째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 내가 미안한 건, 우리 음식이 맛있다며 구태여 인사를 건네던 얼굴들이 떠올라서일 테다.


내가 느끼는 생존 위협이 나만의 것일까.

못내 올린 그 천 원에, 다른 시장에서 같은 위협을 받으며 발버둥 치고 있는 누군가에게 부담감을 분양하는 기분이라, 미안함을 감추기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젝트 안암(安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