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어른
안암같이 조그마한 브랜드를 운영해도 빠질 수 없는 것이 아이덴티티다.
경쟁력이면서 포지셔닝을 하기 전에 인지해야 하고,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가상의 매력적인 객체를 구현할 능력이 되지 않으므로, 나를 포함시킨 이미지로 구현한 페르소나를 통해 어떤 결정의 확신을 가지고 안암을 시작했다. 어차피 틀린다면 내 생각대로 하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 공간엔 내가 참 많이 투영되어 있네, 하는 것.
작고 큰 결정이 가득한 이 가게는, 내가 참 많이 묻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건가, 나는 큰 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인가 싶어 최근 참 많은 기획자들을 찾아보았다.
가깝게는 근처 런던베이글의 기획자부터 유명 F&B기획자, 그리고 멀게는 외식업과 상관없는, 아이템이 완전 다른 곳에 있는 기획자들까지.
나의 결론은 모두가 결국 자신의 경험에서 끄집어내고 있고, 본인이 가진 어떤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결정하고 그 경력에 따라 사고의 폭이 넓고 깊을 뿐, 그 본질적이거나 근본적인 것의 차이는 없다 이다.
그들이 일을 잘하는 방법은 흐름을 잘 읽고, 트렌드를 앞서가는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또는 구현해 낼 수 있는 시장 이해도가 높다는 것. 그 시점에 맞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기획을 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 개성이라고 표현하는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라던 봉준호 감독의 말과도 그 말의 의미를 같이 한다. 그래서 브랜드에서 아이덴티티라고 표현하는 것이지 않나 싶다.
내가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언어로 표현되고, 기준이 되고, 그게 브랜드로 표현되는 것.
그렇다면 내가 요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20대 대부분의 것들이 흑과 백으로 구분되었다.
성실하지 않으면 불성실한 것이고, 불법이 아니면 합법인 것인 데다, 옳거나 또는 글러먹었다로 결정해야만 했다. 한데 아주 약간 더 살아보니, 틀린 게 꼭 항상 틀린 건 아니고, 옳은 게 꼭 매번 옳지도 않았다.
어떤 일들은 그럴 수도 있었고, 어떤 일들은 나의 판단이 생각보다 중요하지도 않았다.
내가 치열하게 정의(定義) 해야 했던 수많은 나의 정의(正義)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옳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뭐 그렇다고 그런 고민들이 쓸모없지도 않았다. 그 과정에도 희석되지 않은 옳음의 기준은 존재하고 있으니까. 평생 고민하고, 거기에 맞춰 덧입혀지고 있는 옳음들 사이에서 끄집어내자면 그 키워드는 "좋은 어른"인 듯싶다. 남들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사용하며 제한 없이 예민해졌던 그 시기들을 지나면서, 낫고 낮음에 대한 기준이 자연스레 희미해지면서, 그렇다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는 내 인생에 명료하고 또렷한 주제가 된 모양이다.
현재의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내가 살고 있는 시스템에 잘 적응하고, 그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내가 올바르다 믿는 가치들을 구현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적응하려는 시스템은 자본주의이며, 그 시스템의 부정적 요소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올바른 결정들을 구체화시켜 나의 가치관을 실현해 가는 것. 그게 현재의 내가 꿈꾸는 어른이다. 내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그 "어른"의 기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어 다른 의미를 포함할지 모르지만, 현재의 내가 내리는 결론의 과정에서 항상 마지막 질문으로 존재한다.
모든 고려를 끝마치고 나면, 꼭 마지막엔 "미래의 내게도 이 결정이 자랑스러울 수 있어?" 하고 묻는다.
이 작은 가게에도 생각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결정이 많다.
당장 돈이 없어 눈앞에 흔들리는 푼돈을 따라 흔들리는 일이 많게는 수십 번씩 존재하고,
가치관을 흔들려고 하는 작디작은 자존감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며, 컨트롤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컨트롤하고 싶은 것들이 존재한다. 속 좁게도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싶고, 몇천 원이라도 모질게 굴고 싶은 그 마음이 없지 않다. 그렇게 그 과정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들은 참 치열했고, 좌절하고, 그에 맞춰한 수많은 결정이었지만,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다.
많은 결정들에서 우리의 브랜드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나의 가치관이었고, 그게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우리가 결정한 수많은 "손해를 보더라도", "적어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 그래선 안되니까"했던 수많은 결정들이, 안암을 지탱하는 가치관이 되었다.
내게 창피한 것은, 우리 직원들에게도 창피한 결정이다.
그런 결정들이 쌓여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자존감과 가치부여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무엇보다 당당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선 옳다고 믿는 결정들을 쌓여나가야 한다. 힘들지만 쪽팔려선 안되고, 잘못한 일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지만, 죄짓지 않고 숙일 필욘 없어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 믿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교육하고, 그 기준에 맞춰 휘리릭 휘리릭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면서 나는 어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구체화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게 형성된 좋은 어른, 또는 올바른 어른의 기준이 결국 안암의 아이덴티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적응하려는 시스템에 그 가치관이 왜 중요하냐면, 안암을 거쳐갈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또 그들과 함께 일할 동료들에게 "나를 믿어달라"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작게나마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니까.
작디작은 꿈과 커다란 꿈을 동시에 꾼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일을 참 대단한 소명인 양 말하고 있지만, 나에겐 꽤 어렵고 또 중요하다.
그 영향력이 커지고, 나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료가 많아지길 바라고, 이 시스템에서 우리의 점유율이 높아지길 바라고 그 책임의 무게를 느끼면서, 그럼에도 그 올바름을 지켜나갈 수 있길 바란다.
어렵고 오래 걸리고 힘든 그 일들을, 또렷하고 떳떳하게 하고 싶다. 그래야 오래 버틴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세상이 불만이라면, 바꿀 영향력을 조금씩 가져가면 된다.
작게는 6명의 사람에게, 또 크게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우리만 눈치채게 시나브로,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성장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또 누군가 "어머 쟤들 저기까지 가있네" 하도록,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