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저녁 뉴스에서 성추행 피해를 받은 공군 여군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귀와 눈이 번뜩 뜨이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그 뉴스에 귀가 더욱 쫑긋 세워졌다. 그러나 다시금 나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지고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외면하고자 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 후 친구를 보냈던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엘리베이터 층을 헷갈려 다른 층에 내린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 문재인부터 국회의원들 뉴스에서만 봤을 법한 사람들의 이름들의 근조가 잔뜩 걸려있던 곳이 있었다. 저긴 누구의 마지막 길이었길래 아직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이예람 중사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들었다. 그 아름다운 청춘을 황망히 저버리고 그마저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혹시라도 내가 작은 것 하나 도울 것 없을까 하는 마음에 군 인권센터 사이트를 틈나면 들어가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특검 재판 시민 방청단을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보았다. 그리고 신청을 했고, 공판 일정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모든 재판 시간에 내가 참석 가능했던 것은 아니라 몇 번은 흘려보냈고 드디어 최근 가볼 수 있었다.
가해자 전 모 씨의 명예 훼손에 관한 공판이었는데 내가 앉아 있던 한 시간 내내 2차 가해에 대한 피해가 얼마나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산처럼 쌓인 증거 목록들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왔다. 인상 깊었던 것은 증거목록을 설명하는 그 반대편에 평온하게 앉아있던 가해자의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정갈하고도 깔끔하게 이발되어 있는 머리였지만 이마를 반 정도 덮는 일자 앞머리가 왜 그렇게 내 눈에 밟히고 밟혔는지 아마 간부 생활을 했던 군인이라면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선임이 되면 어떻게든 눈을 피해 머리를 기르고자 하는 상병장의 헤어스타일 같았으며, 중대장 시절 정말 머리 안 깎으려고 도망 다니고, 깎고 오면 옆머리만 살짝 밀고 돌아와 행정보급관이 골머리를 앓던 막내 하사의 헤어스타일 같았다. 그의 지금 마음 상태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편견 가득 어린 나의 시선으로는 딱 그 정도 수준으로만 보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녀는 정말 고군분투했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무엇 하나 변하거나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으며,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은 그녀의 편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병사들까지 구체적으로 아는 그 와중에 어디에 손 내밀 곳 있었을까. 어디에 의지할 곳 있었을까. 여군 조심하라는 말이 돌았다고 하던데 나에게도 너무 익숙한 말이고 익숙한 분위기였다. 생도 때부터 여생도 조심해라, 여군 조심해라라며 암암리에 나를 우리를 피하던 그 조직 분위기를 모를 리가 있을까. 가해자에게 탄원서를 써준 동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나 또한 과거에 성추행 관련 일을 겪고 사건화 하면서 옛 동료들이 가해자를 위하여 탄원서를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 누가 썼고, 누가 쓰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나갔을 것이고, 가해자 또한 그들에게 소중한 동료였기에 그 도움의 요청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그 당시 동료들과 모두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았다. 물어볼 수도 없었고 그저 나를 심연의 깊은 외로운 방에 두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녀 또한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이중사 사건 이후로 관련 훈령에 탄원서 관련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조직 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중대장 시절 중대 막내 간부가 외출을 나갔다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 성범죄였는데 나는 조직의 장으로서 그가 적법하게 수사 절차를 밟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그의 안녕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인간적으로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부모님과의 다리가 되어주었으며, 나는 그 역할에 충실히 맡은 소임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탄원서를 써달라는 부모와 변호사의 요청은 거절했다. 그들이 너무나도 서운했을 수 있으며, 그 후 그의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나 그의 탄원서를 써준다는 것은 도저히 내 양심에 반하는 일이었기에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 그 선택은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겪고 다시금 생각할 때마다 나의 답은 잘 모르겠어이다. 나의 마음도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이다. 그러나 명확한 건 유능하고 훌륭한 군인이었고 더 잘하고자 했던 누군가의 날개를 꺾어버린 자들은 응당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또 제발 누군가의 날개를 더 이상 고의던 고의가 아니던 꺾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처를 그저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도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