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이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만 3세가 되어서 유치원을 보냈다.
3년을 데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휘운이가 만 2세가 되자 어머니께서는 휘운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하셨다. 키우는 사람이 힘들기도 하고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육아 관련 책이나 기사를 많이 챙겨봤기 때문에 어머니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회성은 2세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닌다고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 후반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 걸쳐서 사회성 발달의 민감기를 가진다. 그러니까 1세나 2세에 사회성 하나를 위해서 보낸다고 아이한테 좋은 것은 아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나 사회성 하나 배우려고 말도 못 하는 나이에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의 단점도 무지 못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동안 잘 키우고 있었고 집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계시고 저녁에는 엄마도 퇴근해서 오는데 어른 4명이서 아이 하나 못 봐서 어떡하냐고 우겼다. 만 3년은 부모가 직접 육아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사실은 미디어나 책, 기사 등등에서 많이 접했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만 3세까지가 두뇌 발달의 최적기인데 아빠가 육아를 하면서 특유의 몸놀이 같은 직접적인 자극을 주는 육아를 하게 되면 두뇌가 자극을 받아서 아이의 두뇌가 더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여러 외국 대학에서 실험 결과로 입증했다는 것. 아빠 육아가 많이 정착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 중 스웨덴에서는 부모 1명 당 16개월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다 있을 경우는 32개월이 보장된다. 이는 만 36개월에 근접한 기간으로 만 3세 부모 육아가 보장되는 것이다. 스웨덴은 육아휴직제를 1974년부터 시작했으니 이미 50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여러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발달을 비교해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휘운이의 두뇌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아빠로서 확실히 느끼는 것이 있다. 애착 관계의 형성이다. 지금이야 휘운이는 엄마를 긴 시간 못 보니까 엄마를 보면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만 4세까지만 해도 엄마가 아빠 옆에 앉아 있으면 엄마를 밀어내며 아빠 옆에서 비키라고 했다. 아빠 옆에는 자기만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아빠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1학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 못을 해서 크게 혼나고 눈물을 쏙 빼도 안아주면서 혼낸 이유를 설명하면 감정이 훨씬 빨리 회복됨을 느낀다.
물론 정답은 없는 것은 안다. 좋은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형편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여기서 이렇게 자부심을 뿜어대며 글까지 쓰는 이유는 난 그 3년의 내 꿈과 바꾼 엄청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기대자 않아야 하는 감정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아직 수양이 덜 된 모양인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