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던 주말이 끝났다. 남편의 부재로 홀로 30개월과 4개월의 두 아가를 온몸으로 방어해 낸 작전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콧물 흘리기 시작한 남매는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15평 좁은 집에서 그렇게 어지르고 치우고 웃고 놀며 주말을 완성시켰다.
동생 손 잡아주는 오빠
기다리던 월요일 아침 첫째는 퉁퉁 부은 얼굴 째로 옷만 겨우 입혀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는 고요해진 집안에서 사랑스러운 옹알이를 하다 아기띠를 등에 돌려 업히니 3분 만에 꿈나라로 가셨다. 얼마 전 고친 네스프레소 기계에 커피를 내리고, 음식물 처리기 미생물 배양하겠다고 사 온 식빵에 크림치즈를 발라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고 글을 써본다.
아. 내 인생에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순간이 또 올까. 새 생명을 품고 내 품에서 길러내는 이 시절과 이 행복이 다신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했던, 하는, 할 모든 행위들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순간순간이 어린 자식들을 길러내는 지금이 아닐까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꽃같이 푸르렀던 어느 젊은 그 모습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냥 시간이 흐르는 것의 아쉬움이지 육아의 결과는 아니지 않겠는가.
지난 주말 교회 영아부 선생님이 '육아의 시간은 짧아요. 많이 행복하시고 힘내세요.'라고 엄마들에게 응원의 카톡을 보내주셨다. 두 아이를 장성하게 키우신 중년의 선배님의 허둥지둥 육아에 허덕이는 쪼렙 엄마들에게 해주신 진심의 말이었다. 맞아 지금 행동 하나하나 사랑스럽고, 말 하나하나가 이렇게 예쁜 시기가 또 있을까! 지금을 즐기자 아가는 곧 커버릴 것이야. 지금을 그리워할 그날에 아쉽지 않도록 행복하자.
예쁜 둘째를 키우면서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 이유 없는 쫓김에서 한 계단 올라가 조금은 성숙해진 것만 같다. 물리적으로는 둘째가 첫째 아가일 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고, 순하고, 통잠을 일찍 자주 었고, 가벼워 몸이 덜 힘든 것이 틀림없다. (가벼운 게 정말 크다. 첫째는 100일 무렵 10킬로를 넘긴 우량아였다.) 정신적으로는 아이의 성장에 관하여 많은 지식과 여유가 생겼다. 태열, 피지, 울음, 잠, 눈곱, 예방접종, 하물며 젖병 교체 시기 및 기저귀 종류까지 매일 검색과 고민으로 그때 그때 대처하기 급급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아 ~ 뭐 이 정도면 뭐.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고 판단하고 남은 시간은 우리 아기와 놀아 줄 수 있어졌다.
그래서 오늘 글을 쓴 이유는 내 새끼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어무 예뻐. 우리 첫째는 너무 의젓하게 기저귀 뗀 것도, 동생 울면 엄마 동생 울어요 달래주세요 이야기하러 오는 것도, 신발도 혼자 잘 신는 것도, 엄마 안아줄게 하면 쏙 와 안기는 것도, 어린이집에서 인사할 때 눈 꼭 맞추고 오후에 만나요~ 무한 인사하는 것도, 차가 오면 엄마 무서워요 쏙 달려와 옆에 붙는 것도, 블록 놀이 집중하며 쌓고 '안나가 만들었찌!' 자랑하는 것도 다 사랑스럽다. 우리 둘째는 까르르 입 세모 만들며 웃는 것도, 혼자 버둥거리다 귀를 긁어 뿌애앵 우는 것도, 맘마, 쪽쪽이, 엄마 찌찌 귀신같이 구분하고 자기 취향대로 그때 그때 고르는 것도, 끝도 없이 울다 축축한 기저귀 열어 바꿔주면 생긋 미소 보내주는 것도, 품에 안으면 미어캣 마냥 고개를 바짝 들고 눈 마주치려 하는 모습도, 오빠가 노래 불러주면 자기도 신나게 옹알이하는 모습도 다 사랑스럽다.
지금 나의 존재 하나만으로 이들에게는 전부가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거창한 어깨 힘은 빼고 사랑을 많이 채워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