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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Nov 22. 2021

<미래를 살아갈 세대>



교육자 채현국 선생이 하신 말씀 중에 지금은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미 과거의 것을 익히고 지나간 부모가 미래를 살 자녀의 내비게이션이 되겠다는 것 자체가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부모가 자기 행복부터 찾아라.’


이 문장에 저는 한 가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아 자기가 하지 못한 것을 꺼내 들어 자식들에게 투영시킨다. 나도 그런 모습이 나올 까 봐 걱정이다. 과연 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채현국 선생 말마따나 부모인 내가 행복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휘운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을 때는 육아 관련 책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는 사실과 다른 친구들은 못 가지는 경험, 내 아이의 성장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둘째가 당장 태어나더라도 아주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라라랜드’라는 영화다. 명색이 영화를 했던 사람이 극장에 얼마 만에 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아래 글은 당시 일기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꿈>


아침 일찍 ‘라라랜드’를 보고 왔어요. 재미있네요.
 
 요즘 저의 뇌 구조를 뜯어보면 아마 반 정도는 육아로 채워져 있나 봐요. 라라랜드 같은 영화를 보면서 육아가 생각나리라고는. 아무튼 라라랜드와 육아를 함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넌 꿈이 뭐냐고 물으면 100이면 100, 아이들은 직업을 말 할 거예요.
 가수, 의사, 경찰 같은 직업 말입니다. 조금 더 어린아이라면 아빠가 되는 게 꿈이라던지, 좋아하는 여자 친구 누구와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귀엽죠^^. 이런 꿈이라면 얼마든지 이룰 수가 있지요. 성장하면서 꿈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죠..
 
 20대 시절 친구 중에 지금까지 전화통화를 하면서 연락을 하는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격이 좋고 쾌활하며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어요. 지금은 벌이도 괜찮고 사회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안정적인 생활이 있기 전에 친구는 나름대로의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는 후회를 하더군요. 
 
 “아..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공부 열심히 할 걸…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즉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말을 하던 친구를 가르치는 모습일 될까 봐요. 두 명의 아저씨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말없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어요.
 
 “돌아간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이 갔을까그리고

좋은 대학을 갔다고 성공이라는 걸 쉽게 했을까?”
 
 라라랜드의 남녀 주인공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중 사랑에 빠집니다. 그들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직업적으로 어떤 부와 명예를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들은 꿈을 향해 가는 그들의 열정, 그 삶, 자체를 마치 꿈인 듯 행동합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이들에게 꿈의 정의를 어떻게 이야기하시나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 자체만으로 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혹은 당신의 아이가 직업적으로 꿈이 무엇이든… 그 꿈을 대하는 삶은 태도.
 그것 역시 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미래를 살아갈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뭘 해야 하나.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부모님들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니까 이것저것 시켜 보다가 아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면 돈을 더 써 제대로 시켜 보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나도 초등학교 때, 참 학원을 많이 다녔다. 피아노 학원, 컴퓨터 학원, 주산학원, 미술학원을 지나 중학생이 되면서 국영수 위주의 학원 등을 다 다녔었다. 철저히 학교 학습에 관련된 학원이었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몇몇 운동 관련 학원들은 어머니가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고 보내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 당신들은 그 시절 정말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도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하나 있는 놈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하셨겠는가. 이런 훌륭한 지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뭐 핑계라면 핑계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일찍부터 불만이 많았고 이중적인 기성세대들의 모습에 질렸던 것 같다. 어른들은 10대인 우리들을 보고 그랬다. 


‘얼마나 좋은 때인지, 얼마나 예쁠 때인지 모른다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다 이룰 수 있는 나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추종하는 서양의 나라들처럼 대학과 직업교육을 정말 필요한 사람이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만들지 않고 왜 개개인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대학 입시 용 공부’만 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불신이 가득했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가 기술을 배우면 못 배운 사람을 취급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한참 친구들과 직업이나 꿈,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생각하며 토론하고 독서를 해야 할 나이에 우리 반 친구 모두가 경쟁자가 되어버린 구조가 너무나 싫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부모가 되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임신한 순간부터 우리 아기의 태동은 누구와 다르다며 경쟁을 시작한다. 언제 걸었는지, 언제 기저귀를 땠는지, 언제 말을 시작했는지, 언제 한글을 다 떼었는지… 계속 끝이 없다.


이런 생각들은 어른이 되어서 육아를 하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의 직장이 모두 안정적이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도 불안함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나 일이나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 해졌다. 난 내 아이가 무엇을 하든지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서 행복한 아이가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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