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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Dec 05. 2021

<성장통의 시작>


휘운이는 아주 늦게 기저귀를 땠다. 

(둘째를 키워보니 첫째가 차라리 빨랐다 ;;)


내가 성격이 급해서 아이가 기저귀 때는 것을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주변 지인의 아이 중에서 아이가 똥오줌을 빨리 가리게 해볼 생각으로 교육을 좀 많이 시킨 것이 문제가 좀 됐던 적이 있다. 그 결과 아이는 대소변을 보는 것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오히려 나중에는 똥을 매번 참아서 습관성 변비가 생겨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이것만은 천천히 하자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33개월, 그 1개월의 기간 동안 완전히 기저귀와 작별인사를 했다. 아이가 변기에 앉아 똥을 스스로 눌 때, 부모로서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정말 가슴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는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나 할까.  


기저귀도 때고 손 빠는 것도 멈췄고 그만큼 아이는 많이 성장했다. 말도 늦게 시작한 휘운이는 점점 수다쟁이가 되어 갔다. 내가 블로그에 우리 아들은 언제쯤 말을 할까? 아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지나가던 주부님께서 나중에 ‘말로 속을 뒤집어 놓을 겁니다’하셨는데 점점 그랬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도움이 되는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SBS에서 방영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책으로 이미 나와 있었다. 나도 TV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방송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자취하던 시절이라 그냥 지나가면서 몇 번 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 돌이켜 보니 나도 총각시절에는 육아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방송에 출현하는 아이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아이인지, 그 자극적인 행동만 신기하게 본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분노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사서 보니 흥미로웠다. 방송에서 했던 사례들 중에서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던 사례들로 채워졌다. 책 전체의 포인트는 이것이었다. 아이는 누구든지 착하고 순수하게 태어난다. 그런 아이들의 성격이 안 좋게 바뀌는 이유는 결국 환경, 특히 양육자다. 책에서는 친부모의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조부모가 양육했을 때였다. 부모들이 맞벌이로 바빠서 아이들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일을 나간다. 문제는 몇몇 조부모님들 중에 약주를 과하게 하시는 분들이 아이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다. 이는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불안과 상처를 주었다. 뭐든지 모방을 하는 아이들이 유아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 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를 진학해 자기가 보고 당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난 이 책을 보고 부모님께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은 괜찮았다. 나는 사실 어머니가 나를 키울 때 하셨던 것처럼 몰아세우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손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평범한 할매, 할배였다. (부모님께서는 경상도에서 정감 있는 할매, 할배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후에 놀란 점은 정말로 휘운이가 조부모에게서 말투를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억양으로 할매를 따라 하는 휘운이를 봤다. 그것은 평소에는 말을 조심하시던 어머니가 동네 친구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왔던 귀여운 욕들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것 마저도 조심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 책에 소개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5세~7세가 가장 많았다. 당시에 휘운이가 3세였으니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3~4년 후에는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휘운이가 될 수 있었다. 미리 예습할 수 있어 좋았다. 휘운이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 많았다. 

아이는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행동으로 뒤집어지며 떼를 쓰던 것이 말로 따지고 들기 시작하자 사사건건 '안돼'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면 성장통은 아이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인 나에게도 왔다.


 ‘ 나.. 이대로 이렇게 살다가 늙고 죽는 건가’ 하는 생각.


아이를 만 3년은 내 손으로 잘 키우고 사회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어느덧 나는 일하던 필드를 완전히 떠난 선배 혹은 백수가 되어 있었다. 어느 분야나 밑에서 잘하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필드에서 멀어진 저 친구는 ‘감을 잃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아이디어가 신선하지 못해’라는 말이 나를 대변하는 수식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 ‘겁이 난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사회생활도 많이 해보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그 두려움은 더 할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보면 때가 되면 나가서 네 꿈을 펼치라고 하는데 그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엄마들은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이때 자연스레 들어오는 감정이 ‘기대’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만 했으면 하고 바라었는데, 직장일로 나를 잘 봐주지 않는 남편과 다른 형제들도 신경 써줘야 하는 부모님, 이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까지. 나도 모르게 저 어린것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때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아이를 키웠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엄마들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저 집은 친정이 돈이 있거나 애가 머리가 좋겠지.’라며 힘겹게 넘기던 책을 던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거창한 꿈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스스로 이제 난 애 키우고 이렇게 늙는 거지라고 툭 내려놓지 말자. 내려놓는 순간 아무도 나를 돌봐 주지 않는다. 그 순간 나조차 나를 돌보지 않게 된다. 현실의 당신이 무의식 속 당신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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