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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Apr 22. 2024

프로젝트 안암(安岩)

#40. Copyright

  업력이 쌓일수록, 사람들이 알아볼까 싶었던 그 메시지들, 이 가게를 하려는 목적을 시장이 받아들이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시장 전반의 소비자들이 메시지를 확보하고, 모두가 그 메시지를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 보니, 메시지를 소비한 소비자들은 쌓여간다는 생각이 든다. 외식업에서 쉽게 단골이라고 말하는 그 손님들이, 그러니까 메시지를 소비하고, 그 메시지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너네가 열심히 하는 거 알아 하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큰 브랜드들이 하루 또는 일주일 만에 수십만 명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규모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작은 브랜드인 "안암"은 자본의 크기가 소규모인 만큼, 시간을 자본으로 치환하는 수밖에 없다.

확성기가 없으니, 재잘재잘 옆사람에게 전달을 부탁하는 수밖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끊임없는 과정, 전달에 전달을 통해 자기 옆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그 경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 그게 소규모 업장 운영자인 내가,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거창하게 슬로건, 그리고 우리가 음식점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업의 본질이 담겨있는. 그게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특별한"이다.


이 이야기를 괜스레 다시 하게 되는 이유는, 안암을 카피하는 분들이 꽤 생겼다.

가게 와서 이것저것 빼먹으려는 사장님들도 전보다 많이 보인다.

의미는 두 가지. 우리가 시장에서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거나, 우습거나.

처음엔 화가 났지만, 업체가 여러 군데가 되면서 재미있어졌다.


아는지 모르는지 벤치마킹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분들과, 아이디어 없이 카피하려고 하는 분들의 차이는 우리 직원들도 눈치챌 정도로 티가 난다. 관찰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눈빛도 다르고.

내 업체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점이 도드라지는지, 우리는 어떤 것을 개선하면 좋을지 생각하시는 분들은 존중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근데 카피하시는 분들은 이상할 정도로 기술적인 것, 기능적인 것 등에 집착한다.

눈빛에서 욕심이 뚝뚝 떨어지거나, 공격적이다.

여러모로 밥줄 끊겠다고 덤벼드는 분들이니까 그렇겠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확실히 냉혹하긴 하다.

각자의 성향인지, 내공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추 후 결정과정을 보면 그 미래를 알 수 있다.

가게를 여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업의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데 따라 할 리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 더 잘되면 더 자주 있을 일이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험을 쌓을 생각이다. 생각해 둔 게 많아서,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겨 두려고 하는데.


최근엔 슬로건까지 카피하는 가게도 생겼다.

정말 의아했다. 남의 메시지를 전하는 게 본인에게 의미가 있는 걸까?

소비자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사람 말을 내가 하면 내 말이 되는 건가?


사는 방식이야 알아서 정하는 거지만, 개인으로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한 가지가 따라 하는 삶의 가치이다. 소비자의 수준을 무시하거나 기만하는 행위임은 둘째치고 본인의 아이덴티티나 메시지가 없는 업체를 운영하는 게 정말 즐거울까? 정말 돈으로 네 인생의 가치가 치환된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거야?

너의 경력은, 누군가를 따라 하기 위해 쌓은 거야? 그건 우선순위가 조금 잘못되지 않았어? 하고, 묻고 싶다.


경쟁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준비할 거 많고 귀찮기도 하고.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면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될 것 도 많고 대응도 다각화해야 하고.

하지만 조금 변태라, 그게 간혹 즐거움으로 돌아서는 순간들이 있다.

장기 두듯이, 그쪽에서 준비한 전략을 분석해서 무너뜨리는 전술을 다양화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되도록 안 하고 싶지만, 그쪽에서 인생을 걸고 들어오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아마 그쪽도 나도 배울 게 많은 싸움일지도 모르니까.

나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잘되면 어차피 부딪힐 일이라 경험을 다각화해서 쌓아 두면 좋으니까.




To. Copy 라이터



너 근데, 니 머릿속에선 절대 안 나오는 그 기획 말이야.

네가 인생을 걸고 따라 하겠다고 생각한 아이템을 기획한 사람이 설마 너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한 거야?

왜 슬로건이 "익숙하지만 특별한" 인진 알아?


다른 음식점 음식들도 많이 갖다 붙여놨던데, 업계에 소문 그렇게 안 좋아져도 괜찮겠어?

베낄 거면 똑같이 했어야지, 애매하게 트위스트 하지 말고.


국밥, 생각보다 재미없지?

깡다구 없어서 큰 조직은 못 따라 하는 게 니 그릇의 크기인데, 어쩌겠냐. 받아들여.


너는 내게,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 이상은 되지 못하겠지.

왜냐하면 너는 그 이상 해볼 능력이 없으니까.

무리하지 마, 다리 찢어진다. 가정도 있던데.

난 니 얼굴 기억해. 재미있지?


나는 더 넓은 곳으로 차곡차곡 가줄게.

그래야 너도 내 발꿈치 근처 오려고 발버둥이라도 칠 것 아냐.  

그래야 너도 성장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 거 아니냐.

네가 너의 헤리티지라고 믿는 것들이 결국 내가 쌓은 헤리티지에 종속되겠지.

그러니 내 발 뒤를 잘 따라오렴.


그럼, 안녕!

 

PS.

근데, 진짜 그걸로 괜찮은 거야 니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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