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드디어 둘째 아이의 백일이 지났다.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엄마가 임신을 시작한 날로부터 딱 1년이 되는 기간이라고도 한다. 지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이 또 흘렀고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다시 생각한 것을 보면 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꽃같이 예쁜 우리 아가의 백일상
작년 임신 초기 대학원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임신과 첫째의 육아와 입덧과 독감의 콜라보로 정말로 심신 미약의 그로기 상태로 대학원 면접을 다녀온 기억이 난다. 면접 대기 시간이 너어무 길어서 강당 속에서 배도 고프고 속도 울렁거리고 체력이 바닥나 힘들었었는데 그 무엇보다도 매서운 면접관님 앞에서 한없이 멍청하게 작아지는 내 모습이 얼마나 하찮고 모지리 같았는지 뱃속의 아이가 아니라 내가 다시 태어나야 하나 돌아오는 KTX 안에서 마음을 달랬었다.
두 번의 대학원 입시가 좌절되자 임신 출산 육아와의 병행으로 인한 나의 능력을 다 못 보인 것이다라며 스스로 위안 삼았지만 내 능력의 한계인가에 대한 불안함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작아지기 시작하자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 끝도 없는 좌절 속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후회 아닌 후회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은 나의 모든 최선의 선택의 결과였으며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어느 인생의 선택의 기로마다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결과가 불확실한 세 번째 입시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임신 중인 나에게 육아와 태교에만 전념하라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학비에 쓰려던 적금을 깨고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맙소사
올해 입시 시험 날짜는 출산예정일과 하루 차이였다. 사실 이 정도의 차이라면 시험을 준비하는 게 의미 있을까 싶었다. 자연분만은 진통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며 정말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야만 했다. 나는 시험을 치러 갈 수도 없다는 전제하에 그래도 내 최선을 다하자며 몸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나마 이른 출산을 막기 위해 아이의 체중을 천천히 늘리고 활동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임신 중간 태아의 건강이 우려되는 지점이 생겨버렸다. 엄마의 욕심으로 함께 스트레스받으며 쉬지도 못하고 매일 학원을 왔다 갔다 잠도 못 자며 고생하는 뱃속 아가가 무슨 죄인가 엄마가 너에게 과한 요구를 했구나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나의 아가한테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면 다사다난한 역경을 딛고 끝내 이겨내던데 그건 역시나 드라마였다. 나에게 그런 드라마는 없었다. 시험 이틀 전 마지막 학원을 다녀온 후 이슬이 비쳤고 진통이 찾아와 출산을 했다. 진통이 찾아오자 집에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직감으로 출산 가방보다 시험 치러 갈 책가방과 도넛 방석을 챙기고 병원으로 나섰다. 출산 후 저 모레 새벽에 좀 빨리 퇴원해도 될까요? 가 의료진에게 처음 물어본 말이었다. 편의점 죽과 바나나, 도넛 방석을 챙겨 손대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마음으로 어그적 걸음을 걸으며 시험장에 들어섰고 오후 4시까지 시험을 마쳤다. '그저께 출산하시고 오셨다면서요. 대단해요. 안 힘드세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라고 위로해 주시는 감독관님의 격려에 아픈 몸과 호르몬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진통제 때문인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눈물을 주체 못 한 나는 아주 시원하게도 시험을 말아먹고 나왔다. 물론 시험 결과는 내 실력을 온전하게 반영한 것이라 받아들인다.
눈물 뚝뚝 그 날의 시험장
첫째를 낳고 육아와 입시에 몰두해 나의 시간이 21년도에 멈춰있었는데 둘째를 낳고 백일 간 아가에게 몰입하며 또다시 시간이 멈추었다. 문득 거울을 보며 늘어난 기미와 미묘하게 세월을 맞고 있는 얼굴과 새치들을 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남은 것은 실패의 경험과 늘어난 뱃살과 줄지 않는 체중뿐이오라며 좌절의 심연으로 들어가기엔 내 품 안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둘째 만삭 때까지 나에게 안아달라고 보챘던 세 살의 첫째는 동생이 너무 예쁘다며 아침에 뽀뽀 세례를 퍼붓고 씩씩하게 씽씽이를 타고 어린이집을 등원한다. 올해 나는 아들 딸과 함께하는 4인 가족이라는 인생의 한 가지 꿈을 이뤘다. 비혼과 저출산 시대의 한 가운에서 알 수 없는 나의 고집으로 이직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한 채 아가들을 낳아 키우는 중이다. 어느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과 상황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더 풍성해졌고 만족스러워졌다. 어느 극한으로 나를 몰고 갔던 내 마음의 그릇이 분명히 늘어났고 채워졌다. 사회인으로서는 잠시 멈추고 있으나 내 인생은 더욱 성숙되어가고 있음을 확신하며 울렁이는 마음들을 정리하는 글을 마무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